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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를 안다고 말하기 전에…"한류·탈북자·북한 연구하는 부부 강동완교수, 박정란박사 인터뷰
  • 이범진 기자·조한나 학생기자
  • 승인 2012.10.2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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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한류 현상에 대한 책을 출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극 ‘아랫동네날라리’와 ‘스타트! 스타-T'를 기획한 강동완 교수(동아대 정치외교학과)와 박정란 박사(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미 잘 알려진 부부 북한학자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매번 백여 명의 탈북자들을 직접 만난다. 단순한 설문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깊은 사연을 듣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인터뷰 동안 ‘탈북자가 이렇다, 어떻다’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고유한 이야기를 하나의 덩어리로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학자적 양심이었다.

이들이 기획한 연극이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고, 가장 사실에 가까웠던 이유도 박 박사가 직접 연구 성과에 기대어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저마다 고유한 이야기들 모여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된 것이다. 박 박사는 “북한관련 강의를 할 때 많은 한계를 느낀다. 눈빛들이 다 죽어있다. 그런데 같은 콘텐츠가 연극의 형태로 전달되니까 대중들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기공연이나 순회공연도 계획하고 있지만, 국내 공연 여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 강동완 교수와 박정란 박사.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지난 18일 목요일, 두 부부를 만나 북한관련 연구를 하게 된 계기, 한류 현상과 탈남화 현상을 비롯해 탈북자들의 남한살이에 대해 물었다. 마침 이날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사무실(서울 여의도동)에서 ‘탈북자들의 취업 장려금 제도’에 대해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 했다.


3년 근속 탈북자 260명, 전체 탈북자의 1%
근속 동력은 사람마다 달라 100명 사례연구 중

- 최근 연구하는 주제가 ‘탈북자들의 취업 장려금 제도’와 관련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박정란 박사(이하 ‘박’) : 탈북자들이 취업을 하면 취업 장려금 제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장려금이 지원된다. 근속 3년차까지 받을 수 있는데, 3년까지 근무를 계속해서 장려금을 전부 받은 분들을 만나고 있다.

- 3년 근속을 하신 분들이 몇 명 정도인지?
강동완 박사(이하 ‘강’) : 260명이다. 전체 탈북자의 1%인 셈이다. 그중 100명 정도 되는 분들의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 무엇을 알기 위한 연구인지?

박 : 그 의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 성과를 보면 심리적인 요인, 사회적인 요인, 심리적인 부분에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잘해야 한다”와 같이 비슷비슷했는데, 그 의지가 어디서 오는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려고 한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와야 해서인지,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해야 해서? 자녀가 있어서? 그 동력이 어디서 오는지는 개인마다 다 다르다.

- 예를 들면?
인내해주면서 이해해주는 상사나 고용주가 있었다는 것이 공통된 특성이었다. 이런 게 없으면 3년을 채우더라도 금방 그만둔다. 3년이 지나면 고용주도 탈북자들의 월급의 50%를 지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고용주-고용인의 관계가 끊어지기 쉽다. 탈북자를 퇴사 시키고, 다른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고용지원금의 유혹을 물리치고, 계속 고용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경우는 3년 이상 근속하는 경우도 있다. 사례별로 조금 있다. 자세한 내용은 10월 말, 11월 초에 공개할 예정이다.


탈북자 사례별 연구가 연극의 시나리오에 도움
"수백명 고유한 이야기들, 탈북자 쉽게 판단할 수 없게 한다"

- 이쪽 계통의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 : 2000년도 석사 학위를 받고 바로, 탈북자의 집에 가정방문을 했다. 검정고시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자원봉사였다. 그때 탈북자를 처음 만났다. 북한 행정체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탈북자를 만나기 시작했다가 1년이 지나니 더 못 만나겠더라. 그래서 사람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부터 박사과정에서 탈북자를 공부했다. 북한에서 정치사상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선 그 교육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북한의 정부제도에 대해서는 연구를 해왔어도, 실제 북한주민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되지 않을 대였다. 그래서 이후 탈북자들이 정착하는 과정들을 계속 연구해왔다. 사례분석을 주로 연구했다. 질적연구였기 때문에 개개인의 고유한 사연들이 중요했다.

- 그런 고유한 사례들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모여, 이번 연극의 시나리오가 되었나 보다.

박 : 그렇다. 연극의 주인공이 어릴 때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실제로는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함)도 실제 사연이었다. 어쩔 수 없이 농장대학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꿈을 향한 마음은 우리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도 우리와 똑같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 켠에 그 감정이 남아있었다. 아련한 이야기들이 마음 속에 많이 남아 있다. 특별히 여성탈북자들을 만나 들었던 어린 시절, 농부의 자녀는 농부로만 살아야 했을 때의 그 감정들을 연극에서 꼭 표현해보고 싶었다.

