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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의 한국외교동아시아재단 ‘정책 논쟁’ 제69호 - 한국의 진로를 탐색하다 :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논쟁(외교)

사면초가의 한국외교

우리 외교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외교정책을 뒤바꾸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우리 외교에는 방향성이 없다. 북한은 핵-미사일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데 남북간에는 아무런 접촉도 없다. 성급히 자초한 사드문제로 한중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외교갈등이 심각해졌고, 대사도 떠나 버렸다. 우리 외교에 어떻게 이러한 일이 생겼는가? 대미 외교에도 방향성이 없고, 대북 외교, 대중 외교, 대일 외교가 철저히 철학과 전략을 무시하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는 이제 인맥과 눈치 차원의 아마추어 외교에서 철학과 전략을 위주로 하는 차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현상인정이 전제가 돼야 한다. 신뢰 프로세스로 현상인정을 만들어 나갈 수는 없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에 대하여 현 상태에서의 현상인정을 원하지 않고 있다. 동독이 서독에 대하여 간절히 현상인정을 원하였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북한이, 동독이 서독에게 그러하였던 것처럼, 현상인정 기조 위에 남북관계를 재정립할 때, 그때 남북평화 또는 신뢰프로세스는 정착된다. 북한이 현상인정을 거부하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전략적 딜레마 속에 있다. 북한이 핵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하는 “병진노선”은 정책의 표현이 아니라 딜레마의 표상이다. 북한의 딜레마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우리의 의도가 좋아도 남북 교류나 외부세계의 진출이 북한의 눈에는 트로이의 목마 혹은 독이 든 당근으로 보인다. 외국과의 교역, 투자, 그것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는 까닭은 외부의 의도가 아니라 북한이 자초한 반세기에 걸친 고립, 외부와의 차단 정책에서 오는 뿌리깊은 의구심, 그리고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바로 이러한 철학을 보지 못하고 추진된 정책이다.

이런 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북한이 2016.1.6 제4차 핵실험으로 대응하였다. 철학이 없으면 이때 일어나는 것은 감정적 반응, 행동보다는 반작용이다. 배신을 한 북한에 대하여 하루아침에 우리는 북한과의 신뢰프로세스에서 북한 궤멸 작전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 이후 우리 외교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서 최대로 강력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문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제재는 우리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간의 어려운 협상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철학을 무시하고 추진한 정책이었다. 동시에 “김정은 암살단” “북한 주민은 한국으로” “제 정신이 아닌 김정은” 같은 북한 붕괴 외교를 적나라하게 펴게 된다. 북한 붕괴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철학적 고찰을 무시한 위험한 정책이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 사드 배치론이 우리의 주도로 성급히 이루어지게 된다. 사드에는 남북문제와 미중문제가 같이 얽혀 있다. 북한의 핵무기로부터 미군기지를 보호한다는 사드가 우리 안보에 결국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북한 문제를 푸는 데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과 협조가 반드시 둘 다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 문제를 다루면서 남북문제에만 몰두한 나머지 미중 문제를 무시하고 우리 주도로 성급히 내린 결정이 사드 배치론의 본질이다. 결국 우리 외교 전체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근본 철학을 외면한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우리 외교의 양대 기둥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충돌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 되풀이하지만 사드문제는 남북문제에만 몰두한 나머지 미중문제를 우리가 안고 들어가서 생긴 문제다. 왜 사드문제에는 미중문제가 내재되어 있다는 철학을 무시한 것일까?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당초의 전제가 문제의 시작이다. 한일교역, 문화 교류, 관광, 대 북한 협력 같은 긍정적인 면을 고려할 때 한일 관계는 유지되고 진전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년간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한일관계의 긍정적인 면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갑자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하든 처리해야 한다는 상황에 사로잡혀 만들어 낸 것이 2015.12.28 한일위안부 합의 사항이다.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외교의 철학이 돼야 한다. 따라서 한일 과거사나 위안부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가 된다. 어떻게 누가 해결되지 않을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기발한 생각을 한 것일까? “관리”라는 철학으로 비로소 한일간의 긍정적인 관계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한 것일까?

