상단여백
HOME 뉴스 북한
2012년 김정은의 북한은 무엇을 했나?김정일 우상화, 군심(軍心) 잡기, 광명성 3호 발사 통한 대외적 입지 다지기 등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의 권력을 자동 승계한 김정은은 2012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1년간 국정운영을 맡아 시행해 왔다. 김정일 사망으로 혼란을 예상했던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지난 1년간 김정은 체제는 표면상으로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2년 북한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보고 내년도 김정은 체제의 정책방향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첫째, 김정은은 사망한 김정일의 우상화 작업에 국력을 집중했다. 2012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을 ‘광명성절’로 제정,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리모델링하고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명했다. 만수대 언덕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만수대창작사, 강계시, 함흥시 등에 김정일의 동상을 새로 세웠다. 김정일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와 영웅칭호, 김일성 훈장, 김일성상을 수여하고 김정일훈장, 김정일상, 김정일청년영예상, 김정일 소년영예상 등을 제정했다. 이밖에도 증산군 석다산의 천연바위에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이라는 대형글자를 새겨 넣었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연구원과 인민보안대학에 김정일의 명칭을 붙였다.

둘째, 북한은 2012년 4월 당 제4차 대표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의를 개최하여 조선노동당의 지도자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정식화하고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에 추대함으로서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은은 당 제1비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책을 맡으며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다.

셋째, 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정은의 첫 육성연설이 공개되었고 여기서 그는 “파란 많은 수난의 역사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 조국과 인민의 존엄을 민족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려 세웠다”고 총화, 김일성-김정일의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 길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는 여기에 우리 혁명의 새로운 백년대계의 전략이 있고 종국적 승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일성 100세 생일을 기준으로 희천발전소와 조선인민군무장장비관, 단천항, 곽산간석지 2계단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은하수 관현악단의 “잊지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맹세”가 진행되었다.

넷째, 김정은은 2012년 새해 첫날 서울류경수제 105탱크사단 방문을 시작으로 공군, 해군, 전략로케트군을 시찰함으로서 군심을 다지는 데 주력했고 연이은 파격행보로 민심잡기에 주력했다. 만포시 주민들의 편지에 친필답장을 보내고 만경대유희장에서 잡풀을 뽑으며 인민중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과시했다.

다섯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을 비롯한 근로단체들의 대표자회와 조선소년단창립 66주년 행사, 7.27 행사, 만경대혁명학원 창립 56주년 기념행사,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 등을 연이어 개최함으로서 대중적 기반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섯째,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고 최후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 ‘김정일 애국주의를 구현하여 부강 조국 건설을 다그치자’ 등 김정은 명의의 노작발표와 “일심단결과 불패의 군력에 새 세기 산업혁명을 더하면 그것은 곧 사회주의 강성국가”라는 새로운 노선을 제시함으로서 사상과 이론을 겸비한 지도자임을 부각시켰다.

일곱째, 특히 ‘광명성-3’호 2호기 발사를 강행하여 성공함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김정일의 3대 유산 가운데 하나인 “인공지구위성 제작 및 발사국의 지위”를 확고히 함으로써 김정일의 유훈을 관철한 충실한 후계자, 수령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여덟째,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의 실시와 모란봉악단의 공개,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새로 내오는 등 2012년 행사 준비로 소외되었던 분야들에 대한 균형발전의 기회를 부여했다.

아홉째, 남북관계에서는 “만약 적들이 우리의 신성한 령토와 령해에 단 한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전으로 넘어가 조국통일대전에로 이어가라”는 호전적인 명령 등 대남비난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고 탈북자들까지 체제결속력을 다지는 데 활용했다.

열 번째, 김정은은 유일적 영군체계 확립을 위해 자신의 후계체제 수립에 큰 공을 세웠던 군부의 수장 리영호를 비롯한 김정일의 영구차를 운구하던 군부 4인방을 1년 안에 숙청하거나 좌천시켰다. 또한 군부 길들이기에 앞장섰던 최룡해와 현영철 총참모장이 차수에서 대장으로 한 계급 강등되는 등 김정은의 유일적 영군체계 확립사업이 속도전으로 진행되었다.

열한 번째, 이밖에도 김정은은 자신의 어린나이를 불식시키고 안정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부인 리설주를 전격 공개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정략결혼으로 보이는 리설주의 등장으로 김정은은 어린나이와 경험부족이라는 콤플렉스를 상당부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우상화 작업과 김일성-김정일 노선의 유지, 유일영도체계 확립, 민심을 얻고 대중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사업, 대남긴장고조를 통한 체제결속 등 대내체제유지에 주력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김정은 체제는 선군정치 노선을 유지하면서 체제보위에 주력할 것이며 남북관계 및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대북지원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2월 12일 인공지구위성으로 위장한 장거리 로켓발사를 강행한 것은 19일에 치러진 남한의 대선을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19일 이후에 발사하면 남한의 새 정권에 대한 도발로 간주되어 향후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감안한 정치적 행위로 내년도 북한의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의 방향을 예측해 볼 수 있게 한다.

<통일비전연구회>

통일비전연구회  uvision2020@uvision.or.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