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국내
美 탈북자들 "문제 생기면 LA기윤실로 가라"뿌리깊은 LA기윤실의 '민족사랑' 중심에 유용석 장로가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기윤실로 가라.”

미국 LA의 탈북자 사회에서 떠돌던 말이다. 아파도 치료받기 힘들고, 일을 할 수 없어 당장 굶어야 하는 상황에도 LA기윤실에 가면 뭔가 해결책이 나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LA기윤실에서 2008년을 전후로 재미 탈북자 지원운동을 전개하는 등 대대적인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미국 LA기윤실 사무실(3130 Wilshire Blvd.)에서 만난 유용석 장로(실무책임자)는 “당장 힘든 사람들이니 생활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LA기윤실의 동족사랑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깊고 컸다. 지난 13일 오후 3시(미국 LA기준) LA기윤실 사무실을 찾았다.


   
▲ 1925년생인 유 장로는 LA기윤실의 산파역할을 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 1925년생이시다. 건강을 유지하시는 비결이 궁금하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많이 걷기도 하고, 비교적 음식을 적게 먹는 편이다.

- 해방직후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 궁금하다. 그때 나이가 20세의 청년이셨다.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었다. 가장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해방 후에 이북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을 했다. 당시 교원들이 많이 부족했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도 이남에서 학교 선생을 했다. 그런데 그때는 학생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서 집에 데려와서 함께 살기도 하였다. 집사람이 유아교육을 전공해서 이북에 있을 때에도 탁아소 선생이었다. 월급도 안 가져다주었는데 잘 살았다. 요즘 집사람이 약해져서 양로원에 있는데, 그때 고생시켜서 이리 된 게 아닌가, 미안하다.

- 장로님께서 기억하시는 해방직후의 한반도 분위기는 어땠나?
해방직후에는 분명, 통일 하려는 염원들이 있었다. 공산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 남한의 남로당들, 중간에 있던 여운형 파 등이 통일을 위해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북한은 일단 스탈린의 지시를 받고 있던 때였기에 통일의 의지가 없었다. 47년, 48년도에 사관학교 교관으로 있던 사람을 잘 안다. 김일성과 같이 나온 장교였다. 전쟁을 일으킨 것도 김일성의 의지가 아니라 스탈린의 의지였다고 하더라.

- 통일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당시 소련의 의지였다면, 지금은 중국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통일에 대한 열망이 없으니 당장에 무슨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을 보면 참, 할 말이 없다.

- LA기윤실에서는 오래전부터 북한의 어린이들을 도와왔다. 상당한 양이라고 알고 있다.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
1996년부터 북한의 어린이를 돕기 위한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빵공장을 직접 짓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1997년 말에 함경북도 회령시에 빵공장을 설립해서 운영했다. 2005년까지는 월 40~60톤의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약 1만 5천명의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공급했다. 그때가 많이 굶어죽는다는 때라 아이들의 학교 출석률이 50%도 안 되었을 때인데, 빵을 공급하고 나서는 출석률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98~99년에는 양로원에도 식량을 공급했다.
그때 조선족 직원이 말하기를, 아이들에게 점심 때 빵을 주면 먹지 않고 있다가 부모님께 가져다준다고 하더라. 아마 사실일 것이다. 2005년 이후에는 무산에 공장을 지어 약 7,000명의 어린이들에게 빵을 주고 있다.
99년부터 2007년까지는 ‘기적의 젖염소 보내기 운동’도 했다. 마리 당 150불 정도였는데, 총 2,200마리정도 보낸 것 같다. 북한에 처음으로 보낸 사례다. 그때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김준곤 목사님께 같이 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시더라.(웃음) 나중에 따로 시작하셨다.


- 많은 양이다. 자원은 어떻게 생기나?
전국 교회들, 기윤실 회원들이 모금해주는 돈이다. 한달에 1만 2천불정도가 모인다. 고급 밀가루 20톤을 만들 수 있는 돈이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지만, 모금해주는 사람들은 꾸준히 해주고 있다.

