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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버리고 계속 질문, 합격 비결이죠"험난했던 일반 고등학교 적응기, 12학번 김한일 학생


2만 3천여명의 탈북주민 중 청소년들은 2,500명에 이른다(2011년 5월 통일부 자료, 10~19세). 이들은 탈북학생들만 따로 교육하는 대안학교에 입학하기도 하고, 일반학교에 진학해 남한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다. 일반학교로의 입학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탈북학생들이 남한의 교육제도, 교육내용, 학습풍토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쉽게 대학에 가면, 쉽게 포기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요"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소장 한만길)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일반학교에 진학한 탈북학생의 중도탈락률은 초등학교 0.9%, 중학교 8.5%, 고등학교 9.1%로 남한학생들의 탈락률(각각 0.3%, 0.8%, 1.8%)보다 현저히 높다. 문화적 차이와 기초학력 부족에서 오는 부적응, 가정의 경제적 빈곤 등 복합적인 이유로 분석된다. 대학 입시도 탈북자 특별전형에 의존하는 현실이다. 

올해 서강대 12학번이 되는 신입생 김한일 학생은 탈북자이다. 4년 전 열여섯 살 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남한 땅에 왔다.(하단 관련기사 참조) 끼니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권투와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왔기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나이 제한 탓에 권투도 그만뒀다. 기초학력이 부족해 세 살 어린 아이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안학교로의 진학도 고민했지만, 끝내 일반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대안학교 가면 북한말 그대로 쓰면서, 선생님들도 정말 잘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살아가려면, 남한 사람들하고 계속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한에 내려와서 북한 사람들하고만 지내면, 그건 그냥 밥만 잘 먹는 북한이란 생각이 들었다.”


   
▲ "김정일이 죽으니까 TV에서 관심을 갖고 토론 프로들도 많이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이럴 때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평소에도 북한과 통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약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는 고등학교 3년간 초등학교 5학년 문제집부터 차근차근 풀며 기초학력의 공백을 메웠다고 밝혔다. 또한 “자존심 버리고 어린 동생들에게 계속 질문하고 배운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성공 비결을 공개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는 어머니가 지난 해 대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를 꼽았다.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위해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 24시간을 아르바이트로 채웠다"며 "여러 지원단체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공부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한일 학생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대학에 합격했다. 서강대 경영학과인데, 특별히 경영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성균관대, 중앙대, 건국대도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사실은 건국대 수의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장학금을 지원받는 문제도 있고, 어머니께서도 경영학과에 가길 원하셔서요.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졸업 후에는 외국의 MBA과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가능하다면 교수가 되는 것도 꿈이고요.

- 수의학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원래부터 의대에 가고 싶었거든요. 법대도 생각이 있었고요. 그런데 수의학과는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곳에 가려면 등록금을 제가 벌어야 하는데, 그러면 공부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것 같아서요. 영어와 수학을 다 좋아해서요. 이과쪽으로 간다면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 특별전형이라 하더라도 합격하기 힘든 대학이다. 경쟁률이 30대 1이 넘었다고 들었다. 원래부터 공부를 잘했나?
아니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ABCD도 몰랐어요. 북한에서는 권투만 했었거든요. 농사도 지었고요. 아버지가 형부터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저보고는 농사를 지으라고 시켰었어요. 탈북하고 나서도, 내가 잘하는 것은 권투이니까 권투를 계속 하고 싶었고요. 할 줄 아는 게 운동하고 농사밖에 없었어요. 공부는 아주 못했어요.

