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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통제 + 여성이면 국방패러다임 확 바꿀 수 있다”안김정애 (사)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정말 그런 것 같다. 통일·안보 관련 포럼이나 토론회에서 여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평화여성회) 대표의 말이. ‘젠더(gender) 의식이 빠진 평화·통일 담론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굉장히 낯설지만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분단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분단·갈등 해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그랬다. 그만큼 여성이 아닌 남성 일변도의 시각, 기득권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안 대표의 이 말이 남성들에겐 도전이자 공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여성들에겐 위안과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평화여성회는 여성의 힘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견인하자는 취지로 1997년 3월 창립했다. 평화와 통일 관련 연구·교육·국내외 연대활동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해오고 있다. 마침 여성들을 위한 평화아카데미인 여성평화공동체 만들기 2017 가을 프로젝트가 오는 22일부터 시작해 12월 22일까지 매월 목요일 또는 금요일 저녁에 여성미래센터 2층 여성교회에서 열린다. 평화에 기여하고 싶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서울 영등포동 여성미래센터 내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사무실에서 만난 안김정애 대표. ⓒ유코리아뉴스

안 대표는 이화여대 영문학과, 이화여대 석사(정치학)를 거쳐 인하대에서 ‘미국의 주한군사고문단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중이던 1989년 후반 2년간 육군사관학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국방군사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연구소장 공금횡령 문제를 제기해 다른 민간연구원들과 함께 해직됐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과장으로 실미도, 재일동포 간접조작 사건을 담당했었다.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을 했다.

안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동 여성미래센터 4층 평화여성회 사무실에서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평화를만드는여성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평화를만드는여성회(평화여성회) 창설엔 여성운동가이신 고 이우정 선생이 크게 기여하셨다. 분단 문제가 여성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시작됐다. 통일·안보 담론이 거의 남성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하고, 여성은 피해자나 희생자로만 남아 있다. 그건 아니지 않나. 분단의 피해자도 여성이고 해결자도 여성이라는 데서 평화여성회가 시작이 됐다. 북한 어린이 돕기, 남북 여성 교류 이런 실질적인 활동을 했었다.

-평화여성회에 참여하신 건 언제부터인가?

2002년부터 회원으로 참여는 해왔다. 그러다가 2010년도에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끝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5년 1월 정기총회에서 상임대표가 됐다. 그 당시는 박근혜 정부 하의 모든 NGO가 다 그랬지만 굉장히 활동이 위축되고 너무 어려웠다. 실제 이명박·박근혜 정권 거치면서 많은 NGO들이 문을 닫았고 활동가들이 떠났다. 평화여성회도 존폐위기가 심각했다. 전 대표께서 두 번 연임을 했었는데 더 이상 못하겠다고 내려놨다. ‘문을 닫자’, ‘청산하자’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같았으면 문을 닫아도 무방하지만 박근혜 정권하에서 문을 닫는다?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평화여성회가 20년이 됐는데 이렇게 문을 닫을 순 없었다. 내가 대표를 자원한 것이다. 그 당시 평화여성회가 통일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도 돌았었다. 압박에 못이겨 문을 닫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긴 싫었다. 그만큼 힘든 시기였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부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나?

있었다. 그래서 거기에 오른 단체들에게는 전혀 프로젝트를 안줬다. 우리도 계속 프로젝트를 못받고 있었다. 평화여성회가 통일부 산하로 등록된 단체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못받았다. ‘왜 이럴까? 찍혔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에야 서류를 확인해 보니까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2008년 광우병 반대했던 단체들을 정부에서는 다 스크린(검열)했다고 한다. 어디 소속 단체인지 다 조사해서 통일부에서도 그렇게 분류했던 것 같다.

-통일·안보 담론의 남성 편향에 대해 지적하셨는데?

