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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성공적인 정착? 정규직부터 늘리십시오”서울시 비정규직 공무원 유우성(탈북 청년)씨의 소박한 꿈

“생각보다 많은 탈북자들이 자립하고 있어요. 의료혜택을 받는 수급자(국민의료보험 대상자)도 50% 정도 되구요. 탈북자의 절반이 대한민국 국민과 똑같이 살고 있다는 얘기죠.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만큼 탈북자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수치가 증명하고 있는 거죠.”

   
▲ 서울시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에 근무하는 탈북 청년 유우성씨. ⓒ유우성

서울시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에 근무하는 유우성(33)씨의 설명이다. 유씨는 서울시민 기초생활수급자 20만명 중에서 탈북자를 담당하고 있다. 유씨가 하는 일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을 방문해 상담해주고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방문과 상담 여부는 유씨 스스로 결정한다. 대체로 1주일에 2~3일은 탈북자 가정을 방문한다. 전화 상담도 꽤 많이 온다. 유씨를 만난 날도 마침 상담을 가기 직전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수차례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저도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기초생활수급자였어요. 그때는 왜 그렇게 투정을 많이 부렸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공무원이 되어서 탈북자들을 만나보니 그들의 형편이나 심정을 잘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들이 뭘 필요로 하고 어떻게 하면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아니까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유씨는 연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몇 개월 뒤인 2011년 6월에 서울시청 공무원이 됐다. 시험을 거쳐 선발된 최초의 탈북자 출신 서울시청 공무원이다. 연세대 학생일 때만 해도 유씨의 마음은 비즈니스에 가 있었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중국어, 영어가 가능하니까 해외 파트에 소속돼 세계를 다니며 돈을 벌면 멋있겠다는 구상을 했었다. 그런 유씨를 나라와 민족, 탈북자들을 향하도록 마음을 돌린 게 바로 공무원이다.

“공무원을 하다 보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좀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대학생이거나 수급자일 때는 ‘어차피 나랏돈이고 세금인데 그까짓 돈이 대수인가’ 생각했는데 막상 공직에서 일해보니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가다듬게 되는 것 같아요. 저절로 애국심이 생기는 거죠.”

유씨는 2004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엔 함경북도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1년 정도 외과 의사를 했다. 탈북을 결행한 이유는 꼭 먹고살기가 힘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무원 아버지에 간호사 어머니를 둔 덕분에 유씨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과는 거리가 멀었다. 갈수록 교실에 빈자리들이 많아지는 이유를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그 역시 다른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 제재가 북한 경제를 어렵게 해서 식량위기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밀수꾼으로 중국에 두 번 가보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북한의 위기는 미국이나 남한 때문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독재와 폐쇄성 때문이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엇보다 유씨가 분노했던 것은 모든 위기를 내부(북한 정권)가 아닌 외부(미국을 비롯한 서방, 남한)에 돌리는 북한의 세뇌교육이었다.

“중국에 두 번 갔다오고 남한 라디오를 접하면서 북한이라는 나라가 달라 보였어요.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 정권이나 정책이 하나도 마음에 안들었어요. 철저한 세뇌교육에 속아서 너무나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었지요.”

현재 유씨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 혼자만 북한에서 살고 있다. 탈북을 시키려고 했지만 본인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그의 여동생이 제3국을 거쳐 조만간 남한에 들어올 예정이다. 동생 역시 청진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서 의사로 근무 중이었다. 만약 동생이 바람대로 남한에서 의사가 된다면 오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탈북자들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됐지만 그렇다고 유씨에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유씨는 지금 계약직, 그러니까 비정규직 신분이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자동 해고되기 때문에 늘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유 씨는 이 부분에 할 말이 많았다. 현재 유씨의 월급은 100만원이 약간 넘는다. 이걸로 겨우 생활비 충당하고 나면 대학원 등록금은 대출로 해결해야 한다. 직장이 있다 보니 기초생활수급자도 안되고, 대학원생이다 보니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장학금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대학생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끔 상담을 하러 가서 만나는 수급자가 부러워질 때도 있다. 등록금이나 세금 등 각종 면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서 잘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성공 케이스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후속 케이스가 이어지고 그것이 탈북자 전체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거든요. 어떤 직업이든 비정규직은 떠돌이 탈북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번 국정감사에서는 남한 내 탈북자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주는 통계가 발표됐다. 탈북자의 76%가 월 150만원 미만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고, 전체 취업자의 46%는 일용직·임시직 근로자다. 남한의 탈북자가 미국이나 영국 등 또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이른바 ‘탈남 현상’의 원인인 셈이다.

