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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들이 일어나 외치리라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야 했던 남과 북 어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멀리 보니, 비석들이 마치 어머니들의 눈물 같다. 이범진.

대전 현충원. 비석들이 촘촘하게 즐비하다. 한국전쟁 때 얼마나 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었는지 실감난다.

작은할아버지(叔祖父)는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전쟁에 나섰다가 전사, 이곳에 묻혔다. 호칭은 ‘작은할아버지’이나 지금의 나보다 어린 청년이었고, 전장에서 엄마 품을 그리워했을 앳된 아이였다. 왜 삼형제 중 막내였던 작은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전쟁에 나섰는지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다.

“책임감이 가장 강했다”는 가족들의 증언만 전해질 뿐이다. 막내가 전사했는데 곧이어 다른 아들도 전쟁터에 보내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아리고 쓰린 기운이 단전을 울린다. 멀리 보니, 비석들이 마치 어머니들의 눈물 같다.

작은할아버지는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전쟁에 나섰다가 전사했다. 호칭은 ‘작은할아버지’이나 지금의 나보다 어린 청년이었고, 전장에서 엄마 품을 그리워했을 앳된 아이였다. 이범진.

안타까운 죽음들…. 남한뿐일까, 북한에도 많을 것이다. 그곳의 어린 청년들도 전쟁터에 내몰려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 하에 목숨을 던졌다. 남한의 어미들과 똑같이 북한의 어미들도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노심초사, 하나님께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그 숭고함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그 사랑 앞에 아군과 적군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경계의 허물어짐. 모호함.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모옌은 그 모호함 속에서 인류를 살려낼 지혜를 뽑아낸다. <아들의 적>에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통해서다. 이미 전쟁터에서 가족을 잃은 그녀는 마지막 남은 아들의 무사 복귀를 비는 중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들’의 시체였다. 심지어 적군의 시체다. 아들이 아님이 분명하지만, 고단한 그의 얼굴에서 아들을 본 듯 뺨에 얼굴을 대며 말한다.

“그래, 얘야, 넌 바로 내 아들이야.”

반면! 예나 지금이나, 남이나 북이나 호가호위하는 ‘군인귀족’들은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막지 못 하고도 반성하는 일이 결코 없다. 오히려 분단과 갈등을 부추겨 돈을 벌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다시 전쟁을 준비한다. 저쪽은 미사일을 쏴 대고, 이쪽은 방산 비리가 들끓는다.

그들은 어린 청년들의 죽음이 전혀 슬프지 않은 것이다. 자식 잃은 어미의 눈물이 무섭지 않은 것이다. 왜 어미가 ‘아들의 적’도 끌어않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인류의 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궤계에 빠져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으니, 평화는 참 아득하고 멀고나.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전 유코리아뉴스 기자였다. 대전 현충원, 작은할아버지의 묘에 다녀와서 유코리아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외친다’(눅 19:40)는 말씀이 있다. 후손들의 화해를 간절히 바라는 비석들의 외침이 들린다.    

이범진 /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이범진  poemge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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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편 2017-06-03 09:59:14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페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 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33:8~1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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