- 연극을 공동으로 기획했다.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으로부터 각각 지원을 받았는데, 강 박사의 역할이 크다고 들었다.

강 : 나는 탈북자 연구보다는 통일/북한 분야를 연구해왔다. 특별히 대북지원 연구를 했다. 한류를 연구하면서 문화예술과 대북지원의 공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북지원으로 실물을 한 번 봤던 사람들이 의식변화도 빠르더라. 연속극에서 기도하는 장면이나, 교회의 십자가, 그리고 대북지원 물품에 표기된 십자가 등의 정보가 하나둘씩 머릿속에 들어와 기폭작용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의식변화로 나타난다. 대북지원, 문화, 기타 외부정보들이 같이 들어가야 효과가 있다. 지금 현재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배척하기도 하는데,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짜내면 북한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극에 대한 부분은 박 박사가 너무 하고 싶어 했고, 아이디어도 괜찮아서 몰래 기획안을 제출했다. 연구 콘텐츠를 연극으로 만든다는 것이 서로 간의 생소한 일이었기에, 우리 부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 강동완 교수와 박정란 박사.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강 : 통일교육원에서 내가 2000년도, 박 박사가 2002년도부터 근무했다. 사내 비밀 교제를 해왔다. 비밀로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몰래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7년을 연애했다. 서로 학위를 마쳐야 하다보니까 결혼이 좀 늦어졌다.


"탈북자 모임에 나가는 남한 사람이 왜 '봉사자'여야 하나?"
친구관계로 동등하게 다가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


- 탈북자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만난 사람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이 탈북자들에게 다가갈 때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나? 

박 : 불쌍한 사람, 물질적으로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한 것이 문제다. 남자 탈북자들만 보면 경제활동률이 남한 남자들보다 더 높다. 일을 못하고 안 하는 건 탈북여성이다. 애가 있는 가임기 여성이기 때문에 수치상으로 그렇게 나온다. 그런데 내가 만난 탈북여성들은 수치에 잡히지 않는 일을 할 뿐이지, 게으르거나 일부러 일을 안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통계만 보고, 탈북자를 불쌍하게 보거나 게으르다고 판단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인식들이 특히 교회에 많다. 불쌍하고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다가간다. 도와주는 내용이 너무 물질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다. 서로 간의 동등한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 서로 동등한 관계로서 인식하고 다가갈 때가 되었다. 탈북자들에게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들도 나를 다르게 본다.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에게는 자기도 그렇게 다가간다.

- 친구와 같이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나?

박 : 물론이다. 탈북자 친구에게 돈도 받은 적이 있다. 뭐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더라. 생일 선물도 동등하게 주고받았다. 친구로 교감한다. 그런 것을 탈북자들이 더 좋아한다. ‘탈북자가 어떻다’라고 판단하기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탈북자를 대할 때 모든 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탈북자는 게으르다는 편견이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그런 사람 없다. 정기적인 일을 안 할 뿐이다. 1명이 아이 셋을 키운다. 감동을 받았다.

- 탈북자들이 통일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북한주민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역할을 탈북자들이 할 수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 보이지 않게 힘을 써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끈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친구’라고 한 번 생각이 들면 더 많이 챙겨준다. 남한 사람들은 자기 일만 딱 하고 가버리고, 업무도 안 알려주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도 많지만, 북한 출신은 정이 많고, 끈끈하다.
일을 같이 할 때 마음을 뭉클할 정도로 따뜻할 때가 많다. 차가운 마음으로 연구를 할 때, 탈북자분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연구의 기술에 있어서 그분에게 보탬이 되었다. 이런 교류 속에서 통일을 느낀다. 탈북자들과 자꾸 만나야 한다. 그러다보면 감동도 받고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이 많이 생긴다. 통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 탈북자들과 친구로 교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개선될 것이 있다면?

강 : 표현의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의 탈북자 모임에 남쪽 성도가 가면 ‘봉사자’라고 부른다. 그럼 탈북자 성도는 봉사 받으러 온 사람인가? 교회 내 탈북자 모임이라는 것이 같이 모여서 밥 먹고 노는 것이다. 그게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남쪽 성도를 봉사자라고 부르면, 탈북자와 만나주는 것 자체가 봉사라고 생각하게 된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 언어부터 바뀔 것들이 많다. ‘봉사자’와 ‘봉사 받는 자’로 구분이 되는 데 어떻게 진짜 친구관계가 되겠나.


