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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동네 날라리'의 앙코르 공연을 기다리며…[리뷰] 북한을 다룬 다른 연극들과 달랐던 세 가지 비결


   
▲ 한류를 통해 남한을 접한 가족이 탈북을 하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린 연극 <아랫동네 날라리>
한류를 통해 남한을 접한 가족이 탈북을 하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린 연극 <아랫동네 날라리>는 뭔가 달랐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현실을 그린 여러 연극, 영화를 봐왔지만 다른 궤적을 그려내고 있었거든요. (곧 재공연이 열릴 예정이니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 연극이 다르게 느껴졌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과장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북한관련 연극에서는 ‘과장’은 필수지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사람들은 다 굶어 죽어가게 표현이 되고, 아무 생각 없이 진공상태에서 남한의 구원만을 기다리고 있는 무기력한 사람들로 표현되기도 하지요. 이 연극은 북한의 일반적인 주민을 그려냅니다. 가난과 당의 무게에 짓눌려 살면서도, 가무(歌舞)의 흥을 즐길 줄 아는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으로 표현해냅니다.

둘째, 그래서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대중의 무관심에 따른 충격요법으로 왕왕 자극적인 사실들이 공연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극요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무섭다’ ‘불쌍하다’ ‘복잡하다’ 사이를 공회전합니다. 그 어떤 동력도 새로이 수혈되지 못합니다. 이 연극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습니다. 무섭거나, 불쌍하거나, 복잡하게 꼬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생활’을 표현해냅니다.

기존의 연극들이 ‘과장’과 ‘자극’을 활용했던 이유는 아마 기획자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전과 홍보, 선동을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연극의 기획자는 <한류, 통일의 바람>의 저자로 최근 탈북한 100여명의 탈북자를 인터뷰하며, 진지한 연구를 해왔다고 합니다. 과장과 자극, 선동의 유혹을 이겨낸 비결이겠지요.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연극답게 ‘유머’ 요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 연극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보통 다른 북한관련 연극의 경우, 유머를 던지기 위해 북한을 풍자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남을 깎아내리면서 웃기는 유머스타일을 개그맨들은 가장 저급한 유머라고 한다는 데에,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 연극은 그 수준을 넘어섭니다. 북한의 모양새를 비난하지 않고도 충분히 관객과 웃음을 공유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느 여고생의 후기가 눈에 띕니다.
“북한이라는 말을 들으면 좋은 감정보다는 좋지 않은 감정이 먼저였고 그들은 매우 가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 연극을 통해서 저의 그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남한 사람들 중 통일은 원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사람이 있듯이 북한 사람들도 탈북을 원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저를 포함한 많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소개팅을 하는 남자가 북한에는 세탁기가 있느냐, 핸드폰이 있느냐고 묻는데, 제가 북한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 이 연극을 통해서 관심 없던 북한을 더 관심 있게 보게 된 계기가 되었고, 몰랐던 삶을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진지한 연구를 바탕으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인 ‘선동’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간 자극을 통한 충격요법으로 통일운동을 해온 분들이라면, 이 연극을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재공연을 위한 재원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극단으로 치우쳐 선동하지 않으면 후원받지 못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니까요.

* 이 리뷰는 <통일코리아> 11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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