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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품격

막말이 횡행하고 있다. 아무리 정치적 견해를 달리한다고 하지만, 금도를 벗어난 언어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병들게 한다.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선언한 심 국회부의장이나, 같은 당의 홍 대표는 막말을 쏟아내고도 민망해하는 기색조차 없다. 막말은 감성의 표피에 원초적 자극을 줄 뿐, 자신과 자신의 정당을 부끄럽게 한다. 자기 당과 정치에 환멸을 느끼도록 할 의도가 아니라면 이 땅의 보수를 위해서도 말의 품위는 지켜져야 한다. 보수가 막말로 승부를 보려는 듯이 덤비는 것은 지켜야 할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일까. 진보가 기존 가치의 변혁을 추구한다면, 보수는 가치의 수호를 중요시한다. 막말을 일삼아 자신까지 부끄럽게 하는 이들에게 수호할 가치가 있을까. 상대방을 종북, 주사파, 공산주의자로 몬다고 해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전시회에서다. 나라가 망했을 때 당시 만석군의 재산을 가졌던,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의 후손들은 가산을 몽땅 처분하고 망명길에 나섰다. 압록강 건너에서 합류한 일족은 자신들의 안일에 연연하지 않고 국권회복을 위한 동량을 양성하고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60명이 넘던 대가족은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아사(餓死)에 옥사, 풍지박산이 되었다. 그들이 식민지하에서 일제와 타협했다면, 만석군의 재산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 잃은 책임을 자신들이 짊어지고 생명과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는 뚜렷했다. 전시회는 “이 땅의 보수들이여, 너네들이 지켜야 할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꼭 이뿐이겠는가. 이회영(李會榮) 6형제의 이야기다.

국제사회의 막말도 말폭탄이 되어 한반도 상공을 횡행했다. 트윗을 통해 날리는 트럼프의 막말이나 평양발 엄포가 그것이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주고받는 막말들은 그들의 품위를 깍아먹고 있다.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난타나 거기에 대한 평양의 신경질적 응수는 그들의 품격을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막말 수준으로 본다면, 북한과 미국은 막상막하 호형호제다. ‘미치광이 전술’이건, ‘체제수호’를 위한 엄포건 이들의 쌍말들은 물귀신처럼 얽혀들고 있다. 언어가 주는 품격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행동 대신 언어로만 자신을 나타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라의 품격’을 말하면서 꼭 보수의 ‘막말’만 들추고 책임을 물으려는 것은 아니다. 과문인지는 몰라도 최근에 와서야 ‘참수부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한 특수부대의 편제 이름이다. 내 이해가 틀리지 않는다면, ‘참수부대’의 ‘참수(斬首)’는 점잖게 말하면 ‘목을 벤다’는 말이고 험하게 말하면 ‘목을 딴다’는 의미다. 듣기에 너무 섬뜩하고 야만적이다. 그걸 들으면서, 1968년 ‘1.21사태’ 때가 연상되었다.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이 있었을 때 당시 유일하게 포로가 되었던 김신조가 한 말이다. 무엇 때문에 침투해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라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아직 ‘정전’(휴전) 상태이니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종전(終戰)에 뒤따른 평화조약조차 없는 형편이니 북한과는 ‘준전시’ 상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 북한 수뇌부를 향해 ‘참수’라는 말을 들이대고 있는 것은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적대의식과 국가보위의 충정이 상승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뇌부의 ‘목을 따기’ 위한 부대 명칭에 시비를 건다는 것은 되레 ‘비애국적’이라는 오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핵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 수뇌부에 ‘참수’를 고집해야 할까. 부드러움과 딱딱함, 선과 악, 평화와 전쟁, 어느 쪽이 이길까.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로마서 12:20). 이는 결코 빈 말이 아님을 믿는다.

‘참수’라는 말이 보수정권에서 시작되었다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적대적 공생관계’ 하에서 대결해야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더 드러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수’ 같은 섬뜩한 말일수록 자신들의 존재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북한에 대화·협력을 추구하며 ‘베를린 선언’ 등으로 북한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 ‘참수’라는 말을 그대로 습용(襲用)하고 있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촛불 정권은 미국의 암시적인 ‘선제공격 기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대화를 강조해 왔다. 며칠 전 종교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를 주장했다. 남북관계에서 대화를 주장하면서 대화의 상대 수뇌부를 ‘참수’하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조치가 아닐까.

송 국방장관은 내년 말 쯤 ‘참수부대’가 제대로 인원과 장비가 갖춰질 것이라고 언명했다. 대통령은 대화하겠다고 하고 장관은 상대의 ‘목 딸’ 준비를 하고 있다. 역지사지해 보라. 누가 그 대화제의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는가. 필자는 정책상의 혼선이 주는 이 같은 문제보다 21세기 자유와 정의를 말하는 시대에 아직도 ‘참수’라는 야만적 용어가 거침없이 국가의 이름으로 용납되는 것이 더 부끄럽다. ‘촛불혁명’에 의해 ‘나라다움’을 표방하면서 태어난 정권이 ‘참수’라는 말을 통해 ‘민주 정의의 품격’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정권이나 언론, 민간이나 군인이고간에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하는 것을 보면서 경악과 수치를 금치 못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아직도 언어의 순화를 통해서 ‘나라의 품격’을 말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역사편찬위원장

*합참은 8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문자 공지를 보내 ‘참수부대’가 아닌 ‘특수임무여댠’이란 용어를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합참은 “일부 언론에서는 새로 편성된 '특수임무여단'을 '참수작전부대'로 칭하며 보도하고 있으나, '참수작전부대'는 우리 군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기에 향후 보도시부터는 '특수임무여단'이라는 정확한 용어사용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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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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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7-12-18 13:57:29

    반공이고 친종북이고 나발이고 간에 정으나, 걍 심장마비로 세상떠나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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