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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블루베리의 보고(寶庫)라는 걸 아시나요?백두산 들쭉 이야기(1)

최근 접한 청소년 탈북자에 관한 소식. 10세 때 부모님이 굶주림으로 돌아가신 후, 고아원에 보내졌다. 하루 평균 15시간 정도의 강제 노동에 동원됐다. 여름에는 하는 일은 주로 블루베리를 따는 일이었다. 북한 아동들의 처참한 인권 실태에 아픔을 느끼면서도 블루베리를 땄다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필자가 속해 있는 (주)조안(JOAN : Joy of All Nations)은 2009년 백두산 야생 블루베리 원액을 유통하기 위해 시작된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 두 해 전인 2007년 1월, 통일 한국이라는 씨실과 영역별 선교라는 날실이 엮어진 남한 청년들의 작은 모임이 태동했다. 스스로 통일세대임을 확인하듯 매주 모여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고 비전을 나눴다. 그러면서 차츰 북한을 향한 우리의 잘못된 시각과 자세가 교정되어야 함도 깨닫게 됐다. ‘흑암 중에 보화’라는 언약도 받았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말이다. 모두가 북한을 “흑암”으로 바라본다 할지라도 너희는 그 땅을 “보화”로 보며 전진해야 한다는 신적(神的) 견인(牽引)이었다.

   
▲ 북한 노동자들이 백두산에서 들쭉(블루베리)를 채취하고 있는 모습. ⓒ(주)조안 제공

‘북한과 통일 한국을 바라보는 경영 영역’에 대한 소망이 차올라 농익을 무렵, 백두산이 야생 블루베리의 보고(寶庫)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한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인근 학교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한국에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 들어오셨다가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판매와 유통을 의뢰하셨다. (주)조안은 이렇게 백두산 야생 블루베리 한 품목을 유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김정일이 접대용으로 사용한다는 ‘들쭉주’의 들쭉이 블루베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백두산 블루베리 원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백두산에서 블루베리가 난다구요?’ 그렇다. 흑암 중에 보화가 정녕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북한에 대한 새로운 소망의 시각을 전하는 길에 선 것이었다. 판매하는 우리도, 물건을 접하는 고객들도 흑암만이 그득하다고 생각해왔던 그 땅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백두산에 감추어진 블루베리는 일종의 상징같이 느껴졌다. 각박한 세태 속에서 거대한 경쟁 사회의 부품처럼 돌아가느라 산화되어 국가 전체가 피로증후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 독재자의 압제에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염원조차 지쳐버린 북한 사회. 분단 한국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오염되지 않은 무공청정의 항산화 에너지가 민족의 영산(靈山)에서 자라나고 있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그것은 상처로 가리워진 눈이 떠지고 서로를 향해 당신이 바로 나를 살리는, 하늘의 은혜가 강림하는 여호와의 산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외치게 되는 민족 화해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 백두산 블루베리 원액. ⓒ(주)조안
지척에 있으나 가장 먼 땅. 잘려진 허리 너머로 애써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보았다가 반세기 가라앉았던 앙금만 휘저어지기를 반복하는 애욕의 세월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그러할진대 차디찬 철조망으로 통행을 금지시키고, 철통같은 경계로 으름장을 놓건만 때론 동정으로, 때론 비난으로, 서로에 대한 간섭을 부득불 포기하지 않는 것은 왜인가. 서로 넘지 말자고 그어놓은 선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을 구태여 넘나드는 것은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형제애를 포기할 수 없음에 대한 반증 아닐까.

증오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면, 사랑은 극대의 생산성이다. 상처입어 비뚤어진 고통이 증오가 아니라 멈출 수 없는 형제애였음을 자각하는 날이 이 민족에게 마침내 오려는가. 상호 공멸적(攻滅的) 증오의 걸음 대신 공생(共生)에로의 날갯짓이 움돋아 증오했던 깊이만큼이나 성숙해진 민족애를 힘입고 열방의 화해자로 헌신하는 한반도의 섭리적 운명을 마침내 드러내지 않을까.

지금은 ‘아동 노동력 착취’라는 딱지가 붙는 제한적 사랑밖에 줄 수 없는 슬픔이 뒤따를지라도, 무관심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여 잘린 허리 너머 멈추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엔가 서로에게 들쭉 한잔 권하며 묵은 피로를 씻기우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유현주·(주)조안 CEO

유현주  jar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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