통일 관련 논의의 장에 가면 패널들이 거의 다 남성이다. 모든 논의 주도자가 남성이다. 왜 이렇게 남성들의 목소리만 있을까? 저는 거기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다. 젠더(gender) 의식이 들어가지 않은 평화·통일 담론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쪽인 여성의 목소리가 무시되거나 아예 들리지 않는 게 이 바닥 아닌가. 저는 그 부분에 방점을 찍고, 여성 목소리가 좀 더 크고 다양하게 들리도록, 지금 여성정치 세력화 쪽에서 얘기하는 동수(同數)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 7월 27일 정전협정 64주년을 맞아 여성단체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안김정애 평화여성회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남녀 비율을 50 대 50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

30%는 아니라고 본다. 50 대 50 남녀 동수로 가야 한다고 본다. 장·차관, 모든 국회의원, 외교안보라인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외교부장관은 이번에 여성이 됐는데 외교·안보 쪽은 아예 다 여성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러다임이 바뀌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패러다임은 강 대 강, 무기 대 무기로, 전쟁 대 전쟁으로 가자는 거 아닌가. 대화와 타협, 이 얘기는 쏙 빠져 있다. 아예 판 자체를 여성들이 가져가면 대화와 타협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총에는 총, 핵에는 핵으로 맞서자는 데서는 해답이 나올 수가 없다.

-국방부장관을 여성이 할 경우 일반인들은 ‘군인들을 통솔하기에 여성은 너무 약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편견이다. 구라파 쪽은 여성 국방장관들이 있고 그 장관들이 여성이고 민간인이라고 해서 전혀 약한 건 아니다. 미국도 문민통제라고 해서 군에 대해서는 철저히 민간인이 국방장관을 한다. 이게 전통인데 왜 우리는 이걸 안 닮아가는지 모르겠다. 다른 건 다 ‘친미, 동맹’ 해가면서 닮아가는데 말이다. (현직 여성 국방장관으로는 프랑스의 실비 굴라르, 독일의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이탈리아의 로베르타 피노티, 스페인의 마리아 돌로레스 데 코스페달, 네덜란드의 예니네 헤니스 플라셰르트, 케냐의 라이첼 오마모, 알바니아의 미미 코드헬리 등이 있다. 일본의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는 최근 사임했고, 페니 모르다운트는 캐머런 총리 때 영국 최초 여성 국방장관에 올랐다.)

저는 문민통제 플러스 여성이면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남성 일변도의, 강경 일변도의 목소리는 결코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여성들은 전쟁 패러다임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물론 박근혜 같은 예외적이긴 경우가 있긴 하다. 그리고 강경론자인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예외다. 보통의 여성이 외교안보 라인에 들어가면 ‘일단 북한과 얘기해보자’ 이 얘기가 먼저지 ‘너희들 포기 안하면 우리가 공격할 거다’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북한이 계속 핵·미사일 실험을 하는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아무리 평화를 강조하는 여성이라고 해도 ‘대화’ 얘기를 꺼내긴 어렵지 않을까?

허를 찌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이 엄중하다? 엄중하니까 더욱 그렇다. 최근에 제가 몽골에서 열린 ‘울란바토로 프로세스’ 회의에 다녀왔다. 동북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해마다 모여서 전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긴장과 분쟁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3년째 모이고 있다. 여기엔 북한도 참석한다. 북한 대표단이 공식석상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다.’ 저는 일단 이 말을 믿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핵 회담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도 약속을 어긴 게 있지 않나. 미국 책임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북한 잘못이라고 하는 건 틀렸다고 본다. 북한이 최소한 생존수단이라고 주장하는 핵에 대해 ‘너희들 그랬니?’라고 말을 들어주는 게 맞지 ‘너희들 그거 아니야’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여자들 대화법에선 일단 ‘왜 그랬어?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봐주는 게 제일 먼저다. 그 다음 끄덕여주고 들어주는 거다. ‘응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 같이 이야기해보자’ 이렇게 가는 거다. 여성들은 대부분 이런 3단계 대화방법으로 간다. 하지만 남북대화를 했던 많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해봤는데도 결국 안통해. 그러니 우리도 세게 나갈 수밖에 없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걸러내야 한다고 본다.

