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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원로들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

다음은 8일 오전 10시 정동에 있는 프란치스코 회관 221호실에서 열린 <제 2차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역사학계 원로 기자회견>에서 행한 모두발언이다.

 

우리는 지난 8월 22일 제 1차 역사학계 원로시국선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당시 이미 드러나고 있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당면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새누리-박근혜 정권은 우리들의 권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민주 반통일적인 행태를 강화시켜 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온통 폐정의 위기에 몰리자 시민들은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몇 주 동안 연속 수백만의 촛불을 들고 나와 박근혜 즉각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 정권안보에 집착하고 있다.

이 정권은 아직도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을 고집하고,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로 통일전망을 어둡게 하며, 국민적 동의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맺어 군사주권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에 역사학계 원로들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걱정하면서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의 우려는 나라의 전반적인 위기상황에 걸쳐 있지만, 이 기자회견에는 국정교과서 폐기를 중점적으로 요청하려고 한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 그것이 기획될 때부터 우리는 계속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해 왔다. 국정역사교과서는 은퇴교수뿐만 아니라 대학 현직에 있는 역사학 교수들과 중고등학교의 역사교사들까지 대부분 반대하며, 각 시도 교육위원회에서도 그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학부형들의 67% 이상도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가의 특정 역사 이데올로기를 피교육자들에게 주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정권이 그렇게도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주의 제도’와도 배치된다. 역사교육에서 단 하나의 역사인식과 역사해석을 교육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나 일본의 군국주의, 아직도 사상 통제를 강요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역사교육은 창의성과 다양성 있는 역사 교육을 불가능하게 한다. 역사 교육에서 다양성이 제거된다면 피교육자들의 역사교육을 통한 창의성과 상상력 배양이 배제된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말살된다는 것은, 사람만이 유일한 자원이라 할 우리나라의 앞날에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교과서제도는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진화하여 역사교육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정부가 시도하는 국정화는 이러한 교과서 발전 추세 및 역사교육에 역행한다. 교과서 발행에서 국정제, 검인정제, 그리고 자유발행제는 그것을 시행하는 나라의 국격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현재 국정제 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 데다가 그런 나라일수록 전체주의 국가로서 반민주주의 국가들이다. 검인정제에서 자유발행제로 진전해 가지는 못할망정 국정제로 퇴보하는 것은 나라의 국격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국격을 추락시키려고 의도하지 않을 바에야 이런 어리석은 선택은 강요해서는 안된다.

1974년 유신 정권이 국정제를 강요한 이래, 2002년부터 한국 근현대사를 검인정제로 발행하고 2010년부터 역사과 교과서를 검인정제로 전환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열매로 주어진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상징하는 국정제로 환원할 것이 아니라 더 발전된 민주주의의 소산인 자유발행제로 전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족이긴 하지만, 일본 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에 대해 더 이상 한국이 비판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한국의 교과서 국정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국정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이 어떻게 검인정제를 시행하는 일본의 교과서를 비판하려고 하느냐는 일본인 학자의 핀잔이 지금도 내 귀에 울린다.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명명하여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현장실험본을 발표하면서 교육부장관은 그 교과서를 몇 번이고 <올바른 교과서>라고 했다. 진솔한 평가가 있은 뒤에야 붙여질 수 있는 그 이름이,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이 교과서에 어찌 붙여질 수 있는가. 그 오만함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교육부의 이같은 조치로 ‘올바른’이라는 말의 뜻이 왜곡될까 두렵다. 역사학 연구자들과 국민의 권고에는 귀를 막고 정부 스스로 자화자찬을 용훼하는 국정 교과서야말로 국민의 이름으로 폐기시켜야 한다.

국정제 자체에 반대하고 있는 우리는 11월 28일 공개된 현장실험본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세력을 독립유공자로 둔갑할 수도 있는 건국절 문제를 비롯하여 독재를 미화하면서 나라 발전의 근본인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며, 박정희 이승만에 대한 우상화를 강화하는가 하면 노동·인권운동에 대한 탄압을 축소하는 등 우편향적인 서술이 뚜렷하다. 정부가 정말 역사교과서를 더 잘 만들고자 한다면 이번 국정 교과서에 쏟아부은 44억원의 혈세를 검인정 혹은 자유발행제 교과서 편찬에 쏟아부어 주기를 기대한다.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가적 위기에 유념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또 하나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하면서 이 기자회견에 임하고자 한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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