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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갈등의 과거 딛고 평화, 공존의 미래로WCC ‘평화열차’ 답사 동행취재기 (끝)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서쪽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동쪽 대륙의 끝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약 9,446Km에 달한다. 경부선의 20배를 넘고, 지구 둘레의 4분의 1에 가까운 거리다. 시간대가 일곱 번 바뀐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장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창 밖에는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소나무, 낙엽송, 전나무 등 침엽수림이 수없이 많이 펼쳐지고, 가끔 초원지대도 눈에 띄었다.

답사팀을 싣고 동쪽으로 달린 열차는 다음날 새벽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이칼 호수로 유명한 이르쿠츠크는 평화열차 참가자들에게 쉴 수 있는 중간 거점이 될 도시다.

도시 중심에는 앙가라강이 흐르고 제정 러시아 때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아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린다. 러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에서 유럽의 문화가 꽃피우게 된 것은 ‘12월의 혁명’의 주인공 데카브리스트의 영향이다.

   
▲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전경.

젊은 귀족 장교 출신인 이들은 1825년 12월 농노제 폐지와 짜르 전제체정치 타도를 외치며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이곳에 유배됐다. 처음에는 강제노역을 했지만 수년 후 이곳에 정착하면서 러시아 귀족 문화와 유럽 문화를 꽃피웠다. 이곳에는 톨스토이의 작품 ‘전쟁과 평화’의 모델이 된 발콘스키의 흔적이 남아있다. 답사팀은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에서 이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유럽풍 건축양식을 자랑하고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무덤이 있으며, 발콘스키와 그의 부인 예카째리나, 아들의 무덤이 함께 있다. 러시아는 데카브리스트와 관련된 당대의 역사적 흔적을 박물관을 통해 잘 보존하고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약 60여 개의 대학이 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이르쿠츠크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알렉산드르 콜차드(러시아어 발음은 ‘꼴착’으로 들린다) 제독을 빼놓을 수 없다.

   
▲ 10월 사회주의 혁명 당시 볼세비키에 대항했던 콜차드 제독 동상. ⓒ기독교연합신문 최창민

콜차드 제독은 10월 사회주의 혁명 당시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대항했던 제정러시아의 하얀 군대 총사령관이다. 영화 ‘제독의 연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사회주의에 저항했던 그는 이곳 이르쿠츠크에서 붙잡혀 처형당했다. 러시아내전(적백내전)에서 붉은 군대가 승리하고 소련이 세워졌다. 구소련이 붕괴됐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여전히 사회주의 주도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성공한 혁명에 대항했던 콜차드 제독은 반혁명분자로 분류될 법하다. 하지만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사회는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기념했던 러시아 국민들은 동시에 이르쿠츠크에서 콜차드 제독의 동상을 세우고 그를 기념하고 있었다. 콜차드 제독이 재평가된 배경은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민족주의의 부활도 한몫했던 것 같다. 승자만이 독식하는 역사가 아닌, 패자도 기억하는 역사.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역사가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이르쿠츠크에서 각 국의 평화열차 참가자들은 바이칼 호수와 자연을 경험하게 된다. 바이칼호의 최대 수심은 1,637m, 길이는 636km에 달한다. 세계 민물의 20%, 세계 식수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336개의 강에서 유입된 물은 앙가라강 하나를 통해 빠져나간다.

   
▲ 이르쿠츠크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앙가라강 풍경. ⓒ기독교연합신문 최창민

답사팀은 환바이칼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의 절경을 돌아봤다. 또 높게 뻗은 소나무와 자작나무, 앙가라강이 어우러진 욜로츠카 휴양림에서 자연의 정취를 맛봤다. 욜로츠카에서 새벽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일어난 사람들에게는 멋진 물안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맑고 푸른빛을 내뿜는 새벽 앙가라강을 찍을 수 있는 행운도 덤으로 주어졌다. 급히 카메라를 들고나온 덕분이었다.

앙가라강은 이르쿠츠크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또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에도 얼지 않는다. 유속도 빨라서 수력발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곳 주민들은 강을 통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산다. 강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고 흘러가는 것이다.

이르쿠츠크에서 휴식을 가진 답사팀은 또다시 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열차는 몽골을 지나 11일 저녁 이번 답사의 마지막 거점지역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12일 오전 답사팀은 중국 교회 지도자들과 만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국 교회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면담을 거절했다.

중국은 삼자교회를 통해 자국민의 기독교의 활동을 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답사팀을 맞은 선교사는 “평화열차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을 때 조심스럽고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결국 평화마당 행사를 진행할 충원문(崇文門)교회와 하이디엔(海淀)교회를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천안문광장 근처의 충원문교회 전경. 세례교인수만 수만명에 이르는 중국 최대 교회다. ⓒ기독교연합신문 최창민

충원문교회는 천안문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1870년 미국 남감리교가 에스버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충원문교회는 1900년 반외세애국운동의 일환으로 발생한 의화단사건 당시 화재로 불탔다가 1906년 재건됐다. 1천석 규모를 갖춘 예배당에서는 주일에 4부 예배를 드리며 교회 앞마당까지 성도들로 가득 차 스크린을 통해 예배를 드린다. 현재 등록교인 5천 명, 세례교인 수만 명에 이르는 중국 최대의 교회다.

두 번째로 방문한 하이디엔교회는 베이징 주요 대학인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가 밀집된 곳에 위치해 있다. 대학가 교회인 만큼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또 교회 1층에 카페가 있어 인근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교회 규모도 커서 대규모 세미나 진행도 가능하다.

답사팀은 베이징의 상징 천안문광장을 향했다. 천안문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 있었다. 그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 하자 사복을 입은 경찰이 막아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복 경찰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23년 전 이곳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지금도 산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거나 삐라가 뿌려진다. 가끔 분신을 하며 정치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크게 도약하고 있는 중국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가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천안문광장에는 마오쩌둥 시신이 안치돼 있다. 마오쩌둥은 지금의 중국을 만든 사회주의 지도자다. 평일에도 그의 시신을 보기 위한 줄이 길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두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직접 보는 것은 포기했다.

러시아의 레닌,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등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시신이 방부 처리됐다. 후임 지도자들은 현재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신을 보존했다. 그들의 시신이 체제 정당화와 정치적 선전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냥터에서 잡은 동물을 보존하기 위해 박제를 한다. 그냥 두면 썩고 잊혀 진다. 박제는 과거의 열매와 영광을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생전에 유언을 통해 시신의 안치를 원했다는 점이다. 살아서 대륙을 호령했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방부제 처리돼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는 시신은 미래로 가지 못하고 역사를 자꾸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듯했다.

멀지 않은 곳, 북한에도 두 구의 시신이 보존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다. 그리고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이뤄졌다. 20세기 냉전이 종식됐지만, 냉전의 산물은 여전히 살아서 현대를 사는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분단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분열과 갈등, 반목의 역사를 평화와 공존의 미래로 바꿔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6박17일 간의 일정에서 가슴으로 깨달은 교훈이다.

<기독교연합신문> 기자

최창민  nrprin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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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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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8-16 14:39:30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평화열차프로젝트"를 언급했을 때 왜 조심스럽고 꺼리는 분위기 인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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