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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현숙 선교사가 북한선교를 꿈꾸는 이유북한의 여동생 인민배우 최삼숙과의 만남, 파리 '예수님의 마을'에서 탈북자와의 만남이 계기

“폐품을 써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선교 공동체 ‘예수님의 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최현숙(75) 선교사의 말이다. 최근 방한한 최 선교사를 13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년 동안 유럽 선교 사역을 해왔던 최 선교사는 이제 북한 선교로 방향을 바꿨다. 올 3월 탈북 남녀 2명이 ‘예수님의 마을’을 찾은 게 방향 전환의 계기 중 하나였다.

   
▲ 13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현숙 선교사. 파리의 '예수님의 마을'을 수억원을 들여 재건축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북한선교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 소녀처럼 얼굴에 행복이 가득 번졌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처음엔 사람들을 쏘아보는 눈빛이 꼭 독사 같았어요. 말끝마다 욕을 하거나 거친 말을 썼죠.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얼굴도 평안해지고 말도 얼마나 온순해졌는지 몰라요.”

알고보니 남자는 벨기에가 살기 좋다는 지인들의 얘기를 듣고 한국에서 고기잡이로 번 수천만 원을 들고 왔다가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대사관의 요청으로 최 선교사가 그들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남자는 지난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고, 여자도 올 여름에 세례 받을 예정이다. 세례 후엔 최 선교사가 직접 두 사람의 결혼 예식도 치러주기로 했다.

이들을 변화시킨 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었다. 최 선교사는 씨름하다시피하며 두 사람에게 매일 성경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사랑, 용서, 화해, 평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온 목사 부부 등 공동체 식구들이 따뜻한 사랑으로 이들을 돌봤다. 상처로 굳게 닫혔던 두 사람의 마음도 어느새 조금씩 열려갔던 것이다.

“두 사람의 꿈은 북한 선교사예요. 자신의 부모들이 북한에 살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들을 보며 배우는 게 많아요. 북한 선교의 열정이 더 불지펴지기도 했구요.”

1990년대 초, 당시 무역업을 하던 그녀는 일 때문에 파리에 왔다가 ‘200년 전 병인양요 때 흘린 프랑스인들의 핏값을 갚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프랑스 선교를 시작했다. 그 전엔 1980년대 중반부터 서울 ‘믿음의 집’에서 북한선교후원회장을 맡아 매주 월요일 북한선교를 위한 중보기도모임을 이끌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의 문은 꽁꽁 닫힌 상태였다. 하지만 1989년 문익환 목사, 임수경씨의 방북으로 북한과 통일이 남한 사회의 최대 이슈가 됐다. 그때 ‘믿음의 집’ 전가화 목사는 그녀에게 “우리가 기도하니까 북한 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최 선교사의 마음속엔 ‘왜 북한선교를 해야 하는 거지?’라는 회의심이 가시질 않았다.

4년 전이었다. 기도 중에 ‘북한 땅을 밟으며 기도하라’는 음성이 마음속으로부터 들려왔다. 주체할 수 없었다. 당장 프랑스에서 한국의 114로 전화를 걸어 북한 갈 수 있는 관광사를 찾았다. 금강산 관광은 총기 사고로 막힌 상태였고, 개성 관광은 열려 있었다. 한 달 후 가는 걸로 해서 예약을 해놨는데 개성 가기 며칠 전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동생이 찾는다”는 거였다. 그 동생의 신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북한의 인민배우 최삼숙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요셉처럼 어머니를 북한에 먼저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북한 선교에 대한 꿈도 되살아났어요.” 최 선교사의 어머니 김봉례 여사는 동경 의전을 나와 YWCA 활동을 했던 신여성이었다. 신앙생활도 활발하게 했었다. 하지만 6.25 때 남편과 함께 납북됐다. 그 어머니가 북한에서 낳은 자식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이 최 선교사에겐 꿈만 같았다. 동생과의 만남도 만남이지만 ‘북한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뜨거운 마음이 샘솟았다.

