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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남북, 다연방제로 가야”고은 시인·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민족화해> 권두대담에서 피력

“내가 모국어에 의해 살았고, 모국어로 내 운명인 시인 생활을 해왔고, 모국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 아닙니까. 그동안 혹사한 이 모국어에 대한 어떤 보은과 감사가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민화협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민족화해> 3·4월호 권두 인터뷰에서 고은 시인이 한 말이다. 시인은 남북 국어학자, 사전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남북이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준비하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직을 2006년부터 맡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 시인 ⓒ민화협(김성헌 객원작가)

우리말인 한글의 중요성에 대해 시인은 “대체로 동북아시아 여러 언어들이 거의 다 전멸했다. 중국어와 중국 대륙의 방언은, 한자라는 거대한 문자 언어의 위력에 삼켜진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남은 게 몽골어 정도다. 우리말도 온갖 수난을 많이 겪으면서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 2월 3일 이탈리아 로마재단이 수여하는 ‘국제시인상’을 수상했다. 그때 수상기념 강연에서 시인은 “나의 시는 첩첩이 고난을 견뎌온 한국어 속에서 태어났고, 한국어는 거의 기적처럼 연면(連綿)이 이어와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 고난의 민족사와 함께 해온 고난의 한글사를 언급했던 것이다.

고은 시인은 “우리 언어는 조선시대에는 천한 글로 핍박받았고, 일제의 강제 합병으로 아예 불법화가 되어버렸다”며 “그러다 1945년 여름이 왔고 특히 나에게는 모어를 찾은 모어 해방의 날이다. 그 당시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한글은 여전히 고난 가운데 있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고려인, 조선족의 언어들이 전부 사라지고 있어요. 자신의 정체성은 알지만 고려어, 조선어가 필요없게 되는 것이죠. 연변이 지금 공동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언어가 자꾸 공동화됩니다. 앞으로 연변대학의 조선문학과 등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위기죠.”

<겨레말큰사전>은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국어대사전’을 제안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후 2005년 2월 남북공동편찬위원회 결성으로 이어졌고, 2007년 4월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법 제정으로 정부 지원으로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9년에는 남북이 각자 사전 집필에 들어갔지만 2010년 남북 관계 단절로 거의 중단되다시피 해왔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원래 2014년 완료 목표였다가 남북관계 악화로 작업이 더뎌져 2019년 4월 발행을 목표로 변경했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남북 공동이 불가능하면 남측 만이라도 웹상으로 먼저 사전을 편찬하겠다는 게 고은 시인의 설명이다.

<겨레말큰사전>의 의미에 대해 시인은 “오늘은 분단이고, 어제도 분단이었지만 우리는 분명 미래가 있다. 그때는 분단이 정말 하나의 아픈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며 “그럴 때 문화유산으로서 표상인 우리 언어를 조금이라도 왜곡되지 않게 바르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사전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남북 공동의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대해 “남북 언어학자들이 만나서 토론하고 합의하는 게 쉽지 않다”며 “두음법칙 등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어느 편이 맞다 틀리다보다는 각자 체제의 특성상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이 다투고 서로 양보해서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봤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언어만의 통일이 아닌 좀 더 근원적이고도 넓은 의미의 통일 구상을 내비치기도 했다.

시인은 “제가 말하는 통일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재통일이 아닌 새로운 통일이다. 역사상 한번도 우리가 완성해보지 못한 새로운 통일이다”며 “통일은 전혀 없는 미래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남북 상황에서의 통일은 안된다고도 지적했다. 시인은 “그동안 남북은 서로 상대방을 핑계 대며, 자신들의 체제 강화를 합리화하고 권력을 유지했다”며 “이런 낮은 수준의 정치 행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시인은 경쟁, 적대관계가 아닌 남북 모두에 정화작용을 하는 통일을 제안하며 “이런 것을 전부 바꾸려면 커다란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며 “천지와 자연이 호응해야 한다.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통일방안으로 시인은 ‘다연방제’를 제시했다. 작은 나라 스위스가 여러 지방정부로 구성된 연방국가이듯이 우리도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이 아닌 다연방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지금 있는 도를 더 개편해서 한 스무 개쯤 만들어 그 지역의 지사가 자체 선거를 통해 수상이 되는 공화국, 거기서 윤번제로 외교와 국방을 담당할 대통령을 추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하면 강원도 수상도 대통령을 할 수 있고, 제주도 수상도 대통령을 할 수 있어서, 소외지역이 없어지게 된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시인은 또 “지금 스위스가 하고 있듯이 각 공화국(지방정부)이 각자의 특화산업을 만들어 무역을 하면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다연방제를 해야 국론을 만들 수 있다. 안 그러면 국론은 다 분열된다”고 강조했다. 다연방제 안에서 각각의 다양성이 모여 그것을 통합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것은 제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과정이라고 설명한 고은 시인은 “통일은 점이 아니라 선”이라며 “적어도 100년 이상이라는 시간은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70년을 헤아리고 시작하든지, 지금부터 다시 100년을 헤아리든지 그건 모르겠지만 최소 100년 동안은 통일 노래를 불러야 통일의 씨가 뿌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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