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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견인’이 필요한 때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전략적 인내’에서 ‘전략적 견인’으로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7.04.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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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다한 ‘전략적 인내’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월 17일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였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외교·안보·경제적인 모든 형태의 전방위 압박정책을 구사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것은 지난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역점을 두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 데 따른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했던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수석대표회담 이래 8년 4개월 동안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초 핵실험을 실시한 게 발단이 됐지만, 6자회담의 재개를 둘러싼 조건을 놓고 ‘전제 없는 재개’를 주장하는 북·중·러와 ‘재개에 앞선 사전조치’를 요구하는 한·미·일 사이의 입장차이가 큰 데다 이 간격을 좁히려는 진지한 노력 자체가 없었던 데 기인한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자, 한·미 양국은 한편으로는 한국형 3축 체제, 사드(THAAD) 도입 결정을 비롯한 미국의 확장억제자산 증강,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억제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유엔안보리 및 한·미·일·EU가 대북제재를 부과하는 등 고강도 압박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군사적·경제적 대북 압박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재촉하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전략자산이 동원된 한·미 대규모 군사연습에 반발하며 핵·미사일의 개발과 배치를 한층 서두르고 있다. 이처럼 기존 방식으로는 평화공존과 통일에의 전진은커녕 북핵문제의 해결에서도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 한국이나 미국의 새 정부는 ‘전략적 인내’에 기반한 대북정책 기조를 새롭게 ‘전략적 견인’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략적 견인’이란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북한을 점진적으로 정상국가화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대북 억제력을 확보한 토대 위에서 각종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관리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의 관여를 점차 높여 나감으로써 북한 스스로 핵무기 없이도 체제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고 평화적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적극적으로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는 압박과 포용이라는 2분법을 넘어선 선제적 관여의 접근법이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출구론과 3단계 연계론

그렇다면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 북한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견인할 것인가? 지금까지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는 북핵문제를 협상의 입구에 놓는 입구론(Future Forward Method)의 입장을 취해 왔다. 다시 말해, 당면한 북핵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것이 풀리지 않으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않거나 제한하면서 북한을 압박한다는 전략을 채택했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현안에 북핵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입구론은 한계를 안고 있다. 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해 민족유산의 보존·관리, 유무상통의 남북경협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과제를 남북대화의 입구에 놓을 것이 아니라 출구에 놓고 풀어나가는 출구론(Future Backward Method)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타당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출구에 놓는다는 것이 남북관계를 우선시하고 북핵문제를 후순위로 미뤄놓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관건은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어떻게 연관 지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통적으로 연계론과 병행론의 두 가지 접근법이 알려져 있다. 연계론이 군사문제가 진전되어야만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병행론은 작은 교류·협력에서 시작해 점차 군사문제의 해결로 나아가려는 접근법이다.

이러한 두 가지 접근법은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과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기본적으로 병행론의 입장에 서 있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다고 하는 긴밀한 연계론의 입장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은 ‘느슨한 연계’에서 시작해 ‘긴밀한 연계’로 나아간다는 2단계 연계론이었다.

느슨한 연계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은 ‘비핵·개방·3000’ 구상보다는 유연한 접근법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 역시 자신이 먼저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일방적 신뢰를 요구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이 완고한 핵보유 입장을 꺾지 않아 신뢰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느슨한 연계’조차 시작되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비핵·개방·3000’ 구상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다.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을 때, 새 정부는 어떠한 접근법을 취해야 할 것인가? 새 정부는 우선적으로 비연계 병행의 방법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일단 북핵문제와 연계하지 않은 채 남북관계 개선에 착수해 신뢰를 마련한 뒤, 어느 정도 신뢰가 조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단계적으로 연계해 나가는 ‘비연계 병행→느슨한 연계→긴밀한 연계’의 3단계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법이 될 것이다.

경제-안보 교환을 넘어 안보-안보 교환으로

이처럼 일단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연계하지 않고 병행 추진해서 남북관계가 회복된 뒤 일정 수준으로 신뢰가 쌓이게 되면, 느슨하게나마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시켜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핵·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소규모 교류·협력 이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에 대해 태도 변화를 보인다면, 남북 교류·협력을 포함해 본격적인 북핵협상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향후 북핵협상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에게 경제·에너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의 대규모 병력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데다가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인 북한의 지도부가 스스로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없어도 체제안전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가 제거되어야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제거해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이 확대 강화되어 남한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면 북한이 북한 핵을 포함한 안보문제에서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이라는 이른바 평화경제론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정치 상황이 변하자 낚싯대는 걷어치워 버렸고 북한은 정작 낚싯밥만 따먹은 셈이 되었다. 시간이라는 변수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북 퍼주기론’ 비판이 있었다.

정반대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북한이 핵포기 약속을 하면 이전 정부보다도 더 큰 경제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비핵·개방·3000’ 구상을 내걸었다. 하지만 남북한의 신뢰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북한이 이 구상을 거부한데다가 서해 NLL 부근에서 몇 차례 군사충돌이 발생하는 바람에 남북관계는 오히려 크게 후퇴하였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이 ‘작은 신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처럼 김대중,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경제인센티브를 통해 북핵을 비롯한 안보문제를 풀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새롭게,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문제는 기본적으로 분단과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정치·안보문제이다. 따라서 우리 쪽에서 아무리 대규모 경제원조를 제공한다고 해도 ‘합리적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지도부는 핵·미사일을 쉽사리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측에서 제시하는 안보인센티브와 교환해야만 가능하다.

북한의 연성균형론 수용이 관건

여기서 문제는 우리측에서 어떠한 안보인센티브를 제시해야 북측이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에 호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측이 제시한 안보인센티브의 내용은 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공동성명’에 나와 있다. 성명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미 양국은 대북 불가침, 한반도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 북·일 수교 및 에너지제공을 약속하는 등 연성균형(soft balancing)에 기초한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6자회담의 재개가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키면서 기존에 핵포기와 평화협정, 북·미수교 등을 맞바꾸는 연성균형 방식을 거부하고 핵포기와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을 맞바꾸는 경성균형(hard balancing) 방식의 안보-안보 교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게 북한이 경성균형을 고집하게 되면 남북대화나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미 2009년부터 비공식적으로 핵 포기의 대가로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핵우산의 철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드러내놓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미국과의 핵감축 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북한은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북·미 평화협정을 요구함으로써, 북한의 핵포기를 위한 연성교환의 대가였던 한반도 평화협정을 경성균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의 우선과제는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연성균형을 통한 포괄적 안보-안보교환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여전히 국내에는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에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 포기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한·미 양국도 주한미군의 성격을 북한에 비적대적인 것으로 바꾸고 해상경계선과 관련된 NLL갈등도 해결해야 하는 등 안보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측이 북한측에 대한 안보인센티브 제공에 인색한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나중에 한·미 양국이 북한에게 지불해야 할 대가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작 우리가 걱정할 일은 평화협정 체결의 후유증이 아니라,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폐지와 같이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값비싼 안보인센티브를 요구하는 경우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있으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첫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양국간의 통상문제 외에 동아시아의 여러 외교·안보 현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 민족의 장래와 직접 연관이 있는 북한 핵문제나 사드 문제도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초강대국들의 담합에 의해 우리 민족의 운명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민족문제의 민족 내부화’를 위해 새 정부는 과감하게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staff@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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