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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이꺼이' 백두산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제4회 동북아 평화발걸음(조중 접경지역)을 다녀와서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사)평화한국과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가 공동 주최한 제4회 동북아평화발걸음을 다녀왔습니다. 단동 압록강 하류에서 시작해 훈춘 두만강 하류까지 3380리 여정은 마치 꿈길 같았습니다. 옛 고구려, 발해터, 조상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땅을 밟으며 절로 감탄과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광활한 만주 땅을 호령했던 선조들의 웅대한 기상, 거기에 비해 반도의 절반밖에 안되는 땅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옹졸함이 너무나 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옛 수도 집안의 들판에 돌무더기로 남아 있는 광개토대왕릉 앞에서는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겐 다윗처럼 위대했던 왕을 마치 조그만 변방의 볼품없는 지도자 정도로 여기고 있는 중국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왕릉을 뒤로한 채 돌아서 나올 때는 마치 ‘우리는 이렇게 커다란 꿈을 꾸며 역사를 만들어 왔거늘 너희는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냐’며 못난 후손들을 향한 선조들의 꾸지람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동북 3성의 산야는 마치 남한의 여느 산야를 보는 것처럼 눈에 익숙했습니다. 간혹 눈에 뛰는 중국어 간판, 오성기만이 이곳이 중국 땅인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산야는 조상들의 땀과 눈물과 얼이 배인 고향입니다. 조상들의 고향 땅, 곧 우리네 땅에 여권을 가지고 비자를 받아 잠시 방문객으로, 외국인으로 와야 하는 현실이 죄송할 따름이었습니다.

압록강 한편으로는 이렇게 조상들의 옛 터전이지만, 반대쪽 건너편으로는 동포의 땅이지만 갈 수 없는 땅, 북한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무너질 듯 낡은 공장 건물들, 지붕 낮은 집들, 볼품없는 차림새를 한 사람들, 그러나 굽이굽이 압록강 줄기가 만들어낸 반달 모양의 북한 땅은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김형직군, 김정숙군, 혜산시, 지도로만 보았던 도시들이 모두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는 “북한 땅을 바라볼 때마다 마치 비스가 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내려다봤던 모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북한은 남한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가야 할, 축복을 위한 땅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좀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의 품을 열지 않는 백두산도 저희에게 몇 시간이고 신비한 천지를 죄다 내주었습니다. 연중 6~8월, 그 중에서도 30%만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머문 1시간 반 동안 백두산은 파란 하늘을 담은 천지를 활짝 열어 보여주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어린아이처럼 뛰어놀았습니다. 백두산은 분단으로 생채기 난 한사람 한사람을 보듬는 어머니의 너른 품이었습니다. 천지를 등지고 백두산 아래 펼쳐진 광활한 산 능성들을 보며 하산하려는 순간, 문득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길러낸 고구려, 발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북한마저도 쇠락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도대체 어쩔 셈이냐. 모태를 잊은 채 너희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셈이냐.” 그것은 제게 커다란 덩치에 쇤 목소리로 꺼이꺼이 우는 백두산의 눈물 소리였습니다.

   
▲ 일송정에서 룡정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일행들.ⓒ유코리아뉴스 김성원

   
▲ 서전벌 일대는 일제 시대 이전부터 조상들의 개간지였고, 일제 시대에는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다. 일송정에서 바라본 룡정 시내와 룡정을 관통해 흐르는 해란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코리아뉴스

일제 당시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던 룡정을 들르기 앞서 일송정을 먼저 올랐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눈에 띄는 무수한 소나무, 이름 모를 들풀과 산야초들 역시 남한의 어느 산에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의 기개를 꺾기 위해 일제가 사격장을 만드는 바람에 일송정 옆 소나무가 말라죽었고, 몇 년 전 한 독지가가 다시 심었다는 소나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쏴~’ 하는 바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 선배들의 가슴속 한과 시름을 달래기에 충분했습니다. 산 아래 펼쳐진, 민족 선배들이 개간했다는 서전벌, 그 위에 제법 개발된 룡정의 시가지, 그리고 그 중심을 관통하는 해란강. 일행은 자연스럽게 합창을 했습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60대 노 목회자의 눈에도, 선구자란 노래를 처음 불러봤다는 청년들의 눈가에도 뜨거운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룡정의 ‘순천집’에서 점심을 먹고, 지금은 유명 관광코스가 된 대성중학(현 룡정중학)을 거쳐 명동촌 윤동주 생가를 찾았습니다. 자그만 울타리 안에 집과 학교, 교회를 두고 신앙과 민족 공동체를 이뤘던 곳, 이곳을 방문했던 외국 선교사들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로 선교보고를 올렸다는 장소입니다. 대낮 하늘엔 별이 보이지 않았지만 윤동주의 ‘서시’는 가슴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서시는 분명 자신을 낳고 길러준 고향 명동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고향 집 앞으로 펼쳐진 널디넓은 들판, 멀찍이 그 들판을 둘러싼 병풍 같은 산들, 그리고 그 산과 들판을 품고 있는 하늘은 이곳을 찾은 누구나 서시의 주인공이 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곳에서 밤을 지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도문시에 가서는 잠시 두만강에 손을 담궜습니다. 그리고 고 김정구 선생이 구성지게 불렀던 ‘눈물젖은 두만강’이란 대중가요를 불러봤습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이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일제의 압제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야 했던 가족의 아픔, 지금은 여러 이유로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 탈북자들의 처절한 신세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러시아, 중국, 북한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훈춘에서는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나의 아들 딸들에게는 분단의 아픔이 아닌 통일의 감격을 물려주자, 그걸 위해 나부터 통일을 살자, 저 앞에 보이는 조러철교를 통해 러시아와 유럽으로, 세계 열방으로 뻗어나가자, 북한의 회복, 옛 고구려 터전 동북 3성을 평화와 복음으로 누비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꿈 같은 1주일의 시간, 비록 올림픽 경기의 뜨거움은 뒤로했지만 그보다 더한 애국심과 열정을 갖게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의 삶은 동북 3성과 압록강, 두만강 물줄기 여행을 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습니다. 통일시대를 이뤄갈 이 땅의 청소년들이 세계 열방을 향해 나아가기에 앞서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습니다. 1주일간의 뜨거웠던 여정은 저와 평화한국 이승철 사무국장, 그리고 이번 여정에 함께했던 이들의 글과 사진, 동영상 등으로 유코리아뉴스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2012년 8월 11일.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올림.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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