안김정애 평화여성회 대표가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벌이고 있다. ⓒ안김정애

-문재인 정부의 통일·안보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저는 공포와 분단을 조장해서 이득을 얻는 세력들이 남북한 공히 있다고 본다. 북한은 아마 민족보위부일 거고, 남한은 국정원일 거다. 그 다음 소수 국방부, 외교안보라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미 공조’를 외치는 세력의 뿌리는 청산하지 못한 친일 세력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다른 거대 세력의 바지가랑이를 잡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세력들을 걸러낼 수만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지금 문 대통령이 이걸 몰라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주변에 너무나 많은 친미 세력들의 힘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저는 외교안보라인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 대해서도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대찬 사람들로 인력풀을 짜지 않으면 저는 문 대통령이 1년 내로 레임덕을 맞을 거라고 본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런 의견들을 정부에도 전달하고 있나?

전달하고 있다. ‘이게 안되면 문재인 정부 실패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관련해서 포럼도 열고 외교안보 쪽 사람들 만나 얘기도 하고, 지난주엔 사드 배치 현장에 가서 외치기도 했다.

-성주 사드 추가 배치 현장에 직접 가셨나?

그렇다. 경찰들이 외곽을 다 막아놓는 바람에 산길을 통해 그것도 ‘원불교 교인’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겨우 현장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이 너무 충격이었다. 밤 12시 쯤 됐는데 경찰들이 주민들·시민들을 뜯어내는 소리, 고함 소리, 비명 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꼼짝없이 막히는 바람에 그걸 돕지도 못하고 8시간 동안 꼬박 지켜보는데 한숨과 슬픔만 절로 나왔다.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밀려나지 않고 새벽까지 지킬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한테 명분을 주는 거다. 미 8군 사령관한테도 그렇고.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 못들어갔습니다’라고 명분을 줄 수 있다. 새벽까지 버티자.” 나도 너무 순진하게 ‘그렇겠네’ 하면서 옆에 계속 앉아 있었는데, 웬걸 아침 8시 쯤 되니까 포장을 씌운 사드 트럭이 들어가는데 4월 26일 배치 때와는 너무 달랐다. 그때는 ‘박근혜 정권이 설마?’ 이렇게 봤는데, 이번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다들 혼이 빠진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이게 뭐냐?’ 하면서 옆에 있던 할머니들도 모두 울었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미쳤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났다.

안 대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의 충격과 설움이 복받치는 듯했다.

-대통령이 그날 저녁 담화에서 ‘안보 상황이 어느 때보다 엄중하고, 현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다, 그리고 미리 예고했던 것’이라고 했는데?

저는 동의 안한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되면 평양에 먼저 가겠다’고 했다. 저는 그게 맞다고 본다. 한미 동맹, 한미 공조라는 것은 결국 남의 힘에 의지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데 국제정치적으로도 말이 안된다. 나라들이 다 자국 이익을 위해서 뛰는데, 자기들한테 이익이 된다면 어제의 적 하고도 손을 잡는 것이 국제 정치인데 그 기본적인 에이비시를 모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주변에서는 ‘문 대통령이 북한에 가봤자 얻을 게 없다’, ‘외교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하는데, 모든 걸 너무 복잡하게 만든 게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논리인 것 같다. 설사 문 대통령이 평양에 먼저 가서 아무것도 얻어오는 게 없어도 좋다. 가서 밥이라도 얻어먹고 ‘그동안 미안했다. 내가 이전 정부의 잘못된 것도 다 안고가겠다’ 이런 한 마디만 해줬으면 북한이 저렇게는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실험이 한반도 긴장을 조장하는 건 사실 아닌가?

