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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구소련 엘리트를 계승했지만 북한은?레닌그라드 출신 연구자 강의에 탈북자들 “무죄방면 반대"

통일을 준비한다면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문제 역시 통일을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 한국인, 그리고 나와 같은 외국인이 차분히 머리를 맞대야 할 만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마침 그 자리가 있어서 소개해 보고 싶다. 참석자들에겐 용기가 필요한 그런 내용이었다.

레닌그라드 출신 연구자가 소련 붕괴와 그 뒤 모습에 관해 강의했다. 러시아인 강사, 동반한 한국인 1명, 그리고 탈북자 25명, 그리고 필자 이렇게 참석했다. 먼저 그의 강연 내용을 나 나름대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봤다.

“소련의 붕괴는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큰 것인데 키워드는 ‘비교’이다. 국가로서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탄났던 것이 아니고 미국・유럽과 소련과의 경제‘제품’ 비교가 시민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품, 영화, 인적 교류 등에 의한 직접‧간접의 정보로 인해, 그 질의 차이로부터 일반 시민에게 소련 경제의 위축을 느끼게 했다. 게다가 레닌(Lenin) 사후, 소련은 시민을 공포로 억누르지 않았었다. 시민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현 정부의 결점을 안주로 삼고 술을 마셔도 괜찮았다. 즉, 큰 움직임이 되지 않는 한 반대 운동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래 농장지역 등 지방은 공산주의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개혁을 이룰 수 있는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소련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공산당에 의한 일당 독재제가 60년 이상 계속 되어왔다. 이러한 경직된 정부를 고쳐 세우기 위해, 1985년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제창・실천했다. 그것에 의해 소련의 정치 경제는 민주적인 방향으로 개량되고, 높아지는 국내 민주화 압력에 의해 일당 독재제도는 무너지고 소련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은 러시아 연방으로 국가가 형성되어 갔다. 그 새로운 국가를 가장 유효하게 견인한 자들이 구 소련의 엘리트들이었다. 이유는 국가 정치 체제가 바뀌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국가 운영에 관해서는 구 소련 형태를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구소련의 간부들이며, 그들은 소련 체제가 붕괴해도 새로운 제도하에 갈 곳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분쟁도 없이 체제는 그렇게 부드럽게 이행되었다. 사실 구간부들은 체제 변환 후 가장 유복층에 속하게 되었다. 물론 체제가 붕괴해서 시장주의 경제가 들어간 후 당분간은 혼란이 계속되어 현재도 군수산업에 의지하고 있던 지방도시 등은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체제 변환을 맞아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신체제에서 본 구정치체제 정치범인들의 취급 문제다. 신체제의 이행에 의해 ‘죄인’이 되어 형벌을 받을 것이 분명한 경우, 구체제의 간부들은 개방을 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형벌을 제한해서 사형, 투옥, 무거운 벌금 등을 과하지 않는 것을 약속한다. 그 대신 신체제하에서의 일정 이상의 승진은 없다. 일종의 타협으로서 이것이 개방을 재촉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간부끼리 혹은 신세력과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유혈의 체제 교대가 일어난다. 북한 현행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이것을 보장함으로써 부드럽게 해방이 진행될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탈북자들은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 연방의 경과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모습이었지만 후반 부분, 즉 간부의 취급에 대해서는 달랐다. 중급 이하 간부의 등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반대는 없었다. 한 대학원생의 질문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물었다. “장성택 클래스 간부는 어떻게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나?” 강사는 “마카오엘 가든지 다른 해외로 가면 될 것 같아요”라며 “그것이 피를 흘리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순간 강의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몇몇 탈북자가 “숙청 때문에 본인은 물론 가족・친족들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던 사람들이 입 다물고 있을 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행의 장본인들이 “무죄 방면”에 가까운 형태로 처리되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용서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강사와 동행한 한국인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했지만, 다른 탈북자가 말을 정지시키고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기색조차 없을 만큼 흥분상태였다. 강사는 “최종적인 판단은 탈북자를 포함한 북쪽 인민의 판단에 의할 수밖에 없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계속)

<교토대 졸업, 동국대 북한학 박사과정>

 

와다 신스케  nohos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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