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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고립주의와 대한민국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S) 현안진단 :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우리의 외교정책

‘위대한 미국’이 불확실성과 함께 왔다. 2016년 11월 8일 제45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는 1789년 제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조지 워싱턴 이후 어떠한 선출직 정무경력 혹은 임명직 공무경력을 갖지 않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비(非)공직인’ 출신 대통령이다. ‘외부자’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워싱턴 정가(政街)의 기득권 ‘내부자’가 추구했던 ‘현상유지 정체(政體)’로부터의 정치 및 정책 단절을 상징한다.

가장 중요한 정치적 단절의 한 단면은 유권자의 ‘재편성(再編成)’을 방불케 하는 그의 선거지지 기반에서 찾을 수 있다. 출구조사자료에 따르면, 트럼프의 승리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지지층은 중서부 및 북동부 지역 대졸 이하 학력의 백인들이다. ‘러스트 벨트(rust belt)’ 혹은 ‘녹지대(綠地帶)’ 백인 중산층 및 육체노동자층 유권자 득표율을 보면,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40 퍼센트 가까이 격차를 벌린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s)’ 혹은 ‘경합주(競合州)’ 선거인단 선거에서 트럼프가 예상을 뒤엎고 우세를 보인 결정적 연유이다.

트럼프는 미네소타, 네바다, 뉴햄프셔, 버지니아를 제외하고, 콜로라도, 플로리다, 아이오와, 미시간, 오하이오,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니아, 위스컨신 등 주요 경합주에서 모두 승리했다.특히, 녹지대 경합주에 해당하는 아이오와,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컨신에서 백인 중산층 및 육체노동자층 유권자가 트럼프의 ‘포퓰리즘(populism)’ 혹은 ‘대중주의(大衆主義)’ 선거전략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중주의는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을 비난하는 ‘반(反)엘리트주의’를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트럼프는 지난 반세기 동안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대표적으로 중국 상품, 멕시코 노동자, 회교도 이민자의 유입에서 찾고, 관세 부과, 장벽 설치, 입국 금지를 선거정책패키지로 내세웠다. 기득권 정치엘리트가 유지하려는 중국과의 교역을 촉진하는 무역정책, 멕시코 노동자를 수용하는 노동정책, 회교도를 차별하지 않는 이민정책과 단절하지 않는다면 백인 유권자가 주역이 되는 위대한 미국의 부활을 이룰 수 없다고 설파한 것이다. 즉, 트럼프의 대중주의는, 자유무역이 대표하는 ‘세계화(globalization)’ 및 이민자가 상징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표적으로 삼아, 백인 중산층 및 육체노동자층 유권자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동원한 선거전략이었던 셈이다.

모든 외교정책은 국내정치에 그 기원을 가진다는 국제정치학의 통찰은 트럼프 대중주의가 백인 유권자의 반(反)세계화 및 반(反)다문화주의 정서에 그 사회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하도록 만든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의 전통으로부터 ‘고립주의(isolationism)’의 전통으로 그 중심을 옮길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자유무역질서의 유지 및 시장개방의 촉진을 핵심으로 하는 ‘해밀턴주의(Hamiltonian)’ 국제주의와는 결이 다를 것이고, 민주주의의 지구적 전파를 위해 적극적인 해외개입도 마다하지 않는 ‘윌슨주의(Wilsonian)’ 국제주의와도 거리가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중주의의 한 축을 이루는 반세계화의 요소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국제주의보다는 고립주의의 성격을 띨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제는 “어떤 고립주의인가”에 있다. 고립주의를 취하는 미국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크게 보아 ‘제퍼슨주의(Jeffersonian)’ 고립주의와 ‘잭슨주의(Jacksonian)’ 고립주의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국제 분쟁은 정부의 비대화(肥大化)를 초래하여 민주 정체를 위축하고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입장에 기초하여 국제 관여를 최소하려는 경향을 갖는 평화적 고립주의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백인공동체 대 비(非)백인공동체라는 대립항에 기초하여 백인공동체가 가진 고유의 행동규범이 손상되지 않는 이상 비백인공동체의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자와 공통점을 갖지만, 비백인공동체가 백인공동체의 행동규범을 침해할 경우 가용자원의 최대치를 동원해 위반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차이점을 갖는다. 즉, 평화적 속성을 보유한 제퍼슨주의 고립주의와는 달리, 잭슨주의 고립주의는 호전적 속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중주의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반다문화주의의 요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할 외교정책이 평화적 속성을 갖는 제퍼슨주의 고립주의 전통에 근접할 확률보다는 호전적 속성을 갖는 잭슨주의 고립주의 전통에 근접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드러낸다.

트럼프 행정부가 펼칠 외교정책을 잭슨주의 고립주의의 전통에서 이해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이 몰고 온 불확실성의 오차범위를 한정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린다. 우선 안보동맹 강화와 자유무역질서 심화를 축으로 추진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가 항공모함에 비유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이미 폐기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백인공동체의 행동규범에 어긋나 있다고 판단하는 통상정책은 물론 동맹정책 또한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잭슨주의 고립주의 시각에서는, 안보무임승차와 비용과소부담을 문제 삼고 있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조정이 ‘득실(得失)’을 다투는 이익 차원보다 ‘정사(正邪)’를 따지는 가치 차원에 무게가 실려 있는 의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일본이나 한국이 동맹유지비용을 지금보다 더 많이 부담하지 않으려 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그것을 백인공동체의 행동규범을 위배한 것으로 간주하여 대응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맹유지비용 재조정 협상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행정부에 비해, 매우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협상과정의 파트너가 될 한국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잭슨주의 고립주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잭슨주의 고립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편이 좋다. 녹지대 경합주 백인 중산층 및 육체노동자층 유권자의 반세계화 및 반다문화주의 정서가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트럼프 혹은 그 이후의 대통령도 그것을 무시하기란 매우 어려운 민주 정체의 구조적 제약 때문이다. 미국 외교정책이 고립주의를 탈피하고 다시 국제주의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녹지대 경합주 백인 중산층 및 육체노동자층 유권자가 더 이상 대통령 선거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하거나, 혹은 이들이 반세계화 및 반다문화주의 정서를 약화하도록 사회경제적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금의 미국정치 현실을 반추할 때, 대통령 선거제도의 개혁 혹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완화가 이루어질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국 행정부가 당분간 트럼프 대통령의 잭슨주의 고립주의라는 불확실성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김정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정  jungkim70@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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