물론이다. 난 북한한테도 할 말이 많다. 지난번 울란바토르에서 북한 대표단 만났을 때 느낀 게 그들의 말 속에서도 남한을 우습게 보는 게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코리아 패싱’을 실감했다. 내가 그랬다. “당신들 틀렸다. ‘우리 민족끼리’라고 얘기했는데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 그랬더니 “우리도 섭섭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럴 줄 몰랐다. 미국의 요구에 다 동조하고 유엔 제재 그대로 따라하고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하거나 축소하라는데 하나도 안들어줬지 않느냐?”라고 오히려 따졌다. 북한 대표단이 이런 얘기도 했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 초기엔 기대했는데 이제는 안한다. 남한은 빠져 있으라. 우리가 미국과 맞장을 뜨겠다.” 미국이 해온 70여 년간의 봉쇄와 제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이제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틀어질 대로 너무 많이 틀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민사회단체로 모였고 이런 대화의 플랫폼이 있는데 여기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일단 빠져 있으라’는 얘기만 들었다. 굉장히 무섭게 들렸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 북한의 주장이 다 맞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 축소 같은 것은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었던 거라고 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와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연례적인 것이고 방어적인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내 집앞에서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한 나는 절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울란바토르 프로세스에서 남한 대표단이 농담으로 그랬다. ‘미국 공격할 때 우리한테는 미리 통보해 주실 겁니까? 그래야 우리가 미리 피하죠.’ 그랬더니 북한 대표단이 그랬다. ‘문재인 정부에 너무나 실망해서 더 이상 기댈 게 없어서 미국과 맞장을 뜨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더 이상 남한을 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랬다. ‘그걸 어떻게 믿나? 불바다 발언도 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거야 말로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저는 그런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왜 그런가 하면 장사정포로 남한에 대고 쏘면 불바다 된다고 하지 않나. 핵이니 미사일이니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북한 대표단이 하는 말이 ‘우리가 그렇게까지 (남한에) 쏴서 우리에게 덕 될 게 뭡니까? 제재 해제하고 적대시 정책 포기한다면 우린 평화협정 맺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다.’ 그런 얘길 했다. 거기서부터 일단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우린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열린 울란바타르 프로세스 3차 회의 참석자들. 남북한을 비롯해 6자 회담 당사국, 몽골 등 동북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올해 3년째다.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최근에 북한에 다녀온 게 언제인가?

4차 핵실험 직전인 2015년 12월 23일 딱 하루 개성에 갔었다. 남북 여성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그때 매일 통일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더니 선심 쓰듯이 개성을 다녀오게 해줬다. 개성에 가면서 느꼈던 게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남북 여성교류가 왜 이렇게 안될까?’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화가 났다. 북한 여성 만나겠다는데 누가 허락하면 가고 허락 안하면 못가고, 그게 너무 화가 나는 거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 한미 공조, 한미 동맹, 즉 미국을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문재인 정부가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쇄신부터 했으면 좋겠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군사 관련 박사학위을 받으셨는데, 아버지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 월남한 분들이다. 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자시다. 어릴 적부터 군대문화가 너무 싫었다. 이모부는 한국전 상이용사로 한쪽 팔이 없었다. 아버지도 다리를 다치셔서 평생 불편하게 다니셨다. 어릴 적 주변엔 군대 갔다와서 잘못되거나 군대 폭력 때문에 집안에서도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어머니도 이모도 그런 피해자들이셨다. 아버지는 늘 전쟁 얘기, 영웅담을 늘어놓으셨다. ‘공산당, 빨갱이는 나쁜 놈들’ 이런 얘기도 늘 하셨다. 밥상머리에서도 늘 그런 얘기를 하셨다. 우리가 밥투정이라고 할라치면 ‘우린 주먹밥 하나도 못먹고 살았다’는 얘기를 한참 하셨다. 어릴 적 우리 가족사도 그렇고, 동네 아저씨들도 그렇고, ‘도대체 왜 저러실까?’ 궁금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점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중학생 때 사회 선생님이 전쟁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다가 대학 오면서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게 됐다.

‘돈벌이가 된다’는 부모의 말에 선택한 영문학은 안 대표에게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때부터 부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군사 문제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대학원 진학까지 했다. 1980년대 중반 학계에서 ‘분단사 다시 보기 운동’이 한창일 때 소장학자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에 모여 현대사를 공부했다. 그러면서 남한 중심의 항일운동사와 분단사가 반쪽임을 깨닫고 점점 군사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군대문화 이런 걸 너무 싫어하셨는데 정작 박사논문과 이후 경력은 군대와 관련돼 있다. 이유가 뭔가?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 여성들은 ‘군사 문제’ 이런 것 싫어하지 않나?

