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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궁핍했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죠”1960~2005년까지 북한에서 살았던 한 일본인 여성의 증언

1960년 봄, 귀국선을 타고 북한에 건너갔던 이노우에라는 80세 여성을 일본에서 만났다.
귀국선이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총 10만명 가까운 재일 조선인들을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넨 배다. 북한에서는 그 사람들을 ‘귀국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출신 성분은 ‘감시 대상’이 된다. 귀국자 중에 재일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도 2000명 가까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노우에씨도 그런 사람이다.

이노우에씨는 북한으로 건너가기 5년 전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 조선인과 결혼했다. 그때가 그녀의 나이 25세였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가족 친척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이유는 ‘정말로 정이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귀국 사업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재일 조선인(한국인) 세계는 북한계인 조총련이 한국계인 민단을 수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위에 있을 때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견해로는 민족 교육에 고액 자금을 투입해 준 김일성의 존재와, 공산주의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을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해방 전부터 일본에서는 일본 공산당만이 한반도의 일본 지배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조총련에서 갑자기 이노우에씨 가족에게 “3일 후 북쪽으로 돌아가는 배에 결원이 나왔는데 타지 않겠나?”라는 연락이 왔다. 귀국 사업이 시작된 당초 일본 생활에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던 재일 조선인들은 선두를 다투어 승선하려고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노우에씨 가족은 그렇게 충분한 준비도 없이 배를 타고 북쪽으로 건너갔다.

2세 된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도착한 장소는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농촌이었다. “집 창문에서 밖을 보면 질퍽거리는 길을 맨발로 소를 잡고 걷는 여성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시골에 왔다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후 그녀는 2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더 낳았다. 힘든 나날이었다. “생활이 어려워서 유산시키려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거나 비탈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해봤지만 몸이 튼튼해서 그런지 잘 안되더군요.”

남편이 죽고 아이들이 자라고 난 뒤 ‘인생 마지막은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해 준 세 번째 아들과 일본에 건너온 그녀는 북쪽의 생활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일본인인데 남편을 따라 잘 건너왔다’고 오히려 제가 환영을 받았어요.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환영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생활이 궁핍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는 일본에서의 송금이 있었고, 사람과의 교제로 싫은 추억은 없습니다.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일본어로 써 있다’라는 이유만으로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에서 학생 시절, 전쟁 중이었는데 도시에서 피난해서 시골에 갔었습니다. 그때 시골 사람들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면서 얼마나 잘 돌봐줬는지 모릅니다. 북쪽 사람도 그와 똑 같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북한 인권을 다룰 때 일본인 아내가 가끔 소재가 되는 일이 있다. 물론 일본인 아내 중엔 심한 인권 침해를 받은 사람도 많다. 그녀에게도 전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평상시의 생활 얘기를 들으면 궁핍하다고 해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녀의 가정환경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소녀 때 자라온 환경, 결혼 후 생활, 일본에 돌아오고 나서의 생활 속에서도 가족의 단란함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우선 그녀 자신이 이야기 속에서 불만을 한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들 부부와 함께 식사도 했지만 즐겁게 웃으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일본에 있는 '귀국자'는 2백 몇 십명이 된다. 그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왔다’고 속이며 일자리를 찾는다. 일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로 봐서는 남북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보안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일본에 와서 8년째가 되는 이노우에씨 아들은 자신의 출신지를 당당히 북한이라고 밝히고 일을 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관심을 가져오는 사람은 있어도 피해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밖에서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도  문제로 받은 상처를 달래는 가족의 자리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밖에서의 생활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반대로 가족 안에서 위로가 없으면 불안이 불만을 불러 문제가 바깥으로 더 확대돼 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에서의 가족의 모습이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일본 교토대 졸업, 동국대 북한학 박사과정>

와다 신스케  nohos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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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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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9-30 09:14:22

    이는 해외탈북자들도 마찬가지임~!!!! 우선 우리말이 안통하고 모두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스웨덴어등을 쓰는 서방국가들이라서 가끔씩 보수성향의 한인교회들이나 그나라들의 보수단체들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정부에서 혜택을 받기 매우 곤란함~!!!! ㅡㅡ;;;;;   삭제

    • 박혜연 2016-09-30 08:51:04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해 현재 일본에 거주중인 재일탈북자의 수는 고작 700여명~!!!! 그러나 거기서는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혜택받기가 매우 어렵다고함~!!!!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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