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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진하는 민주주의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역사적 맥락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한국은 현재 혼돈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초래된 파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 파국은 한국 민주주의 회복에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돌파구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파국적 변화를 통하여 나타날 수 있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과 “주술적” 인연을 가진 최순실이라는 한 여인이 비선 실세로서, 대통령 기록 등 주요 문건을 미리 받아 수정하였고, 정부의 주요 인사 임명과 정책 결정에 개입하였으며, 대기업들로부터 800여억원을 받아 재단을 설립하는 등 각종 사적인 이득을 추구한 사건이다. 박 대통령이 이 스캔들을 주도적으로 연출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최순실은 그림자 대통령으로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불황과 사회적 양극화와 겹쳐지면서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과 모욕감에 분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로 추락하였다. 뉴욕타임즈는 사설과 삽화에서 박 대통령이 무속 점쟁이에게 크게 의존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건을 한국의 라스푸틴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최면술사 스뱅갈리로 이 스캔들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 국민들로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며, 근대 민주주의의 국가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원시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명의 시대에 야만의 돌출이 파국을 가져온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국정조사와 특검이 예정되어 있다.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크게 (1) 박 대통령이 불법 행위에 어느 정도 개입하였는가, (2) 재단 설립이 뇌물에 해당하는가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한편, 이 사건의 정치사회적 쟁점은 (1)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가 실제로 주술적 관계인가, (2) 한국의 법과 제도가 대통령, 집권당, 핵심 관료, 대기업들에 의해 공모된 이 같은 불법을 어떻게 막아내지 못했을까, (3) 그리고 박 대통령의 정치적 법적 책임을 어떻게 묻고 이 파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으로 요약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4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청와대

종교와 정치: 어두운 그림자의 역사적 맥락

종교는 항상 정치권력의 포섭 대상이거나 경계 대상이었고, 어느 나라에서나 종교의 이름 아래 벌어진 많은 스캔들이 있었다. 이번 사건을 같은 시각에서 볼 수는 없지만, 일제 시대와 박정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사건의 역사적 기원을 무시하기 힘들다. 일제 강점기에도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종교계의 항일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포섭하여 동화시키기 위한 치밀한 지배전략이 전개된 바 있다. 적지 않은 종교인들이 식민지 통치를 위하여 봉사한 흑역사가 있었다. 반면, 샤머니즘은 대체로 민족주의적 정서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에서는 통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종교에 대한 통치전략은 박정희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종교계의 한국 민주화를 위한 공헌은 매우 크지만, 많은 종교인들이 독재에 봉사하였던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일제 시대의 순사를 지낸 최태민 목사는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종교적 외피를 쓰고 등장한 정치적 사기꾼으로 지칭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40여년 전에 자신과 최태민 사이에 존재하였던 이상한 인연을 그의 딸인 최순실로 지속시켰다.

사실 박근혜가 최태민과 함께 1975년 4월 29일에 창설한 ‘대한구국선교단’과 ‘대한구국십자군’ 등은 박정희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동원 내지는 개신교 내 반(反)박정희 그룹에 대한 분할통치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1976년 4월 기존의 조직을 ‘새마음봉사단’으로 통합하여 국민들의 정신을 개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개인적 연줄이 통치 전략 차원이 아닌 사적인 이익추구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지만, 일제 시대에 뿌리를 둔 박정희 시대의 유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인가?

1987년 한국의 민주화는 세계적으로 매우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되었다. 점진적이고, 평화적이며, 불가역적인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민주화 이행에 성공한 이래 현재까지 한국은 민주공고화 과정에 놓여 있었다. 동시에 한국은 그동안 민주공고화가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이기도 하였다.

과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파국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일까?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처럼 허약하단 말인가? 사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에서 그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SNS 댓글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함으로써 민주적 선거 절차를 심각히 훼손하여 정통성 시비를 불러왔다. 세월호 참사 및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농민 사건 등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인식과 해결 방식은 민주주의가 갖는 최소한의 가치와 절차마저도 저버렸다. 몇 번에 걸친 간첩조작 사건은 한국판 메카시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일부 비정상적 극우단체에 전경련을 통하여 자금을 제공하고 이들을 관제데모에 동원한 사례는 이승만 시대의 망령을 떠오르게 하였다. 급기야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정부가 작성하기로 강제한 사건은 민주주의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훼손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의 극치였다. 최근에는 문화계 인사 중에서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위의 사례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있다는 국내외의 우려와 비판을 불러오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번 파국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말해 주기에는 너무 비합리적이고 개인적 성격이 강하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파국이 아니라, 박 대통령 개인의 일탈이었다. 이 파국은 민주주의에서 제도 못지않게 문화나 지도자 개인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쉽게 죽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적 소양과 역사 인식을 갖추지 못하고 모든 사고와 행태가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독재자의 딸’에 의하여 잠시 시달렸을 뿐이다. 오히려 한국의 국민들은 민주적 선거 절차로 뽑힌 박 대통령의 제도적 권한을 존중하고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2016년 11월 12일에 있었던 백만 국민의 평화시위는 박대통령의 무지, 무능력, 비민주적 전횡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왔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 시위는, 사회적 아노미 현상이 아니라, 각성한 민주시민들이 박 대통령에 의하여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매우 이성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라를 국가부도에서 구하고자 자발적으로 실천한 금모으기 운동에 비견되는 운동이다. 1987년 민주항쟁이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2016년의 시위는 해학과 유머,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넘치는 공감과 치유의 운동이었다. 이번 파국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강한 복원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거리시위에서 몇몇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힙합"을 선보이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최순실 퍼즐 맞추기: 너무 단순하였던 복잡계

