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브리핑 행사
북남북녀 커플, 교회서 결혼하던 날15일 오후 물댄동산교회서 탈북자 커플 결혼식

하늘에서 촉촉한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르던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물댄동산교회에서는 조촐한 결혼식이 열렸다. 교회 입구엔 검정 파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신랑 이찬영(26·가명)군이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신랑 옆에 있어야 할 부모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중국에 체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조요셉 박사가 하객들을 맞았다. 축의금을 접수하는 자리에는 젊은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 결혼 서약을 한 탈북자 커플에게 동료들이 꽃을 선물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하객이라고 해야 젊은 청년 70여명이 고작, 식사라고는 간단한 뷔페가 전부였다. 친척들은 없었다. 그래도 교회엔 꽃 장식에, 레드 카펫도 깔리는 등 제법 결혼식장 분위기가 풍겼다. 가난한 신랑, 신부를 위해 조 박사와 성도들이 십시일반 보탰기에 가능했다.

개식사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기립 박수, 환호성, 플래시 소리가 일제히 터졌다.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 모여 찬송함은 형제 자매 즐거움 거룩하신 주 뜻대로 혼인예식 합니다’ 찬송가가 끝나고 물댄동산교회 최기문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이 어린 부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셔서 이 땅에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어가게 하소서. 당신의 축복 속에 후손이 끊이지 않게 하소서.”

조요셉 박사가 결혼예식 말씀을 전했다. 성경 본문은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되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택했다. “조국을 떠나 남한에 와서 이렇게 부부로 만난 것은 기적이다. 앞으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부부 중심으로 살기 바란다.”

조 박사는 신랑 측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분단이 빚은 비극이기도 하다”며 “앞으로 두 부부를 통해 최소 다섯 명의 자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객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신랑, 신부의 입에서도 미소가 번졌다.

경찰대 조요셉 박사는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5년 전부터 물댄동산교회를 맡고 있다. 70여명의 교인들이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고, 그 중 절반이 탈북자들이다. 이 교회에서의 결혼식은 이번이 6번째. 그 중엔 지금처럼 북남북녀도 있고, 남남북녀도 있다. 조 박사는 이 교회 청년들에겐 ‘아버지’로 통한다.

   
▲ 조요셉 박사가 주례사를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이날 결혼한 신랑 이 군은 영락교회, 신부 이영순(22·가명)양은 물댄동산교회에 다닌다. 둘 다 대학생이다. 두 사람이 평균 연령보다 훨씬 빨리 결혼하게 된 것은 신부의 몸속에 이미 새생명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듣고 결혼식을 치러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조 박사는 '그래도 교회가 거둬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조 박사의 주례사엔 유독 신랑을 향한 조언이 많았다. 조 박사는 “예쁜 신부를 데려가는 만큼 남들보다 더 잘 섬겨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가정을 꾸려가야 한다”고 신랑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자 결혼식장 여기저기선 또 다시 폭소가 터져나왔다.

주례자의 성혼 선언이 끝난 뒤 이 교회 동료들의 축가가 이어졌다. 축가를 부르는 사람이나 축가를 받는 신랑, 신부나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벗어나 남한에 무사히 온 것, 남한에서 신앙을 갖게 된 것, 평생 배필을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말이다.

신부의 학교 친구인 탈북자 양하진(22)씨는 “처음엔 친구의 임신과 결혼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오히려 축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친구이지만 마치 막내 동생을 시집 보내는 것처럼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부와 같은 물댄동산교회 소속인 김해영(34)씨는 “남한에 와서 이렇게 결혼식까지 올리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동적”이라며 “앞으로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잘 극복해 나갈 줄 믿는다”고 밝혔다.

   
▲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물댄동산교회에서 탈북자 커플이 결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결혼식이 끝난 뒤 신랑, 신부가 간 신혼여행지는 서울의 한 호텔. 가난한 교회가 최선을 다해 비용을 마련했지만 제주도나 해외로 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물론 신부의 배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생명도 생각해야 했다. 또 하나의 탈북자 커플이 탄생한 이 날은, 이 교회의 창립 5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성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