- 그런데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영어와 수학 등 주요과목은 전교 1등도 해봤다고 들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권투로는 인정을 받아서 한국체육중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어요. 국가대표 상비군을 뽑는 대회에도 나갔고요. 그런데 대회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 선수가 저랑 잘 아는 아이였어요. 가끔 스파링도 했던 애인데, 저를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애였어요. 그런데 그 애가 제가 또래보다 세 살 많은 것을 협회 쪽에 말한 거예요. 결국 협회에서는 경기하면 안 된다고 자격을 박탈해갔어요. 그 후에는 어느 경기에도 나가지 못했어요.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제가 잘하는 건 권투밖에 없었잖아요. 남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요. 친구가 큰 힘이 되었어요. 나이 열일곱밖에 되지 않았는데, 삶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거 아니냐고요. 그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 탈북자 청소년들을 따로 교육하는 대안학교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대안학교 가면 편하잖아요. 북한 말 그대로 쓰면서, 선생님들도 너무 잘해주고요. 일반학교 가면 아무래도 힘들죠. 두세 살 어린애들이랑 다녀야 하고, 선생님도 저만 신경써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남한에서 살아가려면, 남한 사람들하고 계속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한에 내려와서 북한 사람들하고만 지내면, 그건 그냥 밥만 잘 먹는 북한이잖아요. 좀 힘들더라도 일반학교에 진학해야 겠다 결정했어요. 가까운 동네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마포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그곳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기로 유명했거든요.

- 일반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했나? 기본이 많이 부족해서, 진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짝꿍을 귀찮게 했어요. 궁금한 거 다 물어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귀찮아하더라고요. 제가 물어보는 게 엄청 기초적인 거였거든요. 예를 들어 수학에서 6/5가 어떻게 1과1/5로 변하는지 그런 거 물어봤거든요. 그런 것 하나하나 물어보니까 짝꿍도 힘들었겠죠. 자기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문제집부터 천천히 풀었어요. 기초부터 다지려고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농담 같은 것 하시면, 그때 짬 내서 기초단어부터 외웠고요. 탈북청소년들 방과후 교육시켜주는 한누리학교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도움도 받았어요.

- 탈북자라고 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대학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곳은 일부러 피한 것인가?
솔직히 대학을 어디 가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가령 한국외대 같은 경우에는 탈북자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대학이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그 대학에 남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전체의 30%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학에서는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거지요.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더 넓었던 것 같아요.



   
▲ "그런데 교회에서는 저보다 나이 많은 전도사님, 목사님이 저한테 존댓말을 쓰는 거예요.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무시당해서 기분 나빴던 것보다 위로의 크기가 더 컸던 것 같아요."

- 중간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올해 3월, 고3 시작하자마자 어머니가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공부도 할 수 없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일주일 넘게 학교를 빠지고 일을 하러 다녔어요. 새벽에는 신문 돌리고, 밤에는 PC방 알바하고, 하루 종일 일하면 한 달에 200만원 벌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머니는 돈이 없으니까, 수술을 자꾸 안 하시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여러 재단들 찾아다니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다행히 그분들이 도와주셔서, 수술하셨고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어요.

- 어려운 역경들이 있었음에도 좋은 결과를 이뤄낸 것 축하한다. 그러나 탈북한 청소년들 중에는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다.
네, 정말 많아요. 안타까워요. 그런데 제가 뭐 도와주려고 해도, 굉장히 자존심 상해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도 못할 때가 많아요.

-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을 가장 해주고 싶은지?
자존심 버리라고 하고 싶어요. 자존심 세우면 남한 사회에서 적응 못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저보다 어린 동생들하고 학교 다니면서, 모르는 것 물어보고, 무시하는 것 참으면서 공부했거든요. 그 순간만 넘기면 되는데…. 어쨌든 자존심 버리고 남한 사람들하고 자주 어울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 그래도 무시당하면 힘들지 않는지?
제가 교회에 다니거든요. 그런데 교회에서는 저보다 나이 많은 전도사님, 목사님이 저한테 존댓말을 쓰는 거예요.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무시당해서 기분 나빴던 것보다 위로의 크기가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 김정일이 죽었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제는 정말 통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서 통일 이야기 많이 했거든요. 그래도 김정일이 죽으니까 TV에서 관심을 갖고 토론 프로들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나오는 교수님들이 말은 굉장히 논리적으로 잘하시는 것 같은데, 이건 아니다 싶은 내용들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제가 느낀 경험들, 조금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이럴 때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평소에도 북한과 통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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