철학과 전략의 외교: 눈치와 인맥 외교에서 탈피

차기 정부는 대북, 대미, 대중, 대일 외교 모든 면에서 아주 어려운 외교 과제를 숙제로 가지고 출범해야 한다.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 외교가 우리 스스로를 사면초가의 함정에 빠지게 했다는 것은 명백해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빠져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지금처럼 근본적인 성찰 없이 더욱 몸부림만 친다면 더욱 깊이 빠져 들기만 하게 된다. 이제 눈치와 인맥에 의지한 아마추어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만의 철학과 전략을 가져야 외교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가다듬어 철학과 전략에 의거한 근본적인 발상을 재점검하고 사고의 일대 전환을 통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우리의 외교전략은 큰 줄기를 잡고, 간명한 원칙이나 분명한 비전에 입각하여야 한다. 지도자가 중요하다. 다음 우리의 지도자는 자신이 그러한 철학과 전략을 갖추고 있던지, 아니면 그러한 사람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국민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우리 외교의 현주소가 과거 눈치 외교와 인맥 외교의 패러다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500년 우리의 외교권은 중국이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조공관계만 유지하면 되었다. 청나라가 망한 후 우리 외교는 2차 대전 말기까지는 일본에 휘둘렸다. 그 이후 20세기 말까지 우리 외교는 압도적인 미국의 힘과 영향력에 주로 의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는 과거 600년간 “능동적”인 외교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눈치와 인맥 외교를 하게 된 이유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동아시아의 계속되는 부상과 함께, 우리가 600년만에 처음으로 외교다운 외교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 외교는 역동성이 부족하다. 주변에서는 모두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우리는 정지되어 있는 모습이다. 국민은 혼란스러워 한다. 철학과 전략이 해답이다. 눈치와 인맥 외교, 아마추어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 같은 국가에게는 사실 많은 경우 명확한 입장을 유보하고 한걸음 뒤에서 신중한 관망 자세로 임하는 것이 국익을 잘 확보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근래 한반도를 위요한 국제정세는 본질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그 가운데 각종 주요 사안이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어서 이제는 우리가 신중한 관망 자세로 일관하는 것만으로는 국익을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중요한 안보나 경제 이슈가 걸려 있는 문제에 있어서 다중외교를 별로 해 볼 기회가 없었다. 적어도 냉전이 끝나고 중국의 부상이 있기 전에는 그랬다. 새로운 형세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신중한 외교 자세를 지키되 사안에 따라서는 “철학과 원칙”에 입각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신중한 원칙외교를 구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차기 정부를 위한 외교 철학과 전략

오바마 행정부가 쓰던 전략적 인내가 포기된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 외교에 닥친 최대의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최대 안보위협인 동시에 북한 동포는 형제자매다. 그래서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압력과 대화를 병행하여야 한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철학 아래 전략적으로 우리는 최전방에 서서 대북 제재를 이끌지는 말아야 한다. 반대로 대화에서는 비밀접촉을 포함하여 어느 나라보다 앞서야 한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는 북한 정권 궤멸 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북한의 붕괴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 빨리 제재와 대화 병행으로 복귀하여야 한다. 우리가 이런 철학과 전략을 가질 때 비로소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나오든지 중심을 잡고 맞설 수 있다.

