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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의 힘

2016년 11월, 우리는 충격적인 현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하고 그 비선실세의 몸통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 퇴진, 하야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만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 광범위하고 뿌리깊고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한번쯤은 다들 들어보셨겠지만 다시 리마인드 차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순서는 없습니다. 그냥 파악한 대로 보고드립니다. 국제투명성기구 청렴도 평가 OECD 34개 국 중 27위, 공무원 부정부패 세계 4위, 수입 수출 세계 6위, 국내총생산 9위, 삶의 질 28위, 자살률 12년째 1위, 노인 빈곤율 1위, 근로자 노동시간 멕시코에 이어 2위, 반면 노동생산성은 28위.

OECD 지난 5월 발표한 '2016년 더 나은 삶 지수'에서 한국은 34개국 중 28위. 부문별로는 주거 17위, 소득 24위, 직업 17위, 공동체 37위, 교육 6위, 건강 35위, 삶의 만족 31위, 안전 21위, 일과 삶의 균형 36위, 환경부문 중 대기오염은 꼴찌, 수질은 26위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공동체 37위’가 유독 눈에 거슬립니다.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삶의 질 하위권 이 모든 게 바로 이 공동체성의 꼴찌라는 성적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계속하겠습니다.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중은 OECD 주요국가 중 꼴찌, 반면 단기(1년 미만) 근로자 비중은 주요회원국 중 1위.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들도 불안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현실입니다.

전세계 무기수입국 4위, 무기수출국 5위, 국방비지출액 세계 10위, 연 40조, 하루 1천억 원이 넘습니다.

이 고난, 가난 덩어리 속에서 그 덩어리를 짊어진 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게 바로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 모두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른 관점으로 이 고난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 고난이 나처럼 고난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게 한다면, 이 고난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으로 번져갈 수 있다면, 이 고난이 분단의 아픔을 이해하고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꿈꿀 수 있게 한다면, 이처럼 이 고난이 내가 속한 사회의 민낯과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각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이 고난은 괜찮은 고난 아닌가요?

고난은 개인에게 유익을 줍니다. 허탄한 것들을 버리게 하고, 세상 높은 것들에만 관심을 둔 채 이웃을 돌아보지 못했던 교만을 내려놓게 하고, 삶의 본질로 향하게 합니다.

개인적인 고난이 개인의 인생에 유익이듯이 사회적인 고난도 사회적인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지난 수년간, 그리고 올해 동안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함께 아파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움직임, 청소년들의 물결, 사드 배치를 온몸으로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총장의 독선과 민주적인 학사 행정을 촉구하는 대학 학생들의 물결,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전국민들의 목소리, 이게 바로 고난의 유익 아닙니까. 말도 안되는 사건 사고로 우울했던 국민들이 비로소 제 위치, 제 현실을 깨닫고 일어서는 외침 아닌가요? 이것이야 말로 역사의 심판이고 하나님의 심판 아닐까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편 67, 71절)

고난을 당할 때라야 비로소 진리를 깨닫고 그 길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에게 고난은 나쁜 것, 원수가 주는 게 아니라 유익한 것, 허탄한 것들을 버리고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난이 아니라 연합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 2:2)

여러분 혹시 코소보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발칸반도, 아드리안해 얘기만 들어도 낯설고 귀선 땅. 그 작은 분쟁과 분리, 가난의 땅에서 노벨문학상이 2개나 나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교회 선교사님이 1년 안식년 맞아 귀국하셨는데 그 얘기를 해주십니다. 중세 십자군 전쟁 때부터 민족간-종교간 분쟁을 앓았던 지역이 1990년 소련 해체로 인한 분리 독립으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땅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이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 노벨상으로 이어진 것 아이러니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노벨상의 영광이 있는 곳은 하나같이 전쟁, 분쟁, 기아, 독재가 있는 나라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도 남북분단을 대화와 평화로 이끈 공로 때문 아닙니까.

