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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은 사랑을 싣고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직원을 위해 국수 등 부식을 준비해준다. 남은 부식은 집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다시 빈 도시락에 담는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의 풍경이다. 남북의 선명한 경계선에도 도시락은 자유로이 오가며 이야기와 사랑을 전한다.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도시락의 시간>은 아베 나오미라는 기자가 쓰고, 아베 사토루라는 사진기자의 사진이 실렸다. 오늘은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도시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는 참 아름답고도 소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 도시락의 시간 (야베 나오미 지음, 이은정 옮김, 야베 사토루 사진, 인디고 펴냄)


01

나카노 츠네오 씨.
보험회사 영업사원이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 대한 그의 말은 곧 가족이고 인생이다.

“도시락에 대해서는 감히 무슨 말을 하겠어.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나름 맹세를 했다.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만들어주는 사람의 기분이 전해지기 때문에 늘 고맙게 생각해. 아마 그래서 좀 맘에 안 들어도 아무 말도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잎채소는 늘 들어있지. 오늘 싸준 모로헤이야는 집 정원에서 부인이 키우는 거요. 좋아하냐고? 좋다 싫다 말을 못한다니까. 초절임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늘 들어 있어서 먹다 보니까 이제는 거의 대부분 다 먹을 수 있게 됐지. 다 우리 부인 덕분이지. … 그러고 보니 결혼생활 내내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네. 둘이서 사이좋게 하이킹을 하기도 하는데 둘이서 같은 풍경을 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
도시락을 둘이서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음식에서 아내를 느끼는 사람. 그래서 부부싸움도 한 적이 없다는 사람. 도시락이란 그런 것이다. 음식으로 부부는 서로 대화하는 게다.



02

사카마키기누요 씨.
역무원이다. 그녀의 도시락은 남편이 싸준다.

“아침 당번일 때는 5시 29분에 출발하는 전철에 늦지 않도록 나와야 해요. 남편이 싸준 도시락이 오후의 활기를 주는 원천이라오. 내가 일찍 일어나서 옷 챙겨 입고 화장하는 동안 도시락을 싸주거든. 계란말이도 맛있고 생선도 얼마나 잘 굽는지, 여하튼 다 잘해. 정말 잘해. 점심에 도시락 뚜껑을 열면 ‘어머나, 이런 것도 들어 있네’ 하고 언제나 새로워. 점심시간이 돼서 사무실 책상에서 도시락을 다 먹을 때쯤에야 다음 당번이 오지. 그러면 교대야. 나는 나와서 역 주변에서 잡초를 뽑거나 대합실 의자를 챙기고 그런 걸 해. 당번시간에는 다 못 하거든. 이런 일은 오후에 천천히 해. 역 주변에 제초제 뿌리는 게 싫어서 플란넬이랑 송엽국을 조금씩 늘려서 심고 있어. 온통 분홍색이지. 난 좋은데,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몰라.”
이런 역무원을 가진 역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그 평화를 만드는 데 여유를 주는 남편, 그리고 남편이 싸준 도시락. 누군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직장생활.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이런 나라가 아닐까. 아버지가 밤을 새고 거짓을 밥 먹듯이 저질러야 승진이 되는, 그렇게 해서 GNP를 올리는 게 사명인 나라는 아닐 거야.

 

03

이토나오미 씨.
어느 신사의 음악연주자이다.

“아, 맞다. 생각났어요. 엄마의 도시락은 항상 맛있지만 운동회 날에 텐트 밑에서 먹은 유부초밥과 김밥은 정말로 특별했어요. 뭐가 좋아냐면요, 울외장아찌랑 달걀, 박고지를 밥에 올린 다음 발로 말아서 완성한 통통한 김밥을 썰 때의 소리! 코가 상큼해지는 초밥 냄새! 그런 게 참 좋았어요. 음, 이런 말을 해서 그런지 그게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애들은 맛보다도 소리와 냄새로 기억을 저장해 두나 봐요.”
도시락은 추억이다. 다른 건 다 잊더라도 어릴 적 운동회 날에 엄마가 김밥을 썰 때의 소리는 기억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알고 보면 그렇게 섬세하다. 그런 섬세한 추억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 감각 하나하나가 다치지 않게 지켜주는 것,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란 그런 일이다.


04

이시이하루미 씨.
간호사 겸 경마장 말 체중 측정사이다.

“초등학교 때는 급식을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밥의 날’이었어요. 집에서 밥을 가지고 오는 날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도시락을 열었더니 다 핑크색인 거예요. 어머니가 소시지를 잘게 다져서 밥 위에 뿌려주신 거였죠. 그런데 그걸 본 담임선생님이 ‘밥만 싸와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시다니, 네 부모님에게 확실하게 말해야겠구나. 전화를 드려야겠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 주도 핑크색이었어요. 그때 역시 담임선생님께서는 ‘네 부모님은 안 되겠다’는 말씀만 하실 뿐이었죠. 아마 제 생각에는 도시락이 꽃처럼 예뻐서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엄격한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분명 집에 전화를 걸고도 남았을 분인데 말이죠. 그런데도 그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계속 핑크색 밥이었어요. 저도 선생님께 야단맞은 걸 엄마에게 얘기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선생님도 저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
도시락은 엄마이다.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웃음이 고스란히 도시락에 담긴다. 내 아내도 딸이 소풍을 가기라도 하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도시락을 준비한다. 초밥도 넣고 김밥도 넣고 과일도 넣는다. 조금조금 담지만 그 정성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아, 엄마구나, 싶다. 세상의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통해 비로소 마음이 큰다.
 

 

박명철  aim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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