북한과의 대화에서는 비밀대화가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도 쿠바와 1년 6개월에 걸친 비밀협상 끝에 수교 교섭을 완성하였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는 지난 반세기간 북한과 비밀대화를 하지 않은 유일한 정부가 될 것이다. 북한 문제를 풀겠다는 철학이 투명성 문제로 좌우될 수 없다.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데도 “제재는 남들 수준으로, 대화는 우리가 앞장서서”라는 철학과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인권 문제 처리에서 철학과 전략 부족으로 불참·기권·찬성 등 오락가락할 일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북한인권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중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기 싫어한다. 북한은 반대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 인권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로서는 안보, 통일, 남북 대화 같은 인권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들이 있다. 그래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결의안을 만드는 데는 앞장서지 않지만, 결의안이 제출되면 우리는 반드시 찬성한다”는 철학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이러한 철학과 전략은 국내에 설명하여 지지를 받아야 하고, 북한측에도 그러한 우리의 의도를 알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친구들에게도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반적인 우리의 대북 정책이나 남북관계가 설명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과거 강대국간에 있었던 군사적 충돌을 통한 패권다툼이 아니라, 무역, 경제력, 문화 같은 소위 소프트 파워로 경쟁하게 된다. 따라서 미중간의 경쟁은 서양 장기식 정면 충돌이 아니라, 동양 바둑식으로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전략적 이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된다.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 2050년쯤 되면, 중국이 경제적으로 제1 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보·군사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제1 강대국으로 남아 있게 될 가능성을 예견하여야 한다. 종국적으로 미중간의 우열은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이러한 다차원적인 경쟁에 의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가려지게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그 바탕에서 두 나라를 대하여야 한다. 중국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자”는 외교원칙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세계문제에 있어서 책임 있는 역할을 다 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대조되는 외교 입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G2로 일컬어지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상대방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통적인 외교 각축으로 치부해 버리기 쉽다. 사실 미중간 경쟁을 염두에 둔 외교포석의 측면이 분명히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미중 외교의 차이는 동서양 문명의 근원적인 차이에 각각 근거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귀납적이고 내향적인 중국과 연역적이고 외향적인 미국, 두 나라가 이렇게 아주 대조적인 외교방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정책의 차이를 넘어서 뿌리 깊은 문화와 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6자 회담 등 대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미국은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는 한 원칙 없는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귀납적으로 대화를 통하여 해결 방법을 찾자는 것이고, 미국은 연역적으로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방법을 대화를 통하여 확정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이러한 그림을 가지고, 우리 국익에 맞게 우리는 중국을 끌어들이는 제재 강화, 미국을 포함한 대화 병행과 같은 큰 그림들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식으로 핵포기가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는 공식을 벌써 내비쳐서 대화 추진에 어려움이 있지만, 다음 우리 지도자는 어떤 형식이든지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려운 이란 핵 문제도 바로 강한 압력과 힘든 대화라는 두 가지 방안을 합쳐서 해결된 전례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중외교와 관련 사드는 대북 핵 위협 완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한중 경제문제 악화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북핵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과 척을 지는 방식으로 사드배치 문제를 다루어가면 결국 대북 핵 위협 완화는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에서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앞에서 거론 한대로 사드배치 문제에서 사드배치는 한미간에 결정하며, 다만 사드가 중국의 안보에 실제로 미칠 영향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기술적인 검토를 거친다는 입장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드 배치를 가속화하겠다는 정책이 어디까지 실현되는지, 그것이 5.10 새 정부 출범과는 어떤 관계를 가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사드가 중국 안보에 실제로 미칠 영향이 있는지는 반드시 검토되었어야 했다. 우리는 중국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식으로 취급하고자 했다. 우리의 무기도 아니고, 그런 무기에 영향을 받을 나라도 아니면서 미중 문제에 끼어든 것은 성급했다. 트럼프 행정부 백악관 대변인은 2017.3.8 사드에 대해서 “중국의 관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것은 일본과 한국의 안보 사항이다”(“But we obviously understand the concerns of China, but this is a national security issue for Japan and South Korea.”) 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의 제 19차 공산당 대회가 2017 가을에 열린다.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중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 외교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 본래의 임무이다. 우리가 그런 상황을 안고 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역사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철학이 없을 뿐 아니라 상식도 없는 방법이다. 게다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사죄와 반성을 강요나 합의의 의제로 제기하여 성공한 사례가 없다. 사죄나 반성은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스스로 하는 것이다. 한일관계 경색의 원인은 아베 정부에 있다. 한국 병탄과 중국 침략이 미개한 국가들을 개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그들과 과거사 문제를 협상이나 설득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포스트 아베를 염두에 두고, 교역, 관광, 문화교류 등 긍정적인 한일관계의 측면을 살려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일 관계는 해결이 아니라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관리해나가야 하는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고, 북한의 위협을 안고 있는 나라이며, 시장민주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그런데 일본이 만들어낸 과거사 문제가 길을 가로 막고 있다. 과거사 문제의 관리 방법은 일본이 가해자의 위치를 인정할 때까지 우리로서는 계속 과거사의 현실을 일본에게 되풀이하여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하리라고 희망을 쉽게 가져서는 안 된다. 일본 특유의 수치의 문화와 전후 처리과정, 그리고 일본의 교육을 합쳐 볼 때 예측 가능한 시기에 “해결”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피해자 일본”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아베 정부와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관리” 방법인가? 그것은 한일간에 양자 무대의 정상회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을 살리기 위해서 다자무대에서는 한일 정상회의를 개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철학과 전략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다자대화 기회에 일본과 양자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에서의 단독 양자 정상회담은 연기한다. 동시에 영토 문제 등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앞장서서 건드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미국에게는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의 “해결”이 아베 정부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입장 때문에 어렵다는 것을 정확히 알리고, 그러나 한일관계 전반을 고려하여 다자 무대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한미일 3각 협력을 안보를 포함하여 적극 추진한다는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국으로서는 중국을 대상으로 삼는 3각 협력에 대하여 유의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 중국 이익이 일본이나 미국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대 중국 무역이 훨씬 크고, 중국 내 조선족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북한 문제의 관리, 또 통일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철학에 입각하여 우리나라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한미일 3각 협력에 안보문제를 포함하여 적극 참여한다. 그러나 3각 협력이 중국을 대상으로 삼는 입장을 취할 경우 우리나라는 그러한 입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일본군 성 착취 사건(위안부 문제)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에 대하여 우리가 소녀상을 설치하여 이를 환기하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초청한 외국 공관 앞에 아무리 미워도 그들이 싫어하는 소녀상을 그대로 그 자리에 계속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또 협정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이론상으로는 해결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그것은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본질적인 함정을 안고 있는 위안부 협정을 처리하고,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을 함께 추진하는 방법이다. 폭발성도 있고, 많은 어려움과 정확한 시점을 찾아야 하는 난제이다. 그러나 둘 다 그대로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데 상당한 공감이 있다. 그리고 연결이 된 두 문제를 함께 처리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철학과 전략을 앞세운 외교에는 많은 외교적 지혜가 요구된다. 지혜는 지피지기(知彼知己),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데서 나온다. 미국과 중국을 이해하고 거기서 철학을 앞세운 전략을 만들어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종종 상대보다 자신의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 국민정서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역사적 피해의식이 우리 외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피해의식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이제는 피해의식과 이에 기반한 국민정서로부터 우리 외교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가 아니라 국민이익이 우리 외교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필자 소개

최영진은 연세대학교에서 “동서양 문명의 비교”를 가르친다. 저자는 2013년 5월까지 대한민국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를 지냈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유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로 지냈다. 그는 또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주 유엔 대표부 대사, 2004년에는 외교통상부 차관, 2002년에는 주 오스트리아 대사, 1998년부터 1999년까지는 유엔본부 평화유지활동 사무차장보, 그리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사무차장을 지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에서 의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였고, 프랑스 파리제1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저자는 동서양 문명을 비교하는 3부작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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