2013년 5월이면 유씨가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일한 지 만 2년이다. 유씨가 정규직이 될지 아니면 계약직으로 남을지 결정되는 달이기도 하다. 계약 당시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씨는 약속인 만큼 반드시 정규직 전환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남한에서 겪은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였다. 이것은 취업한 탈북자들의 공통 고민이기도 하다. 특히 직장 내 ‘끼리끼리’ 문화는 탈북자들에겐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장벽이다. 스스로 무시당하거나 ‘왕따’라고 생각하고 아예 남한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원만한 직장생활은 어렵고,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가 북한에서 의사를 했건 무슨 경력을 쌓았건 이런 것들이 남한의 직장에서는 다 무시됩니다. 저는 지금 직장에서 완전히 바닥입니다. 저한테 복사를 시키거나 아주 하찮은 일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느냐 안받아들이냐는 본인 선택인데 그게 결국은 성공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고참들 중에는 저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아가씨도 있고 대학도 안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저는 북한에서 의대를, 남한에서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내가 왜 이런 데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사무실에서는 제일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배우겠다는 각오로 버텨야 합니다. 참고, 넘기고, 그렇게 꾸준히 일을 하다보면 결국 좋은 일도 있고, 인정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 유씨는 주말이나 쉬는 날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등 왕성한 외부활동을 즐기는 편이다. ⓒ유우성

가톨릭에는 대부모(代父母) 제도가 있다. 성당에 처음 나온 초신자를 돌보고 이끌어주는 영적 부모인 셈이다. 유씨가 남한에 입국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성당에 다니던 유씨는 대부(代父)로부터 ‘사업이 어려우니 돈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탈북자 정착금을 은행에 넣으면 이자가 얼마 안되니 차라리 나한테 6개월간 맡기면 은행이자의 2~3배로 돌려주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탈북자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가족이다. 영적 아버지가 그렇게 부탁하니 거절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유씨는 친구의 결혼 적립금까지 모아 대부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 대부는 6개월 후 ‘사업이 잘 안됐다’며 모든 재산은 아내한테 돌려놓고 자신은 감방엘 들어가고 말았다. ‘사업이 잘 안돼 밥먹을 돈도 없다’고 해서 통장에 있던 30만원까지 빼서 대부의 손에 쥐어줬다. ‘나중에 돈이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대부는 그후로 연락을 끊었다. 황당하고 막막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무엇보다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면목이 없었다. 외국으로 도피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도 똑같은 인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소개로 만난 사람이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다.

“김 신부님이 제 사연을 다 들으시더니 ‘비싼 돈 주고 인생수업 받았다고 생각해라. 그걸 든든한 밑천 삼으면 앞으로 뭘 하든 성공할 거야’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친구의 돈을 매월 일정액씩 전부 다 갚아주셨죠. 신부님은 제가 힘들 때마다 상담해 주시고 진로에 대해 조언해 주셨어요. 그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아마 한국에 없었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죠.”

김 신부는 현재 대전에서 사제로 있다. 김 신부와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명절에는 꼭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 하지만 ‘절친’이었던 친구와는 관계가 소원해졌다. 결혼 자금으로 당장 필요했던 돈을 3년 후에나 다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때 당했던 불행이 도리어 행운이 되긴 했지만 믿었던 사람한테 사기 당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유씨의 소박한 꿈은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불안한 딱지를 하루빨리 떼는 것이다.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조그만 성공이 수많은 탈북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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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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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빨들아 2015-03-26 16:00:43

    유우성은 탈북자가 아니라 중국인이란다.....섞지 말라. 통일은 북한과 하는 것이지 중국하고 하는 것이 아니란다.....또라이 개코리아뉴스....니들이 분열을 책동하고 있다.   삭제

    • 박혜연 2015-01-03 11:23:37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든 대한민국사회야말로 북한사회만큼이나 재수나쁜 덜떨어진 떨거지들이다!   삭제

      • 애국자 2013-01-21 15:37:15

        무서운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삭제

        • jcnk153 2013-01-21 12:21:34

          http://news.donga.com/3/all/20130121/52460605/2?ref=false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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