복잡한 민주국가의 정책결정 과정은 블랙박스라는 용어로 비유된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이성적 논리와 치밀한 전략에 의하여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자연과학의 방법론 중의 하나인 복잡계 이론이 사회과학에 곧잘 동원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의 블랙박스에 대하여도 합리성의 전제하에 분석하려는 노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는 도저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들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박근혜 정부 내내 매우 중요한 정책들이 너무나 갑작스레 발표되곤 하였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결정 등에 최순실의 조언이 작용했을 의혹과 개연성이 확산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합의는, 그동안 박 대통령이 취임 후 31개월 동안 아베 신조 수상과의 정상회담도 거부하였던 상황을 고려하면, 너무나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이 정책의 주무장관인 외교장관도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당일 아침에 발표하도록 지시받았다는 소문이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김규현 외교안보수석도 이 문제에 관하여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국정감사에서 말한 바 있다.

2016년 7월 8일, 그동안 “요청도 하지 않았고, 협의도 하지 않았으며, 결정한 바 없다”고 반복해서 주장해 온 사드의 한국 배치가 갑작스레 발표되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전문가인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의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사드배치 결정은 청와대가 주한미군과 직거래하였고” 국방부는 최종 결정에서 소외되었다고 한다. 김종대 의원은 2016년 10월 28일, 비선 실세와 사드 제작사와의 접촉설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에 크게 의존하였다는 의혹은 그녀가 사용한 몇 가지 비이성적이고 비일상적인 표현에 의하여 더 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박 대통령은 2015년 5월 5일 어린이날 청와대로 초청한 어린이들을 향해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라고 말한 바 있고, 2015년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바른 역사를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당시 한국 사회는 왜 이 같은 표현이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 나오는지에 대하여 크게 당황하고 의아해 하였다.

현재까지 검찰 조사와 언론 취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청와대에서 최순실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였다. 볼드모트는 악마의 저주에 걸리는 보복이 두려워 차마 이름도 언급 못하는 죽음의 권력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 사실을 밝히려던 몇몇 시도들은 무산되었고 고발자들은 감옥생활을 해야 했고, 심지어는 자살한 사람도 있다. 그동안 의아해 하였던 문제들이 최순실 퍼즐로 맞추면 신기하게 풀리는 이 반(反)이성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너무나 당혹스럽다. 최근 드러나기 시작한 박근혜 정부의 복잡계는 이성적이지도 않았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던 전문가들이나 국민들의 노력이 허탈하였던 이유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국제정치와 남북관계에 나타난 나비효과

국제정치는 국가간 이성적 전략의 경쟁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결정들이 자주 발생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서로 적이 되어 싸운 양측의 병사들과 장군들도 자기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은 현재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줄 수 있다. 국제정치와 남북관계가 이성적일 것이라는 가설이 오히려 더 큰 긴장을 가져오고, 비이성적이고 돌출적인 변수 하나가 파국적인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심지어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전쟁에 나선 “당나귀가 이끄는 사자부대”가 무능한 리더십에 의하여 실패한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기도 하였다.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의 전면 폐쇄를 결정하였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있고 국제사회에 의한 제재가 강화되고 있었지만, 그 결정은 매우 비이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2월 7일 박 대통령 주재의 국가안보회의에서는 전혀 논의가 없었는데, 갑자기 2월 10일 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이 회의에서 통일부는 잠정중단을 건의하였으나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초하여, 전 통일부장관인 정동영 의원은 “8-9일 사이에 비선 조직의 입김이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당시에 많은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들의 반대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내려진 결정에 대하여 과연 누가 어떻게 이 같은 조언을 하였는지에 대한 의심들이 적지 않았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우상호 의원은, “북한이 2년 내에 붕괴한다”는 최순실의 주술적 예언이 박 대통령의 강경 입장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비이성적 요인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강경책의 배경이라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증명하기 힘들고 오직 박 대통령만이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급속히 악화된 남북관계의 긴장은 비이성적 돌발 변수에 의하여 초래된 어처구니없는 국제정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2015년 9월 9일 북한의 제5차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은 정신상태가 통제 불가능”하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2016년 9월 10일 뉴욕타임즈는 “김정은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너무나도 이성적”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북한의 김정은은 박근혜 정부의 강경책을 자신의 정권에 대한 최대한의 위협으로 보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한국의 모든 전문가와 군사 관련 기관들이 모두 단결하여 정확한 정보와 합리적 전략을 총동원하여 자신에게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이성적 인식 하에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을 더 무리하게 서둘렀지 않았을까.

