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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은 이웃’인가?평화재단 평화연구원 ‘기획 칼럼’ - 외국인 이주자 200만 시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우익 포플리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발표한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2017년 벽두부터 온 세계가 시끄러웠다. 행정조치가 발표된 직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이 90일간 금지되고, 난민 입국 프로그램이 120일 동안 중단됐다. 그 결과 이미 입국을 허락받은 7개국 출신 국민은 물론, 휴가나 외유 등으로 잠시 해외로 떠났던 7개국 출신 미국 영주권자마저 공항에 발이 묶였다. 이 조치는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배치될뿐더러,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편적 인권의 심대한 침해라는 점에서 몹시 문제적이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 행정조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미국의 각 주 법원과 연방법원은 조치의 효력중단을 명령했고, 덕분에 당장의 혼란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새로운 반이민 수정명령 발효로 뜻을 관철할 것임을 밝혔다. 혼란은 잠시 유예된 것일 뿐, 언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민자와 난민을 겨냥한 이 반인간적 조치를 트럼프라는 괴물의 돌출적 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 내 여론이 40%에 달한다. 또 이 조치에 대해 유럽 각국 정부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유럽에서조차 반이민, 반난민 정서가 뚜렷한 정치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마린 르펜으로 대표되는 극우정당이 프랑스에서 누리는 높은 대중적 인기가 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이 단지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올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에서 줄줄이 열릴 대선, 총선의 결과는 반이민을 내세운 우익 포플리즘의 향배와 직결된다. 이주자가 유럽의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결정적 키워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이주자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은 우리에게 아직 강 건너 불인가.

2017년 한국, 외국인 이주자 200만 시대

촛불정국 시기, 매주 토요일 수십만의 시민이 모인 광화문광장에서 외국인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도 진귀한 그 역사의 현장을 많은 외국인이 호기심과 감탄의 눈길로 지켜봤다. 하지만 대부분 그들은 그저 ‘관찰자’로 보였다. 물론 겉모습만으로 잠깐 놀러온 관광객과 한국 땅에서 먹고사는 이주자, 즉 장기체류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이주자, 해외국적 동포 등을 구별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촛불집회에서 마주친 외국인 중 아웃사이더 구경꾼을 넘어 뭔가 ‘시민스런’ 참여의 포스를 풍기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왜일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2017년 1월 국내 체류 등록 외국인 수는 총 2,013,779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9%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약 21만 명의 불법체류자, 약 12만 명의 결혼귀화자(국제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는 제외한 것이니, 실제 한국 거주 외국인 수는 통계치를 훌쩍 넘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만 명을 처음 돌파한 것이 이미 2016년 6월의 일로, 처음 100만 명을 돌파한 2007년부터 채 십년도 되지 않아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연 9%대의 외국인 증가율이 유지되었음을 고려할 때 2021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 인구의 6%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 외국인 비율인 5.7%를 넘는 수치다. 보통 외국인 거주자 비율이 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사회로 간주된다. 따라서 한국은 이미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문화의 터전일 수 없다.

국내 체류 외국인 2백만여 명 중 90일 이상의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장기체류자가 약 150만 명, 즉 전체의 75.6%에 달한다는 점, 또 체류 외국인 중 38.7%, 약 78만 명이 조선족이나 고려인 등을 포함한 외국국적 동포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 주변 외국인의 3/4이 단순 방문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사람들이거나, 때로는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이다. 실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일반고용허가제(E9)로 들어온 외국인이나, 특례고용허가제(H2), 재외동포취업비자(F4)로 들어온 외국국적 동포들이다. 전체 체류 외국인의 국적 비율이 중국 50.8%, 베트남 7.4%, 미국 6.8%, 태국 4.7%, 필리핀 2.7%라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모두 <일반/특례 고용허가제> 대상국, 즉 보통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그 나라들이다. 이는 결혼이주자에도 적용된다. 현재 약 15만 명인 결혼이주자의 압도적 다수가 중국(조선족 포함),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몽골 출신이다.

본격 다문화 사회, 하지만 그들은 과연 우리의 이웃인가

그렇다면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본격 진입한 한국사회의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불행히도 여러 관련 조사들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인구통계’상의 다문화화와 한국인의 ‘실제적’ 다문화화, 즉 다문화 포용성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한국사회과학원이 시행한 한 분석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03년과 2015년 각각 실시된 <이주자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라는 설문조사를 비교해보면, ‘이주자가 한국경제에 도움이 된다’, ‘새로운 문화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따라서 ‘더욱 늘려야 한다’ 같은 긍정적 지표는 2015년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범죄율을 높인다’,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 ‘국가 재정부담을 높인다’ 같은 부정적 지표는 모두 상승했다. 특히 최근 외국인 범죄가 급증하면서 이주자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외국인 범죄 증가 추세는 이주자 수 자체의 증가를 반영한 것으로, 그 범죄율은 인구 대비 한국인의 범죄율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나아가 이주자 범죄는 그들이 한국에서 겪는 온갖 차별적 상황, 열악한 주거 및 노동환경, 낮은 임금과 사회복지시스템에서의 배제, 문화적 멸시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특히 문화적 차별과 관련해 아산정책연구원의 2015년 여론조사 결과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의 이민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면, 동남아인, 특히 중국인에게 아주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젊은 세대일수록 정도가 높았다. 과연 외국인 이주자가 한국인에 가하는 위협과, 한국사회가 이들에게 가하는 위협 중 어느 것이 더 부당하고 치명적인가.

