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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탈북자들의 희망을 꺾고 있는가남미리씨의 '희망', 동명숙씨의 '절망'을 보며

#추석을 코앞에 둔 지난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을 찾았다. 소형 마트인 C&U(옛 패밀리마트) 지점을 낸 남미리(26)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남씨는 장신대 신학과를 다니다가 휴학했다. 영문판 책을 내려고 했지만 번역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갑작스레 마트 제안을 받고 지점을 내게 된 것이다. 탈북자 취업 훈련을 위한 자유시민대학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구호단체 굿피플과 C&U 본사가 지원금을 보탰고, 거기다 탈북자 본인이 쌈짓돈을 투자한 것이다.

낡고 누추한 재래시장 골목을 지나자 깨끗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동네가 나타났다. 남씨가 지점장으로 있는 C&U는 그 아파트 상가 1층에 자리하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트는 아담하고 산뜻했다. 가장 한가하다는 오전 시간인데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 걸로 봐서 초기 치고는 성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특기의 디스플레이 실력에 특유의 친절함까지 갖춘 남씨는 소형 마트를 화사해 보이게까지 했다.

아직 마트를 오픈한 지 채 한 달이 안됐다. 그 기간 남씨의 평균 취침 시간은 2~3시간. 밤 12시가 넘어 노원구 집으로 퇴근해 아침 7시가 채 안돼 다시 마트에 도착한다. 그런데도 남씨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다. 사실 알바생 2명 인건비에 임대료 내고나면 첫 달 수익은 장담할 수 없다. 남씨는 그래도 적자는 아닐 거라며 웃었다.

“단순한 줄 알고 선뜻 시작했는데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더라구요. 재고 파악에, 물건 주문에, 알바생 관리에 얼마나 복잡한지 정신이 없어요. 특히 물건을 주문할 때는 PDA로 해야 하는데 사용할 줄을 몰라 1주일을 꼬박 기계를 붙잡고 씨름한 적도 있어요. 너무 피곤하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빨리 길들여지는 수밖에.”

이제 20대 중반의 나이에, 앳된 얼굴의 남씨를 동네 사람들은 알바생으로 봤던 모양이다. 자신이 지점장이라고 해도 믿어주질 않았다. 어떤 짓궂은 손님들은 물건이 마음에 안들면 “당장 지점장 나오라고 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간혹 술 취한 손님이 찾아올 때면 화를 내거나 내쫓는 대신 토닥토닥 위로하며 돌려보냈다. 그들은 남씨에게 처치 곤란한 상대가 아니라 힘든 시대를 같이 버텨가는 동료들이었다.
도대체 탈북자 남씨의 이런 여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남한 적응에도, 돈 벌기에도 여념이 없을 텐데 말이다. “처음 가게 오픈하는 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나더라구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산지이고, 난 이곳을 옥토로 바꾸라고 보내신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하루하루가 행복할 수밖에 없죠.”

#동명숙(36)씨는 최근 한 달이 지옥 같기만 하다. 지난달 1일 열린 공군본부 주최 에어쇼에 참석하려다가 탈북자라는 이유로 제지당한 뒤 이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공군본부 쪽은 동씨의 참석 불가 이유로 ‘청와대 경호실에서 신원확인이 안 된다는 점’을 들었다. 동씨는 곧바로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 게시판에 자신의 부당한 처사를 알렸다. 청와대 경호처는 며칠 만에 “동명숙씨가 탈북자라는 이유로 참관 불가의 뜻을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공군본부 측도 입장을 바꿔 동씨에게 “우리(공군)의 실수였다”고 말했지만 동씨는 수긍하지 않았다. 공군이 입장을 바꾼 건 윗선인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본심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동씨는 계속해서 청와대 대통령실에도 민원을 제기했지만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후 동씨는 더 황당한 일을 당했다. 9월 중순경, 경북 안동에 살던 동씨의 남편이 올라와 합의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더 이상 간첩 며느리와는 살 수 없다’는 시어머니의 말도 전했다. 자존심 센 동씨가 수그러들 리 없었다. 결국 합의 이혼을 하고 말았다. 동씨의 ‘정당한’ 이의 제기는 결국 가정 파탄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추석 전날인 지난달 29일, 동씨는 필자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청와대와 공군을 상대로 가정 파탄의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 소송을 하겠다는 것, ‘이쯤에서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포기는 마지막 무덤 속에 들어가서 해도 늦지 않다는 게 저의 지론인 만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을 다해 보겠다’는 거였다.

동씨는 2002년 대한민국 입국과 함께 경북 안동에서 살면서 3년간 식당일을 해냈고, 이후 컴퓨터, 회계사무 관련 자격증을 땄고, 결혼과 출산, 이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동국대 북한학과에 입학하기도 했다. 동씨는 탈북자로서는 드물게 진보단체 활동가로, 민주당 국회의원 대학생인턴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엔 진보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이우정 평화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동씨는 이메일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제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전 모든 것을 깨끗이 승복하렵니다. 십년 동안의 제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한국을 떠날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에 나의 모든 마음과 열정과 노력을 다 바쳐야 할 가치와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으니까요. 진정성이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라면 과연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나요?”

대한민국의 다이내믹함을 좋아했던 동씨. 그래서 그 대한민국의 품에서 대한민국 사람으로 제대로 살아보려 했던 동씨. 이제 마음 한켠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채 정부를 상대로 마지막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또 한 명의 탈북자를 해외로 내몰아야 하는 것이다. 동씨의 메일을 받고 추석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몸은 힘들지만 사랑을 나눠주는 삶을 살아가려는 남미리씨,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를 붙잡고 악착같이 살아온 아줌마 대학생 동명숙씨.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은 이 땅 2만 5000명 탈북자들의 두 얼굴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희망과 절망을 오가고 있는 탈북자들의 현주소다. 탈북자들의 희망은 탈북자들에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남한과 북한에 통일의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된다. 반면 탈북자들의 절망도 탈북자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남북한 전체의 통일 의지를 싹둑 잘라놓는 반민족적 행위다. 지금 탈북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탈북자들의 희망을 꺾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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