탈남 러쉬, '탈남 브로커'도 생겼다.
'복지'와 '기회' 찾아 떠난다.
힘들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유는…


   
▲ 박정란 박사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탈남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실제로 탈북자들을 만나보면 어떤가?
박 : 탈북자 모임을 하다보면, 연락이 단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탈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중요한 건 최근 2년 동안은, 남한에서 정착한 사실이 있으면 외국에 가서도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러니까 탈남 과정을 돕는 ‘탈남 브로커’까지 생겼다. 탈북자 중에서도 탈남 브로커를 하는 사람이 있다. 비용이 비싸다.

- 탈남 브로커까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캐나다로 가기 전에 계속 나를 만나서 고민했다. 5살 먹은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친구였다. 20대 중반이었는데, 일을 하면서 딸을 키우는 현실이 너무 힘들어 탈남을 결심한 것이다. 가기 전날까지 고민했는데, 브로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고 결정하더라. 1천 만원이 들어갔다고 했다. 소문을 듣고 간 것인데 거기서 난민 인정을 안 해줘서 어렵다는 메시지가 최근에도 왔다.

- 힘들면 돌아오면 되지 않는가?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박 : 이 친구의 경우는 돈을 많이 모아뒀기 때문에 다행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 탈남 브로커의 ‘컨설팅’을 받는다.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돈을 마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니 한국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애들 교육 때문에 못 온다고도 한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그곳에서 살길이 있다고 한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이야기들이 많다. 가장 최근의 일이다. 두 달 전이니까.

- 탈남현상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박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친구의 사례로만 보면 남쪽 사회가 너무 일중심, 성장중심이라 탈북자들이 따라가기 힘든 것 같다. 남한 사람도 힘든데 오죽 하겠나. 그런데 그걸 ‘적응’이라고 보고 계속 적응하라고 몰아붙이니까 숨이 막히는 거다. 딸하고 같이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떠나지 않나. 브로커 말에 혹한 것도 ‘딸도 봐주면서, 돈도 벌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을 나가면 어린이 집에 맡기거나, 협력하면서 살 수 있다. 복지에 대한 욕구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생각보다 탈북자들을 밑으로 깔아보는 경향이 많다. 차별과 무시를 당한다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 복지와 기회가 커질 것 같아 떠나는 것 같다. 딸이 5살인데 영어를 배우고 오면 나중에 남한에 와서도 경쟁해서 이길 수 있으니까 교육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들은 남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식으로 이민이나 유학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니까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것일 수 있다.


연극 본 학생들 수업태도 적극적으로 싹 바뀌어
대중에게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대중들이 북한·통일에 관심이 없다'?


- 다시 연극 이야기로 돌아올겸. 결국 남한 사람들과 탈북자들이 잘 살아가려면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번 연극을 통해 대중적으로 많이 알리면 좋을 것 같다.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좋을 것 같고. 재공연 계획은 있나?

강 : 아주 어려운 상황이다. 정기공연을 해야 하는데 환경이 쉽지 않다. 배우들을 그때그때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기공연으로 공연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정기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과 환경이 안 된다. 수시공연은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 공연 때문에 무대 셋팅을 한번 하려면, 장비 대여비, 무대 설치비 등 돈이 많이 들어서 쉽지 않다. 설령 예산이 된다고 해도, 그때그때 필요할 때 배우들을 항상 섭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재공연은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다.

- 이대로 끝나기에는 연극의 스토리가 너무 아깝다.

박 : 맞다. 통일교육원에서 최근 강의했는데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힘들더라. 강의보다는 연극 스토리로 다가가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그 강당에 조명이나 음향시설 등 연극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춰 놓으면, 평소에도 지역주민들에게 공연장으로 사용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공연장으로 쓸 수도 있다. 공연을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놓으면, 통일교육원의 방향을 지역문화의 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연설환경을 넘어서야 한다. 그게 너무 아쉽다. 그런 기관들은 한번만 돈을 들여 만들어 놓으면 여러 사람이 쓸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다.

- 북한관련 강의를 많이 해왔기에 연극을 통해 다가가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을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

박 : 학생들에게 북한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찾아와서 그런 영상을 왜 아침부터 보여주느냐고 따지더라. 통일에 대한 마음이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편하자고 쉬운 강의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한 모습으로 안주하고 있었구나. 탈북자, 통일을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부부가 기획/시나리오를 맡은 두편의 연극

- 연극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박 : 이번에 ‘북한사회의 이해’ 수업을 듣던 학생들에게 공연을 보도록 했다. 연극을 보기 전과 후가 명확하게 나뉜다. 처음 멍하니 들었던 학생들도 공연을 보고 난 후에는 눈빛이 달라졌다. 열심히 발표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확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더라. 강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있구나, 느꼈다. 다가가는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되겠다. 연극을 바로바로 할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춰져 있으면 배우들만 섭외하면 되니까 수월할 텐데, 여러 가지로 아쉽다.

- 박 박사님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어렵지 않았나?

