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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가 빚어낸 인권 참사, 분노를 넘어 관여로 가자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7.06.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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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드러난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

북한의 인권 상황이 어떤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인 청년 오토 웜비어가 간첩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지 1년 6개월 만에 코마 상태로 돌아와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시간 오토 웜비어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우리를 분노케 한다. 지금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오토 웜비어의 사망으로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2016년 1월 북한 관광에 나섰던 웜비어는 관광을 마치고 출국하기 전 관계자 외 출입금지 지역에 있던 정치선전 포스터를 떼어내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한다. 이어 그는 '국가전복음모죄'의 죄목 아래 15년의 노동교화형을 받았다. 그는 친구의 어머니가 집사로 있는 교회에 북한 선전물을 걸어 두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를 전리품으로 가져다주고 대가로 1만 달러 상당의 중고 자동차를 받기로 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웜비어는 미국으로 송환된 지 6일 만에 사망했다. 북한은 웜비어가 재판 후 식중독인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렸고, 수면제를 복용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입원했던 신시네티주립대 병원 측은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렸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북한 외무성은 자신들은 국제기준에 입각해서 오토 웜비어를 보살폈지만, 그가 송환된 후 6일 만에 사망한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어떤 상황이었든 북한은 웜비어의 사망에 대해 애도부터 했어야 하며, 진정으로 사과를 하고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북한에 대해 이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은 잘 알면서도 실망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에서 보인 북한의 비상식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다시 떠올리게 되며,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더 이상 두고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을 구출해야 한다

우리는 웜비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북한에는 우리 국민 6명과 한국계 외국인 3명이 간첩혐의로 억류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이 간첩죄로 장기형을 받은 상태이거나 조사를 받는 중이다.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문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미국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을 비난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대북정책으로 유지하면서 외부적 압박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기다렸다. 북한의 변화가 대화의 전제조건이었다. 오토 웜비어 억류 문제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고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오면서 미국은 북한과의 물밑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개월의 접촉과정에서 혼수상태인 웜비어를 북한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웜비어는 이미 노동교화형을 받고 한두 달 뒤부터 건강상태에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만일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전략적 인내에 융통성 있는 대응을 했다면 이번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웜비어 아버지의 주장이다.

북한 내의 인권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인권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제2의 웜비어 사건을 막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을 구출해 나와야 한다. 테러에 대해서는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한 번 타협하면 반복될 뿐 개선될 여지는 없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는 언제든지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역시 보이지 않는 원칙이다.

비록 테러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벌이고 있는가? 혹시라도 북한이 대화를 위해 억류된 사람들을 인질로 활용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중국을 통한 압박 효과라는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국제법과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계속되는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제재에 대한 일반론적 분석에 있어서도 아직 제재의 효과에 대한 유효성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제재의 효과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성공사례로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재의 효과는 각각의 사례에 따라 천차만별의 양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란은 원유를 수출해서 경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당연히 이를 차단하는 제재의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은 대외의존도가 매우 낮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북한 내부 경제시스템이 갑자기 붕괴되면서 북한의 대외의존도가 일시적으로 높아지기는 했다. 중국은 물론 한국, 미국, 일본의 대북지원이 이어지면서 북한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탓에 이 기간 동안 내부의 무너진 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을 전후해서 한국, 미국, 일본의 대북지원이 중단되자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내부시스템 재구축에 주력해 왔다.

2016년 북한의 대외무역은 66억 달러였지만 중국과의 무역이 90%를 차지했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서 중국만 제재에 동참한다면 북한은 변화할 것이라는 착시현상이 발생한 듯하다.

왜 착시현상인가? 북한 경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외의존도가 10% 미만이었다. 북한 경제는 자력갱생을 근간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는 석유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석탄의존을 고집했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석탄이다. 유엔은 북한의 석탄거래에도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석탄이 북한의 주요 수출품이 아니었다.

석탄의 경우 거의 국내수요에 충당되었고, 1990년대 석탄광이 대부분 못쓰게 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중국과 무역을 확대하면서 석탄생산이 정상화됐고, 2010년부터 석탄 수출이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북한은 석탄거래에서 확보한 재원으로 내부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대외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 기간은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북한을 방치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북한은 이제 식량을 수입하지 않아도 시장의 쌀 가격이 안정되어 있으며, 북한 시장에는 북한산 공산품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상당기간 버틸 수 있음을 반증한다. 중국이 뒤늦게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북한의 반응은 불편하지만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전략적 인내를 지속하는 동안 우리는 북한을 방치했고, 북한은 나름대로 살 길을 모색했다. 2017년 김정은의 신년사에는 다시 과거와 같은 고난의 행군 시기가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으니 힘을 모으자고 북한주민들을 독려하는 대목이 있다. 뒤늦은 대북제재로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된 셈이다. 우리가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방치는 북핵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전략적 인내 정책에 따라 북한을 방치한 결과, 나타난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이 있다. 북핵 문제의 악화이다.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간에는 제네바 합의가 체결됐다. 그러나 2002년 말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했다.

이후 한국정부의 노력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을 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지만, 후속 합의 이행이 지연되는 와중에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그제야 관련국들은 신속하게 움직였고, 2007년 2월 13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세부 사항에 합의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핵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 방치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다시 2, 3차의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 시기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략적 인내 정책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의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뒤 4, 5차 핵실험과 함께 핵보유국의 지위를 기정사실화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핵개발 중단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준중거리(MRBM) 및 중거리 미사일(IRBM) 개발을 넘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핵 투발 수단까지 완비하려는 것이다.

북핵문제는 이렇게 전략적 인내 기간 동안 방치되다시피 되었고 심각한 단계로 들어섰다. 전략적 인내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방패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동안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막아야 한다고 뒷북을 치는 모양새다.

적극적 견인을 통한 관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반도 비핵평화 구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견인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략적 인내를 거둬들이고 대화와 압박을 병행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북한을 방치하면서 그 폐쇄성을 심화시킬수록 북한 체제의 내구성은 강화되는 반면 북핵 문제와 인권상황 또한 비례적으로 심각해진다. 북한은 체제생존에 불리할 경우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것이 일종의 생존방식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가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이다.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폐쇄성을 완화해야 한다.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착시현상에 기인한 대북제재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 사고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미국이 웜비어 사망으로 인해 다시 전략적 인내의 틀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을 전략적으로 견인해 나가기 위한 창의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미 정상회담이 6월 말 워싱턴에서 열린다. 산적해 있는 많은 현안들을 지혜롭게 풀어내고 대북정책의 큰 줄기를 조율하게 될 중요한 회담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우리 정부 역시 아직 이 현안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기에는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그것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노정하거나 향후의 경로에 족쇄를 채우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일단 한미동맹의 굳건함과 북한을 관리하기 위해 대화와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 한미의 정상이 뜻을 같이 하는 일부터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 다시 웜비어 사망 사건과 같은 슬픔과 분노에 직면하지 않도록, 그리고 북핵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칼럼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이 제공합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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