우리에게 분단은 어떤 것입니까? 분단은 아시다시피 우리 의지에 의해 된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였던 식민지배국가 일본이 피해자인 우리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써서 극복한다면 극복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안됩니다. 주변 강국들의 동의와 지지가 있어야만 합니다. 한완상 같은 분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민족 역사를 개떡같이 주관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시는 얘길 들었습니다.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아니 벗어나려고 애쓰면 더 우리를 옥죄는 분단, 이것은 우리에게 숙명 같은, 십자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는 잊거나 존재를 거부한다고 해서 잊혀지거나 거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져야 합니다. 묵묵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분단, 이것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잊는다고 잊혀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땅이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분단의 땅임을 알고 인정하는 것, 언제든 남북이 마음만 먹으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휴전의 땅임을 인정하는 것, 사람으로 치면 허리가 잘린 병신의 땅, 장애의 땅임을 인정하는 것, 우리 사회의 온갖 불의, 부정, 왜곡, 심지어 한국교회가 형제 사랑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죄도 바로 이 분단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바로 거기서 통일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의 행동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을 아실 겁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산상수훈을 연합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자라야 부유함의 덧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라야 남의 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라야 남의 목마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라야, 긍휼히 여기는 자의 마음이라야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박해를 받는 자 모두 자기 혼자만 놓고 보면 무의미해집니다. 이웃, 남 앞에서라야 비로소 제 의미를 갖게 되는 단어들입니다.

여기서 저는 연합을 생각합니다. 약한 자라야 연합할 수 있습니다. 슬프고 온유하고 핍박받는 자라야 연합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이, 나아가 하나님의 속성이 연합, 일치인 것, 반대로 사탄의 속성이 분리, 이간질인 것과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통일코리아협동조합엔 슈퍼스타가 없습니다. 절대강자가 없습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특징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줄 준비도 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연합은 어떤 절대강자의 조직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부터 3년 전, 계간 통일코리아를 창간할 때 이사회에서 강력한 제동이 걸렸습니다. 돈도 없고, 광고 담당자도 없는,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어떻게 계간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냐는 겁니다. 많은 이사님들이 여기에 동조를 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발행을 미루는 게 타당해 보였습니다. 계간지를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심각한 고민에 직면했습니다. 제가 얘기했습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면 된다, 일반 잡지로 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상황이지만 조합원들이 나눠서 광고도 따고, 글도 쓰고, 판매도 하면 가능하다, 그래서 이사회 최초로(아마 이후에도 없겠지만) 표결을 통해 의사를 결정했는데, 찬성이 약간 많았습니다. 그래서 1년에 4번 만드는 이 잡지를 10번이나 만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원리나 정의는 이미 나와 있지만 제가 경험해보니까 사람들이 돈을 출자해 각자 주인으로 참여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윈윈하게 하고 양극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은 또한 이익결사체가 아니라 강력한 공동체가 기반이 될 때 훨씬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영국의 로치데일이 다 그런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입니다.

제가 협동조합을 고집했던 것은 통일 과정이나 통일 이후 북한에 모델적인 경제 시스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입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창업지원센터 이사장인 김성오 박사님 얘기가 북한의 협동농장을 그대로 협동조합으로 전환해도 될 만큼 북한 노동자들이 적극적, 우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엊그제 만난 탈북민 사업가도 북한 노동자들이 평소엔 사회 문제 등에 무관심하다가 자기 돈을 내면 너무나 적극적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협동조합은 북한에 접목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제시스템입니다.

연합은 이처럼 너무나 복음의 핵심이면서 북한에 접목 가능한 경제 제도입니다. 연합은 또한 통일, 즉 남북의 하나됨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북한 내지 사역하는 분 얘기 들으니까 교단 교파 초월해 수련회, 서로 돕기를 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추진하는 단체들이 연합을 거부한다면 그건 통일 할 자격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통일을 추구한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나서 적어도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네에서 개신교회와 천주교가 함께 이웃을 위해 부활절예배나 성탄절 행사를 같이 한다든지, 정치에서 여야가 서로 연정·협치를 한다든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원을 안가고 국영수 잘하는 아이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공부 그룹을 한다든지, 협동조합 같은 협력과 윈윈의 경제 모델이 더욱 확산된다든지, 그리고 제가 빌라에서 사는데 장점이 많습니다. 회의해서 청소 업체, 쓰레기 수거 업체 선정을 하려니까 회의를 할 수밖에. 그러다 보니 서로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니까 층간 소음이 있어도 이해하게 되고, 사이가 좋습니다. 이런 연합의 기운이 확산될 때 통일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은 지난 11월 24일 내수동교회에서 열린 통일코리아 기도회에서 나눴던 말씀을 정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필자 주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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