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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산다는 것바뀐 계절을 맞듯 이미 시작된 통일을 받아들이는 것

요즘 ‘통일을 살자’ ‘통일을 산다’는 구호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그런 이름의 책도 나오고 기도회도 열리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언제 해빙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통일을 산다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것만큼 통일의 꿈과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벌써 몇 개월 전이다. 미국인 에릭 폴리(서울유에스에이 공동설립자 및 CEO) 목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그것은 바로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량 탈북자 입국을 통해서다. 남한은 통일이 시작됐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데서 통일을 찾고 있다. 그래서 남한 사회, 남한 교회가 아픈 것이다.”

봄은 이미 와 있는데 ‘언제나 봄이 올꼬’ 하며 기다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이미 와 있는 봄을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면 된다. 그것이 이미 와 있는 봄을 사는 것이다.

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님 재림 후에, 세상이 끝난 후에, 아니면 죽은 뒤에 시작되는 천국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우리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천국, 차츰차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천국, 그게 예수님이 약속한 천국이 아니던가. 그 천국을 ‘지금’ ‘여기서’ 받아들이고,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게 천국에 대한 올바른 태도 아닐까.

이 시대 통일을 산다는 건 뭘까. 1989년 새해 첫날 새벽, 문익환 목사는 이런 시를 썼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중략)”(‘잠꼬대 아닌 잠꼬대’ 중에서)

1989년이 어떤 때인가. 국가보안법이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되던 서릿발 같은 시대 아닌가. 문 목사는 그런 시대에 평양에 가겠다는 잠꼬대 같은 주장을 시로 썼다. 왜 그랬을까. 순진해서였을까. 그의 시를 더 보자.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이하 생략)”

문 목사는 시를 쓴 약 85일 뒤 진짜 평양엘 갔다.

이 시대 통일을 산다는 건 뭘까. 그건 통일 아닌 것은 모조리 거부하는 일, 모든 분단인 것을 온몸으로 맞서는 일이다. 거기에 위험이 기다리고 희생이 따른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통일은 이미 시작됐고, 완성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어린이, 청소년의 꿈은 통일이 대체해야 한다. 모든 가정주부의 한숨은 통일로 뚫어야 한다. 모든 정치인, 공무원들의 정책은 통일로부터 나와야 한다. 모든 직장인들은 통일 속에서 제2의 인생 설계를 해야 한다. 18대 대통령도 통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 한반도에 땅 밟고 서 있는 모든 것들은 통일을 향해 흐르고 흘러야 한다. 통일은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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