싫어하지만 실체를 알지 않으면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에 일단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육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이 그런 얘길 많이 해주셨다. 1972년 내가 중학생일 때 7·4 남북 공동성명이 있었다. 그때 사회 선생님이 그 얘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분단사’를 알게 됐고, 가족, 동네 아저씨들을 통해 전쟁, 분단의 문제를 접하게 됐다. 아버지는 7·4 공동성명이 나오자마자 짐을 싸셨다. ‘이제 고향에 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장면이 기억난다. 하지만 7·4 공동성명은 나중에 보니까 박정희·김일성의 정권연장 수단이었다. 아버지는 평안남도 개천 출신이신데 남한에 내려와서 한국전쟁 난 뒤 제주도에서 훈련받고 3개월 만에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셨다.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북으로 올라가는데 어느 마을에서 굉장히 어려 보이는 까까머리 인민군이 자기 앞에서 막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문득 북한에 두고온 남동생이 생각나더라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인민군은 다 총 쏴서 죽이거나 포로들도 귀찮아서 죽였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눈앞에 지나가는 걸 못쏘신 것이다. 그래서 대학 다닐 때 내가 아버지한테 자주 말씀드렸다. “아버지, 분명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도 월남하신 분이고, 두고온 동생들도 있는데 ‘빨갱이들 다 죽여야 한다’ 이건 잘못된 생각 같지 않으세요?” 아버지는 끄떡도 않으셨다. 요즘으로 치면 ‘아스팔트 할배들’ 같은 극보수셨다. ‘왜 그럴까?’ 생각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분단 문제가 심각했던 것이다.

 

안 대표가 관심있던 것은 분단현대사였다. 그 중에서도 한미관계였다. 미국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접했던 광주민주항쟁도 그런 계기가 됐다. 신문 보도는 ‘폭도들’이라고 했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전두환이 작전지휘권도 없는데 어떻게 군대를 움직이나? 미국이 뒤를 봐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물리력을 과시하는 군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스탈린의 말 등 ‘여성으로서 군대를 공부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분단 문제, 미국 문제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과정 시작과 동시에 마침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강의 자리가 나서 육사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육사에서의 정치학 강의는 어떠셨나?

가보니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그대로 베꼈다. 커리큘럼, 심지어 제복도 똑같았다. 맥아더가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다. 교재도 우리나라 것이 아닌 외국 학자들 이론 소개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 측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커리큘럼은 그대로 따르면서도 중간중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제주 4·3부터 분단사, 현대사, 1980년대 전두환 얘기까지 다 했다. 그러면서 이 얘길 했다. ‘우리나라에 육사 출신 대통령이 3명이나 있는데 너희들 생각엔 그게 프라이드 같지만 실상은 창피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은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당시 백종천 씨(참여정부 청와대 안보실장)가 육사 사회과학부 부장이었다.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웃으면서 ‘우리 애들이 들어올 때는 다 파란 물이었는데 안 선생 덕분에 빨간 물이 됐다’고 했다. 농담같이 얘기하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굉장히 심각했다고 한다. 결국 2년 하고서 끝냈다.

-그 2년간의 육사 강의를 통해 깨달은 게 많으실 것 같다.

생도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들어오니까 너무 순수했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에 따라 한국군이 정말 제대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맡고 보니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었다. 나중에 웨스트포인트도 가봤지만 거기도 똑같았다. 주입식 교육 일변도였다. 토론을 시키긴 하는데 그 토론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주입해놓고 거기서 시작하는 거다. 이 미국의 영향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나라 국가폭력의 틀을 미국이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데 관심을 갖고 논문을 쓰게 됐다. 안보는 절대 군사안보로만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민안보가 중요하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포괄하고 안전에서 출발하는 게 안보인데, 몇몇 사람들을 위한,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한 안보여서는 안된다는 인식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다.

-군대 문화를 싫어하시는데 정작 대표님은 씩씩한 군인의 모습도 있으신 것 같다.

제가 육사에 갔을 때 그런 얘길 자주 들었다. ‘여군이십니까?’ 말하는 것도 그렇고 폼도 그렇고 왠지 군인 같아 보인다는 거다. 스스로는 유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엄마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일제시대 때 군국주의 교육을 받으신 분인데 원산 사범대학을 나오셨다. 거기서 공부하면서 일본 학생들한테 지면 안되니까 한겨울 아침에 찬물로 머리감고 일어를 외웠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너희도 엄마처럼만 해봐라’ 하시는데, 우리는 그런 게 싫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부지런 떠는 게 너무 싫었다. ‘칼같이,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엄마한테 늘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닮아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평화운동 하시는 분이 씩씩하게 하시니까 오히려 괜찮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 추가 배치를 강행하고 이런 게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보나?

