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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함성 속에 피어날 아동수당을 기대하며

지난 토요일,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군중들 속에서 함성을 지르고 촛불 파도타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시작된 박근혜 퇴진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내자동 경찰 저지선을 넘어 청와대에까지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광화문 집회의 직접적 계기가 된 최순실 사건은 비공식 실세의 국정 농단 사건이자 ‘뇌물 수수 및 공여’ 사건이며,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재벌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받고 뇌물 제공자들의 부탁을 들어준 고위공무원의 ‘배임’ 사건이다.

광화문에 100만 명이 모인 이유

실제로 미르재단 모금이 완료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통해 예산과는 특별히 관련이 없는 한중 FTA 비준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그리고 의료민영화를 위한 법안들과 5대 노동개혁법 등을 ‘경제 활성화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주문했다.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다음날에는 갑자기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미 통과된 법률들 외의 원샷법 등을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라고 이름 붙여 나머지 법안들의 처리를 다시 국회에 요청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본인이 직접 나서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결성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국민운동 추진본부'의 “재벌지원법 통과 촉구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우석균, 프레시안 칼럼).

심지어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야당들조차 ‘청와대가 재벌 대기업들에게 삥을 뜯었다’라는 말만 하고 재벌들이 혜택을 본 것은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야당들도 이런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원샷법은 국민의당이 전원 찬성하고 민주당은 기권하는 방식으로 통과되었다. 노동개악 관련법은 국민의당이 찬성과 반대를 오락가락 하면서 노동자들을 파업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국민들의 원성이 전국에 넘쳐나는 와중에도 서비스발전법은 규제프리존법과 함께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 합의로 최근에 국회 기재위 주최로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착착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유지에 기여하면서 출범 이후부터 4년이 되도록 권력을 누려오던 자들이 자신들은 몰랐다거나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가증스럽지만, 그 동안 규제완화와 각종 경제적 특혜를 향유하던 세력들이 마치 피해자인 척하는 것도 국민들의 눈에는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는 것처럼 우습게 보인다. 새누리당의 적극적인 추진과 야당의 암묵적인 동의 및 일부의 묵인 속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제공한 액수의 수백 배에 달하는 이득을 얻은 재벌 대기업들이 이제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하니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예측과 달리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나 브렉시트(Brexit)가 통과된 것도 이들 나라에서 다수 국민의 삶이 너무 어려워진 데 기인한 좌절과 분노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00만 시민이 직접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 국민 정서와 반하는 종군위안부 협상, THAAD 배치 강행, 국정 교과서 강행을 통한 역사 왜곡에 더해, 가장 본질적으로는 대다수 국민의 삶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약속했던 국민 행복을 위한 대부분의 복지국가 공약들은 축소 또는 폐기되었다. 정반대의 길인 규제완화와 감세기조의 재벌 대기업 지원 정책 추진에만 주력했다. 이것이 100만 촛불의 근원적인 이유인 것이다.

이번 광화문 시위 현장에는 쌀값 인상 공약을 지키라는 시위를 하다가 물대포에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 때문에 상경하신 분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련자들,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청소년들과 취직 문제로 힘든 청년들, 몇 달째 노동개악에 대항해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도 나왔다. 그리고 지난 87년 6월 항쟁의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40대와 50대의 가장이 되어 자녀들과 함께 거리에 나섰다. 거리와 현장의 구호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정권 교체’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이 바라는 것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동수당의 정치경제학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할 때 우리 국민들은 촛불시위에 나섰다. 무상급식에 대한 열망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복지를 공론화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반값 등록금과 기초연금을 쟁취했다. 그래서 이번 광화문 시위가 가져올 성과가 대통령 퇴진과 정권 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아동수당이 지금 정치권에서 조금씩 공론화되고 있는데,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수가 더 늘어나면 아동수당이 현실화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제18대 국회에서도 4가지의 아동수당 관련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본질적인 이유는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 속에 여야 정당 모두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를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아동수당 도입 논의가 불거지자 박근혜 정부는 아동수당 제도의 출산 장려 효과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아동수당 정책을 본질적 의미의 출산 장려 정책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OECD 국가 중에서 터키, 멕시코,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아동수당은 세계적 수준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보편적인 제도였다. 아동수당은 1942년 영국의 전시거국내각에서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논리적으로 공론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빈곤 없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국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했는데, 아동 시기의 소득보장 정책으로 보편적 아동수당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아동수당은 본질적으로 국가의 아동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정책이다. 그러므로 아동수당 제도는 아동의 양육에서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가 없도록 하자는 것으로 아동 인권 정책이다.

최근 1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이 560조원에 이를 정도로 투자처를 못 찾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낮은 나라에서는 양극화 해소 및 소득 재분배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층 가구는 소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실제로 내수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높다. 즉 아동수당은 국가의 이전지출을 통해 가처분소득을 증가시켜서 내수를 진작시키는 중요한 경제 정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족(아동)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1.16%로 영국(4.26%)의 27%, OECD 평균(2.55%)의 45%에 불과하여 33개 회원국 중 32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동과 가족에 대한 지원이 지독하게 적은 나라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아동수당으로 연간 15조원을 투자하면 생산유발효과는 약 38조원이며, 34만 명의 고용이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김승연, 10/26 국회 세미나).

실제로 최근 각 정당들이 앞 다투어 아동수당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발의한 아동수당법은 2018년 기준으로 연소득 1억3천만원 이하 가구의 아동 554만 명에게0~2세에게 월 10만원, 3~5세 20만원, 6~12세 30만원 등으로 연간 15조원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금액은 대형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현금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도록 했다. 지역 경제의 활성화 효과도 동시에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국민의당의 김광수 의원은 6세 미만 아동 약 274만 명을 대상으로 소득 수준과는 무관하게 월 10만원의 현금을 지급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보육·육아 학비지원, 가정양육수당 등 기존의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 아래 연간 3조3천억원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당의 천정배 의원도 아동수당의 도입 및 단계적 지급액 상향 추진과 이를 위한 인구세 신설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위에서는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제출한 안이 검토되었다. 보육·육아 학비지원, 가정양육수당 등 기존의 제도는 아동수당으로 단일화하고, 기존의 보육 예산(13조원)을 활용하고 부족분은 특수목적세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만 0~15세 아동 770만 명을 대상으로 월 30만원을 지급하고, 추가로 소득하위 50%에 속하는 만 0~6세 아동에게는 월 15만 원의 바우처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지급 방법과 재원 대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지난 2012년 대선 때와 같이 민주당 보다 좀 더 센 안을 제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광화문의 함성을 복지국가 쟁취로 완성하자

아동수당 정책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기준에서 보면 부실하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이 모든 것들이 복지 후진국을 고수하며 국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결과이다. 광화문에 모인 100만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부터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복지국가 건설’로 100만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이것을 정치권에 압박하여 정책 공약으로 정치사회적 약속을 받아낸다면 찬바람 속에 모이는 시민들의 함성은 정치혁명으로 성공하게 될 것이다.

 

이상구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이상구  21welfa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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