개성 관광을 갈 때는 성경책을 잔뜩 싸들고 갔지만 출입국 관리소에다가 다 내려놓고 들어가야 했다. 대신 인터넷에서 찾은 동생 최삼숙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들고갔다. 북한 관리가 물었다. “이건 뭡네까?” “동생 최삼숙을 찾습니다” 그랬더니 “왜 이제야 왔습네까. 우리 인민들은 다 압네다. 언니가 남한에 살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이제야 왔습네까?”라며 안타까운 듯 연신 물었다. 북한 관리들이 죄다 모여들었다. 동생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평양에 가면 금방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 해 최 선교사는 남한 목회자들과 함께 평양 봉수교회 방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전에 ‘방문이 취소됐다’는 통보가 왔다. 남북 관계가 악화된 탓이다.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을’에 기도하러 온 사람에게 사연을 얘기했더니 북한 참사관을 연결해줬다. 그 해, 최 선교사는 VIP 자격으로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이후 해마다 북한의 초청으로 방문했다.

물론 자신의 동생 인민배우 최삼숙도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 선교사는 눈치 보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영면하는 하나님(김일성)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해. 살아계신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하면 북한의 가뭄, 홍수, 식량난도 해결해 주실 거야.” 동생이 자꾸 눈치를 줬지만 최 선교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2009년 북한 방문 당시 동생 최삼숙 집을 방문했을 때. 시계방향 왼쪽 세 번째가 최 선교사, 네번째가 동생 최삼숙. ⓒ최현숙 선교사의 책 '예수님의 마을' 제공

성경책도 가지고 들어갔다. 그 중에는 “김정일 위원장께 꼭 전해달라”며 북한 관리에게 전달한 경우도 있었다. “난 북한에 갈 때마다 마음이 항상 단단해져요. 마치 에스겔 3장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이마를 금강석같이 단단하게 하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저는 북한에 갈 때마다 대놓고 ‘북한 선교 하러 왔어요’라고 말합니다. 그 담대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평양을 벗어난 방문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최 선교사는 자꾸 요청했다. 결국 지난해 황해도 황주의 고아원을 겨우 방문할 수 있었다.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게 많다. 그렇게 굳게 닫혀 있고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북한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는 그대로 갈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자꾸 무너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은은하게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증거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어쨌든 북한 땅에 성령께서 서서히 역사하고 계시다는 걸 느낍니다.”

8년 전에 지은 ‘예수님의 마을’은 지금 재건축을 하고 있다. 재정 형편 때문에 저렴하게 짓다보니 장애인시설이나 소방시설 등이 미비하다는 관청의 지적 때문이다. 지금도 수억 원이 필요하다. 이번 방한도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달 초엔 ‘예수님의 마을’에서 유럽선교컨퍼런스도 연다. 컨퍼런스도 끝나고 ‘예수님의 마을’ 재건축도 완공되면 본격적인 북한선교 사역을 펼치겠다는 게 최 선교사의 각오다.

“저는 이제 하나님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 뜻(북한선교)을 이루어드리고 싶어요. 북한에 들어가서 고아원의 어린아이들과 같이 굶고 같이 웃고 울면서 살고 싶어요.”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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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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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5-30 22:22:05

    아차 최삼숙씨의 딸 지난 4월 이곳 대한민국으로 입국해 현재 북한이탈주민센터 감옥에 갇혀 조사받는중임~!!!! 참고로 그녀의 이름은 리은경이고 닝보 류경식당 종업원으로 일했음~!!!!   삭제

    • 박혜연 2015-01-27 11:27:51

      더군다나 작은아버지는 남인수선생님이셨으니...!   삭제

      • 박혜연 2014-11-06 00:23:56

        여동생이자 평양영화방송음악단 가수이신 최삼숙씨가 최현숙 선교사님의 여동생이셨다니...! 참 안타까운일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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