저는 미국의 압력이라고 본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런 딜레마는 있는 것 같다. 촛불은 알겠는데 청와대 집권을 하고 보니까 촛불은 조직된 힘이나 정책이 아니지 않나. 당장 눈앞에 펼쳐질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해보니까 이해가 된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공문을 작성해서 내려보내면 실행이 되는데, 촛불은 실행할 힘이 없다.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됐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얘길 하지 않았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그 딜레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뒷배경에 촛불이 있긴 하지만 이 사람들이 다 인력풀이 되어줄 수도 없는 거고, 눈에 보이는 정책 현실화를 가져다 줄 수도 없는 것이니까. 문 대통령도 청와대 비서실장을 해봤으니까 잘 알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다. 강고한 관료세력이 저는 거의 전부라고 본다. 특히 정의용 안보실장의 경우 그런 속에서 커왔던 사람 아닌가. 안전제일주의,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몇 십년 동안 그런 사고가 머릿속에 박힌 사람 아닌가. 국정원, 외교부, 통일부가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하면서 말리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때 ‘북한에 원유공급 중단해 달라’고 한 요청도 사무관 같은 사람의 말에 그렇게 넘어갔다는 게 창피한 일 아닌가. ‘대통령 각하, 예전에 보니까 북한을 계속 조이니까 한번은 협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조입시다.’ 이렇게 한 게 이번 사드 추가 배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때만 해도 ‘문 대통령이 이렇게 한번 해봤다가 다시 대화 병행하겠다, 투 트랙으로 가겠다’ 이렇게 번복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 없이 사드 4기가 추가 배치되는 걸 눈앞에서 보니까 ‘미쳤구나’ 욕이 나왔던 것이다. 더 이상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아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이 촛불은 뭐고 내 책임은 없는가? 이런 별별 생각이 들면서 지금도 굉장히 곤혹스럽다.

안 대표는 특히 국방차관이 지난 6월 27일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을 만나서 ‘주민과의 소통, 절차적 투명성과 정당성’을 강조했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사후에라도 주민들을 찾아가 사과하고 무릎이라도 꿇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아침 사드 발사대 4기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문재인 정부의 사드 추가 배치,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한미동맹 내가 잘못 생각했다. 촛불들한테 미안하다. 다시 재정비하겠다’ 그러면서 인적 청산 해야 한다. 자기(대통령)한테 그런 식의 조언을 해서 무리수를 뒀는데 다 실패로 끝난 것 아닌가. 적십자회담, 군사회담 다 거부당하지 않았나. 그 제안했던 사람들 다 쳐내야 하는데 왜 끼고도나. 다시 인력풀을 가동해서 철저하게 한미동맹 재검토하겠다는 사람들로 대체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 정확히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지금은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라인이 정비가 안돼서 호기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왜 이걸 못치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어리석다. 미국은 굉장히 여론을 무서워하는 나라다. 한국의 여론에 따라 미국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지금 미국 대사관 앞에서 매일 촛불시위 하고, 평화어머니회에서 매주 화요일, 목요일 시위를 한다. 저도 한 달에 한 번씩 시위를 한다. 이렇게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한미동맹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는 외교안보라인 바꾸고, 그러면 미국의 공백기를 이용해서 한미동맹 새 틀 짤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된 한국계 미국인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빅터 차 내정) 얘길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들었다. 미국 대표로 참석한 분이 그 얘길 듣더니 회의석상에서 ‘crazy'라고 했다. 자기가 빅터차를 잘 아는데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빅터 차도 국내 여론으로 인준이 안되도록 할 수 있다는 얘긴가?

