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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는 길을 가야 민족이 산다(2)통일로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릴 적의 일이다. 내가 살았던 지리산 골짜기 마을에는 도로가 없어서 논둑길을 따라 다니곤했다. 어느 날인가 도로가 없었던 마을에 도로를 내는 작업이 시작됐다. 어른들은 청사진을 따라 나무를 베어 내고 바위를 제하고 바닥을 단단하게 다졌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길내기 작업을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많은 분들이 흙먼지 속에서 땀을 흘렸다. 불도저 소리, 곡괭이질 소리, 삽질하는 소리와 함께 각종 거친 것들을 제하는 수고를 지켜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한 좋은 길이라면서 기꺼이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자원하여 길을 내는 작업에 동참했다. 돈을 받지 않아도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결국 오랜 시간의 수고와 헌신으로 마을엔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서 아이들은 등교도 하고, 차도 다니고, 물건도 사고팔았다. 나도 그 길을 따라서 학교를 다니고 어머니를 따라 장터에도 가서 세상을 구경하고 배울 수 있었다. 길은 외딴 시골 마을에 더 좋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었다.

“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누군가가 길을 내야만 뒤를 따라오는 이들이 그 길을 따라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사회는 건강한 자본주의가 아닌 천민자본주의 논리에 너무 익숙해져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점점 득세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일진대 우리의 현실은 십자가를 지거나 손해보는 일은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두가 눈앞의 이익만 붙잡으려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의미를 붙잡는 길을 가지 못한다. 언제나 얄팍한 모략과 중상하는 꾼들이 판을 칠 것이고 진실과 정직이 아닌 거짓과 모략으로 얼룩진 이야기들로 무성한 야바위꾼 세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라는 것은 의, 평강, 희락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결국 손해보고 희생하는 길을 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거친 돌을 제하며 평탄한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열어 가는 길임이 분명하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이것이 사라진 세상은 거짓과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고 만다.

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길을 만들 것을 꿈꾸고, 거친 돌을 제하며, 길을 평탄케 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거쳐서 길을 만들어간 것이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작업은 그런 힘든 작업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힘이 들더라도 물러서지 말고, 힘에 부치더라도 버티고 씨름을 해야 방치되어서 끊어지고 황폐해진 그 길들이 보수되고 수축되고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교회, 사역자, 성도가 얼마나 될까? 예수님이 보시기에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민족을 바라보면 분단된 민족의 현실이 보인다.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면 양극화 된 세상이 보인다.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세상 속에서 누가 통일한국의 꿈을 꾸는가? 복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통일한국의 비용을 누가 치르겠는가? 복음 안에서 사회참여를 통해 건강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고자 하는 비전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일한국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통일의 길을 누가 여는가? 민족의 분단을 아픔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다. 아픔을 느끼기에 그것을 치유하고자 손해를 보는 길을 기꺼이 걷는 것이다. 그들이 마침내 통일의 씨앗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북한 땅을 덮고 있는 어둠, 즉 비참하게 눌린 상태에 빠진 형제 자매의 고통을 외면하기보다는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말씀을 통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복음과 사회참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유기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느 한쪽을 제거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과 행함이 함께 하는 것이 '역사하는 믿음'이듯이 복음은 항상 사회참여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세상을 섬기며 사회참여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여기에 통일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복음과 사회참여가 만나서 짝을 이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성경은 이사야 58장 8-10절에서 이렇게 응답하고 있다.  