합법적으로 입국해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현대판 노비문서’라 불리는 <고용허가제>에 의해 이직 횟수 제한, 구직 기간 제한, 사업장 이동 제한 같은 기본적인 인권침해에 시달린다. 그래도 이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단속과 강제추방의 공포에 항상적으로 시달리는 불법이주자만 현재 21만 명이다. 한국은 세계 47개국이 인정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여전히 비준하지 않고 있으며,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인종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나라다. 이미 2006년 국가가 나서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한국식 다문화주의에서 ‘차이의 공존’은 그저 수사일 뿐, 실질적으로 그 본질은 강력한 동화 정책이다. 비판적 연구자들이 ‘다문화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기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동화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다문화 정책이 결혼이주자를 대상으로 한 ‘다문화가족’ 정책으로 집중되는 경향도 이와 관련된다. 한국인에게 외국인 노동자는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할 이방인일 뿐이다. 반면 국적 취득이 용이한 결혼이주자 및 그 가족은 적극적 동화의 대상이다. 이런 차이의 근본 원인은 시민의 권리, 즉 시민권과 국적을 당연하게 일치시키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고정관념에 있다.

국적=시민권=인권? 등식의 파기!

사실 ‘국적=시민권’ 사이의 등가관계는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기반한 근본원리였다. 하지만 바로 이 근본 속에 반인권의 위기가 숨어 있다. 국적과 시민권의 동일시는 국적을 가지지 못한 자, 그리하여 시민이 될 수 없는 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결국 국적의 부재로 인한 시민권의 부재가 보편적 인권의 부재로 이어지며, 이로써 ‘국적=시민권=인권’ 사이의 일치관계와 그로 인한 강력한 배제의 메카니즘이 완성된다. 바로 여기서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인권의 역설’이 발생하는 바, 국적과 시민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 그리하여 국민도, 시민도 아닌, 오로지 인간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바로 그 인간을 위한 권리인 인권이 송두리째 박탈되는 것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나, 유럽의 반이민 정서, 한국의 차별적 다문화주의의 논리 속에는 국적과 시민권의 동일시, 시민권과 인권의 동일시가 초래할 수 있는 반인권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국적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시민의 권리, 또 시민임으로써만 보장되는 인간의 권리는 소속되지 않은 자, 그럼으로써 시민일 수 없는 자를 인간의 경계 밖으로 내몬다. 첨단의 문명 속, 사람, 노동, 자본의 이동이 일상화된 지구화 시대, 날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 난민, 불법체류자, 무국적자의 존재와 그들의 열악한 현실은 문명 속의 야만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반이민, 반EU, 반세계화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다문화 선진국들의 경우 의료, 주거, 교육 등의 기본적 복지 지원이 국적을 소유하지 않은 이주자에게도 주어지고,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서는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방자치선거의 투표권도 허용하는 추세였다. 이는 자유권은 물론, 사회권, 정치권, 문화권의 총체로서 시민권이 국적과 무관하게 부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권의 탈국가화’로 요약될 수 있을 이런 경향은 (일국의 경계를 벗어나는) 유럽 시민권, 글로벌 시민권, 트랜스/포스트내셔널 시민권 등을 둘러싼 문제의식 속에 반영되어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의 경우, 국적에 대한 배타성, 국적과 시민권의 일치에 대한 고정관념이 매우 강하다. 그 결과 한국식 다문화 정책은 외국인 이주자의 기본권을 다분히 시혜적인 복지 제공 차원에서 고려할 뿐, 엄연한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사회권, 정치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결혼이주자 정도가 그 예외에 해당한다.

하지만 외국인 이주자 문제의 핵심의제는 ‘이주자 시민권’이어야 한다. 이는 이주자들에게 무조건 국적을 부여하자는 말이 아니다. ‘국적=시민권=인권’ 같은 배제의 공식을 과감히 파기하자는 말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그들이 국적과 무관하게 시민과 인간의 권리를 더불어 누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다. 아무리 현재 강고한 국가주의의 귀환이 세계를 강타한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새 시대의 새로운 비전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않는가. 국민=국가(nation=state)가 보장되던 국민국가(nation-state)의 논리는 이미 너무 낡고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이문영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문영  peace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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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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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영 너 메rkf이지 2017-04-22 02:33:01

    너같은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 대한민국을 증오하고 짱꼴라와불체살인마들을 찬양하는 버러지는 자살이 이 사회에 기여하는 유일한 길이다 자살해라 지금 당장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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