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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올레길을 걸으며

오늘(3일) 열일곱번 째로 시행한 ‘한반도평화올레’에 참석했다. 이 올레는 한반도평화포럼이 2013년 6월부터 시작한 휴전선 순례행사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를 모아 분단의 벽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평화와 통일의 날을 앞당겨보려는 생각”에서 “휴전선 서쪽 끝 임진강에서 동쪽 끝 금강산까지 이어서 걸으려고” 한 것이다. 주최측의 박진원 처장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인용, “우공과 같은 우직함으로 걷고 또 걷다보면 마침내 하느님도 마음을 움직여 저 흉측한 휴전선을 걷어내 가시지 않을까 하는 순박한 생각에서 이 일의 별칭을 우공이산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민족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레 동안 성 주위를 걸었다는 구약성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비록 지금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꾸준히 걷다 보면 휴전선도 내 집같이 넘나드는 때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설명 속에 배어 있다.

두 달에 한 번, 총 스물네 번을 계획하고 있는 이 올레는 오늘 열일곱 번째로 강원도 화천군 한묵령에서 평화의 댐까지 11㎞ 코스를 걷는 것이었다. 오전 8시 미니버스에 몸담은 열다섯 분이 2호선 지하철 잠실나루역에서 출발했다. 평소보다 적은 수였지만, 통일운동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듯이, 초등학교 2학년 소년에서부터 80노인이 함께 했다. 출발에 앞서 박 처장은 앞으로 남은 순례 예정지 <피의 능선 전적비> <제4땅굴> <을지 전망대> <DMZ 박물관> <통일전망대> <금강산 전망대>를 빠뜨리지 않는 분에게는 마지막 24번째 고성에서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희망의 코스를 배려하겠다고 했다. 우공이산을 믿는 통일꾼들에게는 이 소망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 답사는 화천호(댐)부터 시작하여 ‘평화의 댐’ 답사까지였다. 화천호는 대붕호(大鵬湖)로도 알려져 있는데 호수 모양이 큰새(대붕) 형상이어서 그렇단다. 한국 전쟁 중 철원 화천 양구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중공군 2∼3만 여명이 이곳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이승만은 이곳을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했단다. ‘파로’란 말은 ‘오랑캐를 격파했다’는 뜻이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갑자기 어릴 때 불렀던 군가에 ‘중공 오랑캐’란 말이 있었음을 연상했다. 오래 전부터 냉전시대의 산물인 ‘파로호’란 이름이 평화와 협력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단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이곳은 국민적 가곡인 ‘비목(碑木)’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화천 백암산 근처, 무명용사의 돌무덤 가의 십자 비목을 통해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이들은 그 노래 속에서 우리 곁에 다가선 것이다.

11㎞ 중 민통선 초소에서 평화의 댐까지의 올레는 7㎞였다. 앞서 한묵령에서 민통선 초소까지의 4㎞와는 달리 오르내리는 길을 반복하여 평화의 댐에 이르렀다. 이 댐은 1987년 북한 금강산 댐의 방류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건설되었다. 당시 북한이 금강산 댐을 이용, ‘수공(水攻)’할 것이라고 그 위협을 과장하여 이 거대한 댐을 조성한 것이다. 그때 여의도가 물에 잠길 수도 있다는 과대 위협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높이 125m, 길이 601m의 이 댐은 댐 조성 때의 적대의식과는 달리 평화를 위한 교육장으로 변신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부조된 벽면에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메시지를 소개해 놓았는가 하면,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보낸 탄피와 탄알로 37.5톤의 세계최대의 ‘평화의 종’을 만들어 각종 평화의 소리를 담아낸다. 그 종이 울릴 때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다시는 칼을 들고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메시지(이사야 2:4)를 전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평화의 댐을 떠났다.

이날 우리는 이전과는 달리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다. 저녁에 또 다른 ‘한반도평화올레’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종일 동행한 손자와 함께 나는 6시가 지나 시청역에 도착, 정의와 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평화를 갈구하는 촛불 시민들과 합류했다. 평화는 무기를 감축하고 전쟁을 방지하는 것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자기 사회를 정의롭게 하고 민주화시키는 노력이야말로 평화는 담보하는 길이다. 그래서 정의와 민주화를 위한 운동은 더 적극적인 평화운동이라고 믿는다. 이날 저녁 다른 날들 저녁보다도 더 많은 촛불이 광화문 광장 일대를 메웠는데,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절망 속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북돋게 했고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을 더욱 심화 확산시켜 주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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