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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남과 북을 가로질러 흐른다<코리아>의 '작은 통일'이 가져다준 눈물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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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은 봄꽃처럼 화사하게 시작하였다.
세상은 해빙무드였다. 소련이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면서 동구에서는 독재의 장막들이 걷히고 남한도 중국과 수교하였다.
한반도에도 그 봄의 소식이 전해지기를 두 손 모으며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출전 소식이 들렸다.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양영자 현정화 콤비가 여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나 양영자의 은퇴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선 다시 중국에게 금메달을 돌려줘야 했다.
다시 중국은 난공불락이었다.
그래서 남북 정부의 탁구대표 단일팀 출전 합의는 중국을 꺾을 유일한 팀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소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해 온 동포들에게는 오래된 소망이 작은 봄꽃으로 피어난 일이기도 했다.
‘코리아’라는 국가명칭으로, 흰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앞세웠으며, ‘아리랑’을 국가로 합의하였다.

   
▲ 남북 정부의 탁구대표 단일팀 출전 합의는 중국을 꺾을 유일한 팀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소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해 온 동포들에게는 오래된 소망이 작은 봄꽃으로 피어난 일이기도 했다.

작은 통일이었다. 탁구라는 하나의 스포츠 종목에 불과했으나 그해 4월, 한반도는 통일의 벅찬 감동에 젖어들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서로를 향해 갈등하던 형제들이 ‘코리아’를 외치며 하나가 된 탁구대표팀을 응원하였다. 그렇게도 바라던 우리의 소원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여자 단체전에서 리분희 현정화라는 남북의 자매가 복식을 이루었고, 난공불락 중국을 이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든 종목에서 중국이 우승하고 중국의 국가가 울려퍼질 때 그 틈을 비집고 남북한 단일팀 코리아의 국가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지바의 작은 통일 이야기는 묻혔고, 세월은 무심히 20년이 흘렀다.


02

평화의 꽃이 필 것 같던 한반도엔 다시 전쟁의 기운이 드리운 채 7000만 겨레가 세계사에서도 낯설어진 분단국의 운명을 어깨에 진 채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간다. 부모 형제가 헤어져 만날 수 없는 땅, 그들이 이제는 늙어서 오늘내일 사라질지도 모를 절박한 시간에, 무엇이 그리 중요하고 급한지 장벽은 높아만 간다.
그리고 영화 <코리아>는 20년 전 작은 통일의 추억이 보슬보슬 내리던 4월의 일본 지바로 우리들을 불러들였다. 우승과 함성, 그 외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코리아>는 ‘작은 통일’이 가져다준 눈물과 아쉬움에 대해 말한다.
한 달 남짓 어우러진 남북 오누이들의 갈등과 사랑과 분투와 이별….
그 속에선 여전히 서로 다른 반쪽에서 살아가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못한 아픔들이 판을 깨듯 툭툭 불거진다. 북의 시각으로 남을 대하고, 남의 시각으로 북을 대할 때 생채기를 피할 수 없다. 조금만 서로를 이해하고자 학습하였더라면 무지하여 무례할 까닭은 없었을 게다.

   
▲ 영화 <코리아>는 20년 전 작은 통일의 추억이 보슬보슬 내리던 4월의 일본 지바로 우리들을 불러들였다. 우승과 함성, 그 외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코리아>는 ‘작은 통일’이 가져다준 눈물과 아쉬움에 대해 말한다.
   
▲ 남북단일팀 사진. 왼쪽 뒷편에 리분희와 현정화 선수. 그러나 아직 새파란 그들의 젊음은 한 데 어우러져 뜨거운 용광로의 에너지를 끓여냈다. 그 힘으로 말이 통하였고, 마음을 통하였으며, 뜻이 통하였다. 그렇게 통하여 통일이 되었다. 두려울 게 없었고, 거칠 것도 없었다. 부딪쳐서 멍이 들어도 누군가 다가와 형처럼 누나처럼 쓰다듬었다.

그러나 아직 새파란 그들의 젊음은 한 데 어우러져 뜨거운 용광로의 에너지를 끓여냈다. 그 힘으로 말이 통하였고, 마음을 통하였으며, 뜻이 통하였다. 그렇게 통하여 통일이 되었다. 두려울 게 없었고, 거칠 것도 없었다. 부딪쳐서 멍이 들어도 누군가 다가와 형처럼 누나처럼 쓰다듬었다. 그들은 통일하여 함께할 때 강하고 행복했다.
이것을 실험이라 말한다면 그들의 실험은 성공이었다. 작은 통일로도 큰 통일의 희망을 지필 만하였다.
<코리아>는 그 희망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다시 지피려는 몸부림이다.


03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푸른 이상으로도 넘을 수 없던 높은 분단의 벽 앞에 다시 선다. 그들의 젊음으로 지핀 에너지는 넘을 수 없는 아득한 현실을 냉각수처럼 들이부어서 강제로 냉각시켜야 할 만큼 위험하였을까?

   
▲ 이별하는 사람에게 ‘편지 쓸게’ ‘전화할게’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인륜이다.
이별하는 사람에게 ‘편지 쓸게’ ‘전화할게’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인륜이다. 우리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였고, 또 누군가는 슬피 울었다. 남과 북을 나누듯 나눌 수 없는 눈물이었다. 눈물은 남과 북을 가로질러 흐른다.
탈북친구들의 학교인 여명학교 조명숙 교장이 <코리아>를 본 뒤 페이스북에 남긴 글은 그 눈물의 의미를 절절하게 추궁한다.

아이들과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북한 선수들의 사투리에 여명 아이들은 킥킥 웃었다. 그러다 체제에 눌린 북한 선수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나오면 아이들은 눈물을 삼키며 울었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정화가 리분희와 헤어지며 “이런 이별이 어디 있어? 전화할게라고도 하지 못하고 편지할게라고도 하지 못하는…” 하며 흐느낄 때 여명 아이들은 서럽게 꺼이꺼이 울었다. ‘너라도 살아라’ 하며 두만강을 건너게 해준 가족에게 안 굶고 잘 살고 있노라고 전화 한 통 못 하고, 편지 한 장 못 쓰는 자신들의 현실이 투영되어 우는 것이다.

남과 북이 함께 흘린 <코리아>의 눈물은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 역사는 물어야 할 게다. 누가 무엇으로 이 무지막지한 분단을 만들고 또 유지했는지, 하늘조차 허락한 인간의 권리를 도대체 어떤 권리로써 가로막았는지 똑똑히 캐물어야 할 게다.
오늘의 슬픔은 그 질문에 대답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위로받을 수 있을 게다.
 

 

박명철  aim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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