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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절망에 빠졌던 탈북청소년 다시 찾아보니…[기획·르포] 2만 3천명의 탈북자, ‘그들은 누구인가?’ ①

 
“나는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꼬마 때처럼 허리를 숙이고 팔을 물속으로 휘저으며 가짜 헤엄을 치며 걸었다. 발이 물속에서 뜨면 개헤엄을 치듯 하다가 땅이 닿으면 발을 차며 걷곤 했다. (…) 마을을 지나지 않으려고 멀리 들판 쪽으로 하여 남동쪽을 바라고 걸었다. (…) 나는 부령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내가 자란 청진을 가다가 있다는 소리만 들었다. 어딘가에서 광석을 실어나르는 기차라도 만나면 얻어타게 될지도 몰랐다. 칠성이와 나는 뙤약볕 아래를 정처도 없이 걸어갔다.”

발각되면 총살이다.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에 비하면 계획과 준비는 너무 미약하다. 지도 한 장 없고, 돈 한 푼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도 얼추 방향을 잡아 걷는다. 곳곳에서 기다리는 만남의 수만큼, 위험도 도사린다.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황석영 지음)의 처절한 북한탈출기가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것은 탈북학생 한일이의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4년 전 어느 탈북 학생의 이야기

한일이를 만난 것은 4년 전이었다. 탈북 청소년들의 방과후학습을 돕는 자원봉사를 할 때였다. ABCD도 모르는 열일곱 한일이에게 중2 영어를 가르치라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따금 남한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을 눈치챘을 때, 공부를 중단하고 물었다.
“한일이는 북한에서 뭐하다 왔니?”
“저요? 권투하다가 왔어요.”

9살 때부터 운동만 해왔다는 한일이는 열다섯 살 때 북한을 탈출했다. 어린 나이였고 혼자였다. 두만강을 건너 무조건 북쪽으로 뛰었다. 불빛이 있는 곳은 위험했다. 검문소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산으로 빙 둘러 가기를 여러 번이다. 동물을 잡기 위해 파놓은 2미터 깊이의 웅덩이에 빠지길 여러 차례, 발목이 삐고, 종아리가 찢기어 피가 철철 흘렀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단다. 도망쳐야 한다는 극도의 긴장감에 온몸은 무감각하였고, 파르르 떨리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거예요. 그때는 굶어 죽으나, 잡혀 죽으나 똑같으니까 어린 나이에 무서운 것도 모르고 한 거지요.”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브로커’를 통해 탈북을 하지만, 한일이는 그럴 돈이 없었다. 중국에 도착해 남한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와 상의 끝에 여권을 위조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의심을 받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위조한 여권으로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검사관의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실패였다. 경찰을 부른 것이다.
“아찔해요. 그때 붙잡혔으면 그대로 북한으로 돌아가서….”

그때는 작은 몸이 도움되었다. 요리조리 경찰을 피해 겨우 도망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가 있는 남한 땅에 도착하였다.

현재 남한 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약 2만 3천명의 탈북자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곳으로 왔다. 대부분 ‘탈북 브로커’를 통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다. 중국, 태국, 베트남 등에 있는 외국 영사관을 통해 난민이 되어 오기도 하고, 여권을 위조하기도 한다. 제3국에 머무는 기간은 천차만별이다. 짧으면 일주일이지만, 길어지면 10년을 넘는 경우도 있다. 브로커를 통해 남한에 도착한 이들은 브로커에게 정착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떼어 주어야 한다. 한때 ‘기획탈북’이라 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 통일부 제공

   
▲ 통일부 제공, 탈북자 현황


결승전 출전 자격 박탈,
모든 것 앗아가는 기분… 극단적인 생각도


남한에 도착한 한일이는 다른 탈북자들과 같이 통일부 하나원에서 ‘적응 교육’을 받았다. 이곳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3개월간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6~8개월간 직업훈련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권투밖에 모르고 살아온 한일이는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이었다. 권투로 인정받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했다. 끼니를 거르지 않으니 힘도 솟았고, 자신감도 생겼다. 노력 끝에 실력을 인정받아 한국체육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메달도 여러 개 목에 걸었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뽑는 대회에서는 결승에도 진출했다. 그런데 결승전 상대는 한일이의 나이를 문제 삼았다. 또래보다 세 살이 많았던 것. 협회는 결승 진출은 물론, 다른 대회의 참가도 불가하다는 방침을 내렸다.


