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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와의 대화? 제대로 된 이해가 먼저!일본인의 눈으로 본 남한 그리고 북한(2)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일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10년 전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대답은 ‘북한’이었다. 남북한 분단, 즉 북한이라고 하는 국가가 태어난 원인 하나가 일본에 있다. 그 불행에 대해 뭔가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북한을 택하게 했다. 나에게는 비교적 간단한 논리 전개였는데, 일본에서는 이것을 설명해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북한을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통일은 당연하지만 일본과 북한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북한이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북한과 남한은 원래 한 나라였고, 결국 두 나라는 다시 합쳐져야 한다는 게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본에 있으면 북한과 한국을 다른 국가로 다룬다. 물론 유엔에 각각 다른 국가로 가맹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북·일 관계를 염두에 둘 때 항상 한국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남북 통일은 한국인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한국에 남아 있는 이유이다.

최근 북한이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를 내세워 끊어졌던 북·일 교섭이 4년만에 베이징에서 시작되려고 한다. 외화가 필요한 북한이 2002년 북·일간 주고받은 ‘평양선언’에 따라 일본의 지원 이행을 노린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북·일간 교섭은 어떤 상황에서도 재개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도 한국과의 관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시기가 나쁘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이어진 일본의 대응으로 한일 관계에 큰 균열이 다시 확인되었다.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이라도 연결되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한일 양국의 역사문제 인식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국가적 차원이라고 여기기 쉽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의견이 모여서 결국 국가를 움직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지난달 한겨레평화연구소의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탈북자 사회 이념편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두 명의 탈북 대학생이 정책에 관한 발제를 했고, 이에 대해 4시간 가량 토론이 진행됐다. 통상의 세미나와 비교해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토론은 성격상 참석자들의 탈북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몇몇 참석자들이 탈북자에 대한 정책은 물론 탈북자가 겪어온 생활에 대해 너무나 이해의 깊이가 얕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한 탈북자가 눈물을 흘리며 탈북자의 현실을 호소했고, 결국 그 고생담 때문에 제대로 된 탈북 대학생의 이야기는 감춰져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탈북자는 고생해왔다. 그러나 그 고생담을 듣고 놀라거나 감명을 받는 정도로 끝난다면 결코 탈북자 문제의 해법은 진전될 수 없다. 그 자리가 그랬다면 일반 사회는 훨씬 심각할 것이다. 탈북자가 한국에 본격 유입되기 시작한 지 10년 이상이 됐다. 숫자도 2만4000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토론회 참석자가 그 정도로 탈북자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없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탈북자와 교류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정도밖에 안됐다. 1년간의 교류를 통해 내가 탈북자를 아는 것보다 한국사회가 탈북자를 더 모른다면 지난 10년간 탈북자와 함께 있던 세월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토론회에서 언급한 탈북자의 정치 편향에 대한 의견에는 찬동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반반이다. 아마 다른 참가자도 그랬을 것이다. 그 부분을 더 깊이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과연 충분한 의견 교환이 있었겠는가. 탈북자에 대한 지금의 인식 정도로는 결코 의견 교환이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북한 문제를 생각할 때 탈북자의 경험과 관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또 북한의 단점만 말할 것이 아니라 장점이 있다면 그것도 부각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탈북자를 이해한답시고 괜히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탈북자의 마음문만 닫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통일의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성 탈북자들의 경우 중국에서 인신매매나 위장 결혼을 경험하고, 그 결과 아이를 두고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차별이나 압박을 받는다. 탈북자는 북한에게 쫓기고 중국에서도 불안정하게 생활하다가 한국에서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 개인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냉정한 행동을 취할 수 없다. 이해도가 너무 적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의 큰 벽 앞에 서로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똑같다.

그렇게 될 경우 대화나 교류는 소극적이 된다. 손해가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표면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아닌) 경제적으로만 교류한다. 개인이든지 국가이든지 자신이 경험해 온 ‘역사’에 대한 마음속으로부터의 이해가 중요하고,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침착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탈북자・한국인 모두 ‘침착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제삼자인 나는 어느 부분까지 ‘침착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인이나 탈북자도 갖지 못한 다른 시각으로서 ‘나쁘지 않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해준다. 내 의견이 도움이 된다면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탈북자와 남한 사람간, 남한과 북한간, 한국과 일본간 더 깊이 이해하고 ‘침착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가 준비될 것을 바라면서 계속 의견을 나누고 싶다.

<일본 교토대 졸업, 동국대 북한학 박사과정>

와다 신스케  nohos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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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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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구아구 2012-09-24 14:28:28

    전체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깊이 보는 게 탈북자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라 생각한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그렇지 않은가. 선입견과 실제 모습이 항상 다르듯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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