-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나?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한 지원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5년 3월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변에 갔을 때 들은 소식은 북한에 큰 수해가 나서 풀을 뜯어 먹는다는 비상한 이야기였다. 당장 LA에 돌아와서 동포를 돕자는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가톨릭계통, 불교계통, 기독교계통, 모두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느낌이었다. 의견일치를 못보고 결국 흐지부지 되었다. 이런 사람들과 일해야 하나, 좌절도 했다. 그래서 LA기윤실이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탈북자들 만나니, 그분들도 이렇게 돕는 것을 싫어하더라. 그러나 우리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 지배층이 나쁜 것이지,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나? 누군들 거기서 태어났으면 별 수 있나? 조건 같은 것 따지지 않고 도우려고 했다. 거기에 아주 기쁘게 동의해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 "북한 지배층이 나쁜 것이지,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나? 누군들 거기서 태어났으면 별 수 있나? 조건 같은 것 따지지 않고 도우려고 했다. 거기에 아주 기쁘게 동의해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업무중인 유용석 장로.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 탈북자들은 어떻게 돕게 된 것인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중국 연길에 ‘천사의 집’이라고 있었다. 어린애들을 수용하다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하거나, 한국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당시 미국 돈으로 1,000불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다. 공개적으로 그렇게 했으니까. 그때 최○○ 선교사님이 미국 시민권이 있었는데 붙잡혔다. 2002년 4월 중국 공안이 탈북자들을 검거할 때 붙잡힌 것이다. 지금은 뉴저지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때 모금운동도 활발했다. 그때 있던 아이들, 아마 거의 다 한국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2008년에 재미탈북자지원회에서 찾아왔다. 여기 와 있는 탈북자들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2004년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이후, 미국에 오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대부분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한국이 아닌 제3국에서 온 탈북자들이라도 난민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43개 주의 교회에 편지를 썼다. 국회에 청원서도 냈다. 미국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시위도 하고, 기윤실에서 주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별로 해준 것은 없다. 당장 힘든 사람들이니까 도움을 주고 있지만, 지금은 자금도 다 고갈이 되어 많이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 그 외에도 조선족, 연해주 고려인들을 돕고 있다고 알고 있다.
중국 조선족 학생 장학사업,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영농사업 지원 등이다. 조선족들, 고려인들 살아가기가 많이 어렵다. 특별히 어린 아이들 교육이 문제다. 잘 아는 목사님이 그들을 돕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재원을 데고 있다. 특별히 고려인들이 정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농사라고 생각해서, 그들의 영농사업을 돕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LA기윤실 박상진 간사가 설명을 보탰다.
“북한 정부에서 장로님과 LA기윤실에 감사장을 보내기도 하고, 훈장 비슷한 것 준다고 오라고 했는데 한 번도 안 가셨어요.”
15년 넘는 사역에 북한 정부도 감동한 것일까? 유 장로는 “그런 것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퍼주는’ 것도 아니다. 유 장로는 현재 북한에 “북한 돕고 있는 미국 동포들 세 사람이 식량이 잘 전달되는지 직접 가서 본다고 하는데 허락을 안 해주면 그만 돕고 아프리카에 보낼 테니까 답장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놓은 상태다.

   
▲ LA기윤실 유용석 장로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 박 간사는 “유 장로님이 일구어 온 이런 운동과 정신을 잘 이어받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다음 세대의 과제”라고 말했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이런 그의 꼿꼿함과 꼼꼼함을 믿고 많은 이들이 ‘동족사랑 나눔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박 간사는 “유 장로님이 일구어 온 이런 운동과 정신을 잘 이어받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다음 세대의 과제”라고 말했다.
* LA기윤실의 사역과 역사는 홈페이지(http://lacem.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미국LA=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LA=이범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김솔 2012-07-24 14:34:54

    6.25전쟁은 스탈린의 의지가 아니라, 김일성의 설득과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입니다.
    이미 공개된 소련 비밀 문서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작은 것부터 사실그대로 앓지 않고 나가다보면,
    결국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쿨한 대북지원은 마치 이해관계를 떠난 사랑의 선행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쌀이 아닌 자유가 필요합니다!"라고..   삭제

    • 서재진 2012-06-29 07:45:34

      사랑하고 존경하는 장로님!!! 건강하세요!!!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