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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중국, 통일인가 독립인가?양안(兩岸)관계 이야기(1)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구심력과 원심력의 절묘한 지정학적 균형 아래서 통일과 독립의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 우리는 이를 양안관계(兩岸關係)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놀라운‘굴기’로 인해 중국과 대만간 힘의 격차는 이미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지탱하는 힘은, 양안관계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대만과 중국만의 게임이 아니라는 본질에서 나옵니다. 대만의 배후에 있는 미국과 일본의 국제정치적 ‘힘의 투사’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비롯된 현대성(modernity)이 동아시아에 새겨 놓은 보편적 가치(민주주의와 인권)의 힘이 이 힘겨루기에 연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안관계를 지켜보는 우리의 관점은 단순히 당사자들이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뤄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보편성에 대한 동양과 서양 사이의 문명사적 경쟁과 통합이라는 관점,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형성해 온 이념적·문화적 정체성의 대립을 초월하는 사상적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느냐의 사상사적 함의도 이 관계 속에서 지켜봐야 할 중요한 화두입니다. 이 화두가 한반도에서도 동일하게 숙고되어야 할 문제임은 물론입니다.

대만 사회의 정치 지형과 정권 교체

양안관계에 대한 입장과 국가정체성에 대한 경쟁과 대립은 대만 사회의 정치지형을 결정짓는 핵심 이슈입니다. 통일을 지향할 것이냐, 독립을 지향할 것이냐의 문제는 대만 정치사를 관통하는 양극단의 정치 목표이자 프레임입니다. 2000년에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총통선거에 승리하여 대만의 첫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래, 대만사회의 정치지형은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는 국민당 진영(pan-blue)과 대만의 주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민진당 진영(pan-green)으로 양분되어 그 대립이 격화되어 왔습니다.

2000년에 민진당에 의해 이뤄진 정권교체는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중국 국민당이 일제 식민지로 50년의 세월을 지내 온 대만으로 ‘중화민국’ 정부를 옮겨 온 후 50여년 만의 정치적 변화였습니다. 민진당은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의 권위주의 일당 체제하에서 지속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인사들이 1986년에 창당한 정당입니다. 또한 당의 강령(黨綱)으로 대만 독립을 명시하고 있을 정도로 본토주의 성향이 강한 정당입니다.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이 집권한 8년(2000-2008년) 동안, 양안관계는 매우 경색되었고, 천수이볜은 대만 명의의 유엔 가입을 이슈화하는 등 대만의 주권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입니다. 그러나 대만 경제의 하락세와 양안관계의 불안정, 그리고 총통 개인과 가족의 비리 문제로 대만 사회의 여론은 민진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됩니다. 결국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대만 경제를 살리겠다는 입장을 내세운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가 2008년과 2012년의 두 차례 총통선거에서 승리하며 8년 간 집권하게 됐습니다.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 집권 8년(2008-2016년) 동안 양안간의 교류와 협력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부의 과도한 친중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마잉주 정부는 높은 실업률과 저임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양안간 경제협력의 효력에 대한 불신감과 대만 사회 기저에 흐르던 반중(反中) 정서가 폭발하면서 대만 사회의 여론을 지배하게 됐습니다. 결국 그 영향으로 ‘현상유지(維持現狀)’를 내세우며 대만의 자주성을 강조한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올해 초(2016년 1월 16일) 총통선거에 승리하며 또 다시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됩니다.

대만인들의 정체성 변화와 ‘통일’이라는 가치의 하락

2014년 3월 대만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국과 대만 정부가 체결한 양안서비스무역협정(兩岸服務貿易協議, 2013년 6월 체결)에 대한 입법원(국회)의 졸속 비준에 반발한 학생들이 3주간의 입법원 점거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는 대만 대중들의 전반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 여파로 2014년 11월의 지방 공직자 통합 선거에서 국민당이 참패하고 민진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는데, 이 선거는 마잉주 정부 제2기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2016년 대만 총통선거의 전초전이기도 했습니다. ‘해바라기 학생운동’이라 불린 청년학생들의 이 입법원 점거 시위와 이에 대한 대만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대만인들의 정체성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2013년 6월, 대만의 대학생들이 중국-대만 정부의 양얀서비스무역협정 체결에 반발해 입법원 점거시위를 벌이고 있다. ⓒ필자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중심(政大選舉研究中心)은 1992년부터 매년 6월 대만인들의 정체성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해 왔습니다. 이 서베이(survey)는 국가급 연구 프로젝트로 대만 전역에서 1만여 명의 표본을 추출하고 연령, 성별, 지역 등의 변수를 감안하여 진행하는 여론조사입니다. 이 서베이는 대만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자신을 ‘대만인’으로 인식하는지, ‘중국인’으로 인식하는지, 아니면 ‘대만인이자 중국인’으로 인식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통일/독립에 대한 입장 조사와 정당선호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여년 동안 실시된 이 서베이 결과의 추이를 살펴보면, 대만인들이 자신을 ‘중국인’으로 인식하던 비율은 1992년 25.5%에서 2016년 3.0%로 떨어집니다. 중도세력이라 할 수 있는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란 중첩된 정체성을 가진 그룹의 비율도 1992년 46.4%에서 2016년 33.6%로 떨어져 있습니다. 반면에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대만인’일 뿐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갖는 그룹의 비율이 1992년 17.6%에서 2016년 59.3%까지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중국 대륙과의 경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통합의 가능성을 타진하려 했던 국민당이 집권한 2008년부터 오히려 ‘대만인’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현상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상호교류와 협력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으로는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인 ‘아시아 패러독스’(Asian Paradox)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만인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이 증가했다고 대만인들의 독립 지향성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중심에서 제공하는 대만 대중들의 ‘통일/독립에 대한 입장’ 분포도를 살펴보면, 독립지향성을 갖는 대중(비교적 독립을 원함[偏向獨立] + 최대한 빨리 독립을 원함[儘快獨立])의 비율은 20%대(2016년 23.4%)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에 현상유지를 원하는 대중(현상을 유지하다가 다시 결정[維持現狀再決定] + 영원히 현상유지를 원함[永遠維持現狀])의 비율은 60%대(2016년 59.6%)에 이릅니다. 따라서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 변화와 독립 지향성이 직접적인 상관성을 갖지는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만인들이 명시적으로 독립을 지향할 경우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변수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에 대만인들이 전략적으로 현상유지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중심이 발표한 대만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대만인은 자신을 '중국인', '대만인이자 중국인'도 아닌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많아졌다. ⓒ필자

교류와 협력의 대상이 품고 있는 가치관과 정체성을 존중하고 있는가?

상품이 오고 가는 시장에서도 진정성이 결여된 얄팍한 상술로는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민족 내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며 그것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면 자신의 계획과 의지대로 될 것이라는 오만한 자세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양안관계에서도 중국공산당은 대만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분치(分治)의 상태로 60여 년 이상을 지내 온 두 사회가 형성해 온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의 차이가 심화된 것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경제적 접근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긴 역사 속에서 형성된 상대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진지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계속)

장영희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만연구센터 연구원

장영희  bless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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