   
▲ 김한일 군

열여섯 한일이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하였다. 권투를 앗아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방황하는 한일이를 보며, 어머니도 어찌하지 못하였다. 아픔을 보듬어주기에 가정의 상황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탈북자 출신으로서,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힘든 일을 하면서도, 돈은 많이 벌지 못한다.

또한 탈북자 출신으로 구성된 가정은 재혼 형태인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새 아버지시거든요. 그래서 가정이 뭔가 따뜻하게 그런 느낌이 없어요. 다른 탈북한 아이들도 이런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요. 다 커서 만난 아버지와 정을 붙인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친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지, 살아 계신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굳이 재차 확인치 않아도, 구체적인 상황을 몰라도, 충분히 힘든 이야기였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다

절망에 빠진 한일이를 구한 건 친구의 말 한마디였다.
“네가 지금 열일곱이야. 인생 스무 살 살고 죽을 것도 아닌데, 시간 많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있겠어?”
그래서 한일이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년으로는 중2였다. 체육중학교에서 일반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의사소통도 힘들었고, 세 살 어린 동생들과 배우는 데도 한참이나 뒤처졌다. 그래서 찾은 곳이 탈북청소년들의 방과후학습을 돕는 한누리학교였다. 정확히 4년 전, 한일이와의 만남이 시작된 때였다.

한일이는 공부를 하다가, 북한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농사지으며 인분 뿌리던 이야기도 하였고, 권투하던 때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날씨가 좋으면 같이 축구도 하러 나갔다. 그때마다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는데, 남한 학생들은 모두 학원으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을 함께 공부하였다. 진도는 더디었지만, 한번 문(?) 문제는 절대로 놓지 않았다. 끈기는 챔피언 감이었다. 자원봉사를 그만둔 후에도 종종 이메일로 궁금한 문제를 물어오곤 했었으니까.

그리고는 훌쩍 3년이 흘렀다. 2011년 11월의 어느 날, 페이스북 친구요청. ‘김한일’이었다. 문자 한 통 주고받지 않고 3년 만의 첫 연락이었다. 불안하였다. 주변의 탈북청소년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기사를 즐겨봐서다. 잘 적응했는지, 공부는 계속했는지, 몸은 건강한지, 어느 것 하나 긍정적 결과를 담보할 만한 게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한일이는 결코 낭만적인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탈북 학생의 인생 역전 이야기 

3년 만에 만난 한일이는 키가 20센티는 더 자라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물었다. 탈북청소년만 모아 교육하는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 고등학교인 마포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문제집부터 차근차근 풀면서 3년을 보냈단다. 고등학교 2학년이 넘어가서는 영어, 수학 전교 1등도 해보았다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다며 활짝 웃었다. 경영학과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교수가 되는 게 꿈이라 했다.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겠단다. 또래들끼리 모여 통일을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 있게 “이제는 제가 선생님을 도와드릴 수 있겠네요”한다.


   
▲ 서강대학교 도서관에서 김한일 군

2만 3천 명의 탈북자, 그들은 누구일까? ‘23,000’이라는 숫자에 가려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잠깐 처참한 비극이라 하여, 책을 덮어버린다면 일렁이는 감동은 영영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탈북자! 그들은 누구인가, 속단하기엔 아직 남은 이야기들이 많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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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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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9-27 14:41:44

    2016년 현재는 3만명 가까이 늘었다고합니다~!!!! 참고하시기를....!!!   삭제

    • hephzibah 2011-12-31 10:26:30

      2만 3천 명의 탈북자, 그들은 누구일까? ‘23,000’이라는 숫자에 가려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잠깐 처참한 비극이라 하여, 책을 덮어버린다면 일렁이는 감동은 영영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탈북자! 그들은 누구인가, 속단하기엔 아직 남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 남은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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