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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망명자 찰스 김, 우여곡절 ‘사장님’ 되기까지[미국취재.02] 미국 정착 10년 째 "포기하지 않으니까 기회가 왔다"
  • 미국LA=이범진 기자
  • 승인 2012.06.1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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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찰스 김씨는 2002년 11월 초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사람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지내 본 그는 한국에서 8년여를 지내며 잘 적응하는 듯 했다. 구조조정 전까지 이랜드에서 성실히 일했고, 후에도 다양한 비즈니스를 벌이며 삶을 꾸렸다. 그런 그가 미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 12일 오후 2시(미국 기준),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미국 망명을 결정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분위기였습니다. 북한이 싫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햇볕정책이다 뭐다 하면서 탈북자들이 찬밥신세가 되었죠. 안 그래도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습니다. 간첩들로부터의 위협도 있었고요. 경찰이 보호해준다고는 했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미국 망명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찰스 김씨 부부가 미국땅을 밟은 것은 탈북자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그의 망명 사례를 보고 미국행을 결심한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정신없었지요. 경제적인 거라든가, 편안한 것은 오히려 한국보다 못하다고 느꼈으니까요. 그건 지금도 그래요. 아무리 잘난 척하는 사람도 미국에 오면 언어 때문에 애를 먹어요. 현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다 시간당 돈이고..무료로 서비스해주는 곳이 많지 않잖아요?”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한 만큼, 선진화된 자본주의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식료업에 종사했던 경험을 살려 식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스시집과 한식집에서 일을 했다. 찰스 김의 아내 제니 김씨는 한국에서 요리사 자격증까지 땄던 숙련자였다. 그렇게 8년을 모아 식당을 오픈할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그는 “미국에서 식당을 차리는 것이 한국보다 수십 배는 힘들더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 식당을 운영하는 두 부부. 돈 몇푼만 쥐어주면 살인도 하는 곳이 미국이라며, 얼굴을 비공개로 할 것을 요청했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절차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내부 공사를 해야 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화장실을 넓혀야 했다. 모든 인테리어를 규정에 맞추기 위해서 공사를 진행한 것이 9개월이었다. 문제는 9개월의 공사 기간 동안 임대료가 고스란히 빠져나간 거였다. 임대료를 내기 위해서 집도 비웠다. 쌀도 바닥을 보였다.

9개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단다. 찰스 김씨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마다 그만두라고 했다. 들어간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중단하라고 했다”면서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업계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포기하라” 하였다.

-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나요?
(제니 김) 한국에 있었을 때를 포함하면, 2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했어요. 새벽예배에 다니면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소망이었어요. 가게를 시작하게 하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계약하기까지의 과정도 하나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이겨낼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 이겨내야지요.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식당을 오픈하는 날이 왔다. 9개월의 시간만에 드디어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부부는 오픈을 하루 앞두고 또 다시 근심에 휩싸였다. 공사하는 데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부어, 당장 그릇을 살 돈도 없었고, 음식 재료도 턱없이 부족하였다. 제니 김씨는 그때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였다고 말한다.
“1불도 없었어요. 그런데 꿈에 예전에 알던 언니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전화해 1000불만 빌려달라고 했죠. 그 언니가 아는 사람이 렌트비 내려고 모아둔 돈을 빌려서 마련해줬어요. 거기다가 아는 분의 오빠가 식품 재료를 공급하는 데 일단 주문하고 후불로 계산하라는 거예요. 하나님밖에 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오픈 첫날. 결과는 대박이었다. 2000불(1인분에 약 8불)을 팔았다. 빚을 갚고 재료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대로 성공의 길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려 하루에 50불, 60불도 겨우 팔았다. 또다시 기가 죽었다. 어쩔 수 없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래서인지 음식 방송에 나가 인터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손님이 밀려들었다. 3000불 판매 기록을 찍은 것도 그즈음이다. 미국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다시 소강상태이지만 찰스 김씨는 “식당이 오픈하기까지 기적이 많이 일어났어요. 잘 될 겁니다”라고 확신했다.

-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한반도를 바라보는 마음이 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북한은 솔직히 말해서 현대판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고난을 받는 사람들이지요. 북한이 빠른 시일 안에 개혁, 개방을 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끌고 나갈 수 있는 게 없어요. 지구상에 북한처럼 구닥다리 시대를 지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빨리 통일이 되어서 헤어진 부모님도 만나고, 가족들도 보고 싶어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폭발이 올 것 같습니다. 남한의 발전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통일이 되어도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많아요. 일단 환경이 파괴된 것을 복구해야 하고요. 그동안 폐쇄된 것들 일으켜 세우려면 쉽지 않을 겁니다.

- 미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탈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미국은 한국보다 더 힘듭니다. 외로운 곳이죠. 우울증 걸리기도 쉽고요. 그래도 한인타운에 있기 때문에 견뎠어요.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의 힘으로 견뎠죠. 지금은 요령이 생겨서 편하게 살고 있지만, 적응하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러나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는 꼭 온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도, 그런 정신으로 살면 됩니다.


   
▲ 식당 위생 상태를 나타내는 검열결과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찰스 김, 제니 김 부부는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밝혔다. 자신들처럼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단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북한에 교회를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단다. 청년시절 북한에서 폐쇄시킨 건물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건물이 교회였다는 것이다. 그게 마음에 계속 걸린단다. 자기 손으로 꼭 그 교회를 다시 열어야겠단다.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미국LA=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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