빅터 차가 지명은 받았지만 인준받는 데 몇 달은 걸린다. 올해 말에 인준이 끝날지 안끝날지도 모른다. 빅터 차는 남북 대화를 반대하는 자다. 북미 평화협정, 수교를 반대하는 자다. 관련 증거나 책은 차고 넘친다. 이것만 가지고도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시위를 한다면 빅터 차 인준 막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된 상태에서 오히려 우리가 틀을 짤 수 있는 호기인데 이걸 놓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너무 안타까운 것이다.

-처음에 대북 특사 얘기를 하셨는데 어떤 분이 괜찮을 것 같나?

저는 이희호 여사를 보내면 좋겠다. 아니면 임동원 전 장관 같은 분도 괜찮을 거라고 본다. 북에 보냈는데 김정은을 못만나고 오면 어떤가. 아니면 식사만 하고 오면 어떤가. 북한에서는 그걸 아주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거기까지 노구를 이끌고 오셨는데 정말 정세 때문에 미안하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한다. 사회단체 분들도 심양 같은데서 북한 분들 만나면 그런 얘길 자주 듣는다고 들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북한이 모든 걸 자꾸 미국한테 돌리니까 그렇긴 한데 제 생각엔 특사는 분명히 필요하고, 관료가 아니면 어떤가. 전직 대통령 부인, 임동원 전 장관 보내면 미안해서라도 호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물꼬를 터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못 갖고 돌아오면 자존심 상하니까 그런다는 얘기도 있지만 지금은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인지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이 뭔지 같이 무릎을 맞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북한에서 안받아준다고 해도 좋다. 그래도 자꾸 민간교류 하자고 얘기하고 또 만나고 해야 한다. 몽골서 만난 북한 사람들도 우리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한테는 감정이 없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핵은 최후의 생존, 자위수단’인 걸 믿어줘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이 얘길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북’ ‘빨갱이’ 얘길 듣더라도 그게 평화로 가는 길이기에 어쩔 수 없다.

-분단해소나 통일 하면 거창하게 들리는데, 개인이 이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추천해주신다면?

저는 일단 미국에 대해 ‘전쟁은 아니다’라고 하는 1인 시위나 서명을 하면 좋겠다. 서명은 요즘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할 수 있다. 저 같은 경우는 1인 시위도 하고 있다. 집회 참가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뭔가를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머릿수를 보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강연이나 포럼 같은 데 가서 자기의견 얘기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주변에 늘려 있는 군사주의 문화에 대한 감수성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명령, 일방성, 폭력 이 모든 게 군사주의 문화라고 본다. 그런 폭력, 부당한 지시에 대해 ‘노’라가 얘기할 수 있고, 잘못된 국가공권력에 대해 내가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윗사람이 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연대해 ‘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드 배치 반대는 좀 과격해보여서 일반인들은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이 왜 이런 데 관심 갖고 참여해야 하는 걸까?

이게 결국에는 나한테뿐만 아니라 다음세대에도 떨어지는 피해이기 때문이다. 평화감수성은 그런 식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만 불편을 겪지 않으면 된다’라고 하는 건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 세대가 불바다가 된다는 걸 상정하고, 그러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정말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고 내가 사는 아파트가 불바다가 된다면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더 이상 내 이익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좀 멀리 내다봤으면 좋겠다. 사드배치 반대, 주한미군 철수, 이렇게 하면 딱딱하고 무서워 보인다. 저는 그래서 집회 주관 단체들한테도 계속 요구한다. 딱딱하게 하지 말고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평화 노래를 부르고, 젊은이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기왕이면 구호도 랩으로 하자고 말이다. 시위가 딱딱하거나 울분에 차 있으면 나도 숨이 넘어갈 것 같다. 그건 아니다. 일상에서의 평화운동도 중요하다. 난 밥상머리에서 딸에게 우리가 왜 분단됐고 내가 성주 가서 보고 느낀 것을 얘기해 준다. 조카들한테, 가족들한테도 이야기한다. 그게 내가 하는 작지만 소중한 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운동,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고, 해법은 뭔지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린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가 여성들을 위한 평화교육의 일환으로 개최하고 있는 2017 가을 프로젝트 프로그램.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통일 분야의 집단 지성을 통해 건강한 통일담론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향후 인터뷰이들과 독자들의 만남, 북한 사람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장을 마련해가려고 한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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