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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내 자녀에게 분단조국을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1944년 7월. 만주 일본군 군영에서 탈영해 6000리길 중경임시정부를 찾아 대장정에 올랐던 장준하 선생의 절치부심 좌우명이다. 나라마저 잃고 외국에서마저 일제에 쫓겨야 하는 현실 뒤엔 못난 조상이 있었다는 자괴감과 분노는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장정의 여정 속에서 자신을 민족의 제단 앞에 바친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했다. 이후 그는 광복군 장교를 거쳐 김구 선생 비서, 대한민국 정부 서기관을 거쳐 한국 저널리즘 역사의 빛나는 페이지를 장식한 <사상계>를 창간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사상계>를 통해 제시했다.

   
▲ <사상계> 발행인 당시의 장준하 선생 모습 ⓒ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

1970년대부터는 남북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극복, 즉 통일밖에 답이 없다고 보고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아 죽음과 투옥마저 감내하며 그 길을 갔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정권의 폭압 아래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도 그만큼은 묵종의 삶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분단 체제를 그대로 용납해서는 두고두고 못난 조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에서 의문사 당하고 만다. 후손들에게 민주화된 사회,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못난 조상이 되기를 거부했던 그의 삶은 이제 후손들이 기리고 되살릴 때가 됐다.

동서독이 통일된 지 20여년이 지나는 지금, 통일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독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했음에도 동독 사람들의 자부심은 통일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낮아졌다는 것이다. 동독 사람들에겐 통일 이후 자신들이 2류, 3류 시민으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흡수라는 통일 방식상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었을까. 독일 통일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런 사건이었다. 심지어 점진적인 통일을 준비했던 정책 책임자도 예상하지 못했다. 막무가내로 국경으로 몰려드는 동독 사람들의 물결 앞에 서독은 통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 동서독 통일 현장을 발로 밟았던 한 지인은 동서독 목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동서독 통일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지만 그래도 우린 떳떳하다. 분단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여덟 살 짜리 아들과 다섯 살 짜리 딸이 있다. 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다짐하는 게 있다. ‘너희들 세대에서만큼은 통일된 조국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분단된 조국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금 나는 통일 조국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그 어떤 사명감이나 목표보다 더 강하고 분명한 통일 조국에 대한 확신과 헌신을 샘솟게 한다. 통일 조국은 먼먼 후손들이 살아갈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식들, 내 후배들이 살아갈 코앞의 미래다. 손에 잡힐 듯 선명한 내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내일의 일을 오늘에 일어난 일처럼 여기고 그것을 사는 것이다. 거기에 고난이 있고, 희생이 있고, 자기 부인이 있는 것이다. 씨앗은 땅에 심겨져 썩을 때 엄청난 열매를 맺는다. 분단 세대의 수고와 희생이 있을 때 비로소 통일 세대는 싹이 트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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