“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

멍에는 가난한 자들이 경험하는 모든 괴로운 일을 의미한다. 손가락질은 온갖 종류의 공격 그리고 위협과 잔인하게 다룸과 횡포를 의미한다. 허망한 말은 간교한 말, 거짓말, 불의를 가져오는 은밀한 악의, 기만, 공개적인 폭력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죄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멍에, 손가락질, 허망한 일이 가장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두 동강이가 난 상태에서 아파하고 신음하는 북한인 것이다. 우리의 형제 자매가 사는 북한이라면 이것을 제하는 역사적인 책임과 시대적인 과제를 오늘 남한의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것이다. 특별히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이 역사적 소명에 대해 반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흑암에 빛을 가져오는 역사의 주체는 복음과 역사 앞에서 깨어있는 예수의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통일문제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죄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야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진짜 평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죄의 문제는 사실상 분단된 민족의 가장 강력한 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섬김으로 손해 보는 길을 가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통일운동은 결국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다루는 회개에서 시작되어져야 한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치유되는 진정한 회복을 가져올 것이고 통일운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만일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멍에, 손가락질, 허망한 말을 제하는 일에 헌신한다면, 더 나아가 북한의 주린 형제자매들에게 심정이 동하고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통일 한국의 대안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여기에 있다. 

“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하나님의 사람들은 현실의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는다. 미래를 두고 두려움과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오늘 약속의 말씀처럼 복음과 사회참여가 삶에 잘 균형을 이루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공급하심, 하나님의 채워주심, 하나님의 빚어주심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흑백논리가 판치고 있다. 영적으로도 치우치고 정치적으로도 한쪽으로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흑백논리가 아닌 공의와 사랑이 만나고, 믿음과 행함이 만나고, 복음과 사회참여가 만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통합되어 흘러가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는 이제 통합의 시대와 융합의 시대로 흘러가고 있다. 교회도 민족도 이 거대한 흐름을 놓치지 말고 바로 보아야 한다. 역사의 이면에 하나님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를 적대시하며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 청년들에게 고한다. 그대들이 통일한국의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면 누가 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울고 있는 북한의 백성들을 돕겠는가? 그대들이 이 시대의 참된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의 손과 발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세상을 치유하며 민족과 열방을 치유하겠는가?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 성도들이 깨어나야 할 때이다. 민족을 위한 물 댄 동산과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은 인생을 지금 여기에서 꿈꾸고 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

한국교회는 다시 말씀을 들어야 한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부정부패와 단절하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면서 참된 회개와 금식을 회복해야만 할 때이다.

나는 한국교회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말하고 싶다. 그 새로운 희망이란 결코 자기의 탐욕을 채우는 바벨탑의 복음이 아닌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가는 각 영역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총체적인 복음에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분단의 시대에 한국 교회를 향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이다.

“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나는 여전히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이 말씀이 청년의 때보다 지금 이전보다 더 선명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말씀으로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쌓아두면 이기심으로 인해 오염되고 썩고 병든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선물들을 계속 흘러 보내면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다시 살아나고 소생시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한국교회가 통일시대에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사람들을 세워야 한다. 황폐한 곳이란 모든 것이 무시무시하게 초토화 되어버린 현상이 있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상황이 그러하다. 군사적인 것 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계가 모두 어그러지고 병들어 있고 죽어 있다. 특히 초토화되어 있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 땅 황무지와 같은 그곳에 장미꽃을 피울 청년세대가 나와야 한다. 한국교회가 통일 시대에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을 이들을 키워야 한다. 손해를 보면서 기꺼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들을 길러내야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들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이 땅의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민족의 미래를 만들어 갈 희망의 사람, 대안의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들,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꿈꾸고 있다. 그들의 출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세상의 욕망에 메이지 않고 비전을 따라 사는 신인류인 청년 세대가 이 땅 곳곳에 감추어져 있다. 스펙을 쌓기에 매몰된 세대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통일의 꿈을 붙들고 복음 안에서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거룩한 세대가 도처에서 자라고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단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 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겠다고 고백하는 그 사람들이 있다.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사는 순수한 사람들, 말씀대로 살려고 씨름하는 순전한 사람들, 그들이 분단된 조국의 미래도 두 동강이 나버린 민족의 희망의 사람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한사람이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아닐까?

이상갑 목사(무학교회 청년대학부, 학원복음화협의회 협동총무)

이상갑  sg9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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