만일 위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를 알아챈 김정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매우 궁금해진다. 사드 등을 포함하여 한반도 정책을 둘러싸고 최고조로 대립하였던 오바마와 시진핑의 관계도 혹시 이같은 비이성적 변수의 나비효과는 아니었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근의 현상은 어떻게 보면 이성적이고 정교할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도 의외로 쉽게 취약해져 우리들의 평화와 번영을 해칠 수 있음을 경고해 주고 있는 듯하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결정과 이성적 전략에 의한 경쟁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를 관리해 나가는 데 더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방법일 것이라는 국제정치의 기본 원리가 다시 생각나는 순간이다.

박근혜가 잘못 읽은 박정희의 세 가지 유언

역사적 맥락 없는 사건 없고, 완전히 합리적인 정치현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전략과 제도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과 이번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읽을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은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의 유언을 잘못 해석한 것 같다. 박정희 연구자로서 내가 보는 그의 역사적 유언은 그가 남긴 세 가지 어록에서 찾을 수 있겠다: (1) 1963년 8월 30일, 철원의 5군단 비행장에서 열린 전역식에서 박정희는 “다시는 이 땅에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며 눈물을 훔쳤다. (2) 1975년경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한 바 있다. (3)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박정희는 “나는 괜찮아”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위의 세 가지 어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박정희 평가를 둘러싼 첨예한 정치적 대립을 감안하면 매우 극단적인 해석이 병행할 것이다. 하지만, 찬반론과 무관하게, 박정희는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든 역사적 인물이다. 동시에,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그도,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한,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는 역사와 국가에 대한 자기 철학을 가졌고, 자기의 운명을 알고 받아들였던 인물이었다. 최소한 박 대통령과 일부 비이성적 지지자들이 집착하는 그에 대한 미화된 정치적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박 대통령의 모습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매달리는 그녀의 역사 인식을 박정희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를 역사적 인물로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데 실패하였다. 박 대통령은 좋은 딸이 되고자 하였지만 결국은 나쁜 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박정희가 남긴 시대적 자산은 키우고 부채는 줄여야 했는데, 박 대통령은 거꾸로 자산은 까먹고 부채만 늘린 결과를 낳았다. 2016년 11월 14일, 박정희 시대의 제 2인자이자, 박 대통령의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총리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고집이 세고 부모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이 평가를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성격 측면으로만 국한하여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정희가 서거한 지 37년이 지난 같은 날, 2016년 10월 26일, 최순실의 집과 관련 재단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박 대통령은 한국 헌정사상 임기 중 검찰수사를 받는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2016년 11월 20일,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검찰에 입건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박 대통령은 한국사회에 뿌리깊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과도한 신화를 없애주는 의도하지 않은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국 사회와 국민이 비극적 지도자의 딸에 대하여 가졌던 정서적 동정심이나 심리적 문화적 부채의식을 청산하는 결과도 가져올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도의 수준을 넘어 문화나 정서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더 공고화될 것이고 한국사회는 더 합리적인 원리에 의하여 작동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 파국은, 한국사회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진화 현상이자 민주주의의 해독 및 치유과정으로서, 혼돈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가져올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격동적이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강한 복원력을 갖고 있다.

 

필자 소개

류상영: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고 동아시아재단의 운영이사이면서 <동아시아정책논쟁>의 editor 를 맡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1995-2001)을 지낸바 있으며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1992-1994),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2009-2010) 등을 지냈다. 김대중도서관 관장(2004-2009)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구술사>를 구축하는 등 사료 수집과 연구에 힘썼다. 그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역사와 정치경제에 관해서 많은 연구결과를 출간하였다. 그동안 역사와 이론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깊이있게 결합하고 분석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박정희와 김대중을 민족주의와 한국정치사적 시각에서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위 칼럼은 동아시아재단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류상영  syrhy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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