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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을 잊었을지라도『잊지 않았다』, 케네스 배 지음, 두란노(2016) 북리뷰

책 소개에 앞서 필자에게 이 책은 남다른 책이라 말하고 싶다. 2012년 12월 12일, 필자는 국민일보 1면 기사로 케네스 배의 억류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한국계 미국인 北에 40일째 억류’가 제목이었다.

다음날 미국 국무부는 그의 억류 사실을 확인해줬고 CNN과 BBC 등 주요 언론은 배씨 억류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후 며칠이 안 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공식적으로 케네스 배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고 시인했다.

2012년 11월 3일, 배씨는 북한 나진으로 입국하다 컴퓨터 외장하드 문제로 검거됐다. 당시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강행의지를 보이면서 국제사회가 발사계획 철회와 함께 강도 높은 대북 제재 조치를 검토 중인 상황이었다. 김정은 체제 이후 첫 미국인 억류 사건이어서 세계인의 이목도 집중됐다.

735일. 그가 북한에 억류됐던 시간이다. 필자는 배씨가 억류된 지 5개월 무렵, 미국에 살고 있던 어머니 손명희씨에게 이메일을 보내 안부를 물었던 일이 있다. 그때 어머니의 답변은 짧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 같아요. 기도 부탁합니다.” 어머니는 이후 19개월을 그렇게 아들을 기다렸다.

케네스 배의 <잊지 않았다> 책 표지

사실 배씨 억류 사실을 보도했을 때 대북 소식통에게 들었던 얘기는 ‘한 달 후면 나온다’는 말이었다. 배씨가 관광사업 차 북한을 자주 오간 데다 그 사업으로 북한의 ‘외화벌이’에도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석방되지 못했다. 필자의 보도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면서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배씨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순간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다. 억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필자 역시 괴로웠다는 것을 이제서야 말하고 싶다. 다행히(?) 배씨는 필자와 회고록과 관련돼 인터뷰를 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제서야 필자의 4년 체증이 내려가는 듯 했다.

확실히 그는 진짜 선교사였다. 방한 기간 중 서울 명성교회 통일기도회에 참석했던 그는 2년간 자신을 억류했던 땅을 위해 기도하자고 외쳤다. 북한 체제와 주민은 따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북한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았다(not forgotten)”고 외쳤다. 기독교 복음에 입각해서는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북한 억류의 혹독한 경험자로서 그의 말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피해자’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실로 북한 주민을 긍휼히 여겼다. 어쩔 수 없는 선교사였다.

그의 책에는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를 주입하려 했고 ‘미국에 속은’ 생각을 교정하려 했지만 불가능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히려 그가 북한에서도 하나님을 전한 이야기가 나온다. 감옥의 간수와 병원 직원들에게 담대히 하나님을 소개했다. 책에서는 고초를 겪었지만 그 땅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명자로서의 담담한 고백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는 요즘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강연자로 서고 있다. 그때마다 북한을 잊지 말자고 설파한다.

책은 그가 중국 단둥에서의 선교 활동을 하는 장면부터 클로즈업되며 시작한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북한 주민들을 만나 기도제목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오. 그들도 예수를 알아야 하지 않습네까. 예수를 아는데 뭐가 더 필요합네까. 저는 살 소망이 없다가 소망이 생겼수다. 예수가 소망입네다.”

한번은 배를 타고 북한 땅 기슭까지 접근한다. 북한군 병사와 조우한다. 병사는 묻는다. “혹시 돈 좀 가지고 왔나. 담배는 있는가.” 배 선교사는 뱃머리에서 생각했다. ‘돈도 담배도 아니고 예수가 필요합니다.’ 그는 배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한다. ‘주님, 북한과 외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감당케 하소서.’