박 : 연극배우로 활동을 잠깐 했었다. 공연예술에 관심이 원래 많았고. 노후에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연구를 하면서도 꿈이 있었다. 연구한 것을 연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꿈이었다. 그냥 이런 말을 남편에게 했더니 통일부에 지원한 것이다. 덜컥 돈을 받았으니,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를 섭외할 수 있는 예산은 아니었다. 누구한테 맡길 수는 없고, 내가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통일부도 처음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니까 예산측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쓰다보니까 너무 재밌었다. 밤을 새도 힘들지가 않았다. 굉장히 빨리 완성이 되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가 ‘탈북자 사례연구’가 큰 힘이 되었다. 100명 넘는 탈북자들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힘이 되었다. 머릿속에 그것을 꺼내니 이야깃거리가 풍부했다. 그것을 엮어서 가족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 이번 연극 시나리오다.

- 양적연구가 아닌 질적연구라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박 : 중요한 자산이었다. 우리 연구 외에도 탈북자 연구가 참 많다. 심층 면담도 많다. 쌓여진 자료만 모아서 연극으로 만들어도 할 것이 너무 많다. 이야깃거리는 정말 많다. 그 자체로 통일 교육을 해도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례들도 다 못 풀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실 더 많다. 연구한 것만으로도 너무 많고, 다른 연구자들의 성과도 활용할 것이 많다.
이제는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형태로 풀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당국자, 연구자들만 볼 것이 아니라, 대중들도 알게 해야 한다. 그것을 풀지도 않고, 대중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다, 탈북자들에 관심이 없다, 라고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르다. 아직 이르다. 쉽고 편한 방식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이번 연극을 통해 연구자로 갖고 있었던 나의 틀도 깰 수 있는 계기였다.

- 개인적으로 연극을 보면서 좋았던 것은, 다른 북한관련 연극들과는 다르게 자극적이지 않고, 선동적이지 않았던 점이다. 의도한 것인지. 연구 성과에 기댔기 때문인지?

강 : 자극적으로 그려내면 불쌍하고 가슴 아픈 북한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끝까지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이 되거나 통일을 두려워하게 된다. 북한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다. 그래서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누구의 구미에 맞추는 게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몫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담담한 시선으로 북한의 객관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극 받거나 하지 않고, 누구든지 와서 함께 노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탈북자들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통일은 같이 만나서 노는 거구나, 그런 마음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념의 구색 맞추기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작업들이 한편에선 계속 되어야 한다.
박 :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대로 전해주고 싶으니까 사투리에도 지역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보여 지는 모습도 함경북도를 객관적으로 전해주려고 했다. 양심껏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경북도 사투리를 배우느라 배우들도 힘들었다. 개런티도 적었는데….


북한 모란봉악단이 남한의 걸그룹 따라하는 등
한류가 북한당국도 변화시켜.
"김정은, 주민들의 문화적 수준 의식"   


- 한류 이야기를 해보자. 북한에 부는 한류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오늘의 북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강 : 한류는 작게는 탈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그 자체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다른 요인과 만났을 때 한류는 기폭작용을 했다. 어쨌든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하면 적대감과 오해가 없어야 하는데, 같은 드라마를 봤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같은 영화를 봤다. 같은 드라마를 봤다. 체제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크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드라마의 내용들을 100%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의 생각이나 감각에는 영향을 끼친다. 결국 그것이 북한당국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 한류가 북한당국을 변화시켰다?

강 :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남한의 걸그룹을 따라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북한주민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도 그것을 알고 있다. 세련되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이 정치적 불만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을 선도할 수 있는 스타일을 선보이려 한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 드라마에 나오는 옷과 춤, 시설 등을 보고 ‘얼마나 정치를 잘했으면 경제발전을 이뤘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김정은의 정치와 비교한다. 이것을 아는 김정은은 ‘촌스러운 북한’이 아닌 ‘문화적으로 세련된 북한 당국’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이런 한류의 수레바퀴가 계속 돌고,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면, 그에 따라 북한의 정책도 바뀔 수밖에 없다.

- 한류의 ‘역풍’이라는 표현도 썼다. 과연 북한 사람들이 긍정적 영향을 받을만한 내용인가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다.

강 : 실제로 역풍을 많이 우려했었다. 그런데 지금 단계는 내용보다는 시각적 효과가 더 북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장면 장면에 더 영향을 받는 단계이다. 우리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원할 때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한류를 접하기 때문에 아직은 역작용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지금 한류와 주민들의 변화가 맞물려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역풍이 두렵다고, 남한 드라마를 교육용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나. 이거는 교육적이다, 아니다, 우리가 선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자주 접하다 보면 북한 주민들 스스로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정보를 조정할 수 있는 수준이 충분히 될 것이다.
 

이범진 기자·조한나 학생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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