마침내 2010년, 그는 북한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처음으로 나진 선봉지역에 서방인에게 관광의 문이 열렸다. 그러면서 다른 형식의 관광을 제안했다. 북한의 학교에서 영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미국에 돌아가 미국교회에 호소했다. “기드온의 300명처럼 기도하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작정해서 기도하자. 그래서 영적 장벽이 무너지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그렇게 18번을 북한에 왕래했다. 그런데 18번째에 억류됐다. 실수로 가지고 들어간 외장하드가 이유였다. 북한에 대한 동영상 때문에 문제가 됐다. 이 외에도 6년간 모은 정보와 사진, 선교편지 등이 그대로 노출됐다. 북한 당국은 그들은 여행사 사장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증거물을 그대로 갖다바친 격이었다.

책은 400쪽이 안 되는 371쪽 분량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술술 넘어간다. 그리고 재미있다. 고생이 잔뜩 담긴 억류기에 ‘재밌다’는 표현이 좀 어울리진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고, 북한 사람들의 말과 반응이 그렇다. 생생한 저자의 표현도 한몫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독자들이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책은 배씨 석방 이후 2년 후에나 출간됐는데 어떻게 북한에서 경험한 상황과 발언이 그토록 구체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의문은 그의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처음 한 달 넘게 조사만 받으면서 내 인생을 기억하며 쓰고 또 썼다. 그들은 없던 나의 기억까지 모조리 끄집어내는 기술자였다. 감옥에 있으면서 일기를 썼다. 지금의 책 분량 3배가 넘는다. 하지만 갖고 나오지 못했다. 미국에서 이를 기억하며 책을 썼고 최종적으로 편집해 지금의 책이 됐다.”

‘재미있던’ 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건강 문제가 있던 배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이상하게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한다. 순간 왼손이 따뜻해졌고 왼팔이 따뜻해지면서 성령님이 손을 잡고 계시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그의 발치에 서있다는 음성을 들었다 한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했다고 했다. 이후 말할 수 없는 평강이 그를 감쌌고, 그의 선교활동과 관련된 어느 누구도 해악을 받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한다.

조사관이 “누가 당신 뒤에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선교편지나 기도편지 서두에 등장하는 인사말,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라는 구절을 보고 북한 조사관은 “주씨 성을 가진 자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한다.

교도소는 그의 기도실이었다. 많은 기도를 드렸고 수없이 성경을 읽었다. 환상도 봤다. 김일성광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었다 한다. 그후 들렸던 음성은 “내가 잊지 않았다”였다. 놀랍고 신비한 일은 연이어졌다. 평소 먹고 싶었던 평양냉면과 김치볶음밥이 계속 식사로 배급됐다 한다. 그러기를 40번 이상 반복됐다 한다. 감옥 속 ‘만나’가 따로 없다.

15년 노동교화형 선고받은 그는 중노동을 했다. 그가 국가 전복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고 하니 처음엔 경계가 매우 심했다 한다. 노동은 주로 석탄을 푸는 일과 도로 정비, 돌 나르기 등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았다.

그는 ‘기도실’에서 열심히 기도했다. 처음엔 집에 보내 달라 기도했다. 하지만 억류 1년이 넘어가자 기도가 끊기기도 했다. 나중엔 기도가 변했다. 집에 갈 권리를 내려놓고 나를 사용해달라는 기도로 변했다. 집에 보내달라는 기도에서 여기서 나를 사용해달라는 기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자 북한 사람들이 억압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고 그들이 마음 문도 열렸다.

그들은 이런 말도 했다. “하나님 믿으면 생기는 게 있습니까?” “우리 지도자는 자력갱생하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뭘 주신다니 부럽습니다.” “당신은 죄수고 우리는 간수인데 왜 당신이 더 기쁜가. 어디서 희망이 나옵니까.” 이런 말도 했다.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했는데 왜 당신은 아직까지 감옥에 있소?”

배씨의 결론은 통일을 위해 기도하자는 것이다. 그는 “나는 한 게 없다. 그들 가운데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풀려난 것처럼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만날 것이며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신상목 / 국민일보 종교부 기자

신상목  shintongh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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