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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탈북자 가정, 안녕들 하십네까?본보, 가정의 달 맞아 한민족가족치유연구소와 공동으로 긴급 기획

가정의 달이다. 일년의 어느 달보다 가족간 대화와 웃음꽃이 만발하는 때다. 요 며칠 가족 단위의 나들이 객이나 외식하는 모습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2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의 가정은 어떨까. 유코리아뉴스는 한민족가족치유연구소(소장 임헌만 박사)와 공동으로 남한 내 탈북자 가정의 실태와 대책을 다루는 기획기사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탈북자들이 이름은 본인들이 요청에 따라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편집자 주

#1. 올해 결혼 6년차인 박미화(36)씨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10여년 전에 탈북한 박씨의 부모는 북한에서부터 이혼한 상태였다. 이후 박씨의 아버지는 중국 여성을 만나 지방에서 가정을 꾸렸고, 박씨는 남한 출신 남편과 시댁 식구를 지방에 남겨둔 채 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박씨 부모의 이혼 사유는 경제 문제였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보니 자연스럽게 각자 살 길을 찾게 됐다는 것. 탈북자 부부가 이혼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경제 문제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이혼한 상태에서 함께 탈북하게 된 데는 ‘어머니도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는 박씨의 주장이 아버지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처음엔 두 분이 다시 합쳤으면 하는 바람이 컸지만 나중엔 두 분의 선택을 존중하게 됐다”며 “두 분의 감정의 골이 어느 정도 메워져야 하는데 북한에서부터 생활이 열악하다보니 마음마저 메마르게 됐고, 결국 다시 합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박씨는 요즘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특히 가족 복지에 대해 배우면서 건강한 사회의 기틀이 가정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박씨는 “온전한 가정이 되어야 사회에서도 제 노릇을 하는데 탈북자 가정은 대체로 찢어진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가정 문제는 탈북자의 남한 정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2. 김은숙(45)씨는 처음에 요양원과 장애인 복지단체에서 재활담당 교사를 하다가 지금은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다른 탈북자들에 비해서는 안정된 직업이었지만 그럼에도 처음에는 많이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두 자녀를 데리고오는 데 들어가는 브로커 비용을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북한에 두고온 김씨는 남한 입국 후 탈북 남성을 만나 곧바로 재혼했다. 김씨는 “남편 직업이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 하니까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가정은 대체로 탈북과 강제 북송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의 과정을 밟게 된다. 다행히 김씨와 자녀들은 강제 북송되지 않고 무사히 탈북에 성공한 경우다. 김씨는 “탈북자 가정이 남한 적응 과정에서 파탄 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탈북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아픔을 치료하지 않은 채 재혼하기 때문”이라며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갖고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경험한 뒤에 재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탈북으로 인한 가정 해체와 남한에서의 적응을 거치며 그 상처는 고스란히 자녀들이 떠안는 경우가 많다. 탈북 1.5세나 2세들이 그만큼 가정 해체의 대물림 요인을 많이 지니게 되는 것이다. 대학교를 다니다 휴학 중인 김씨의 딸 강영숙(26)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새 아빠를 용서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 건 최근”이라며 “새 아빠를 사랑하지 못하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만큼 북한에 두고운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강씨는 올 가을 남한 청년과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 탈북자 이혜정씨(왼쪽)가 서울 강남, 자신의 집에서 본보 김성원 기자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3. 이혜정(42)씨는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딸과 서울 강남에서 살고 있다. 원래는 서울 노원구에서 탈북자들과 어울려 살았지만 3년 전 강남으로 이사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다.

남편은 이씨가 북한에 있을 때인 1990년대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소식이 묘연했다. 탈북 후 남한에 처음 입국했을 때는 남한 남자와 결혼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 주위에서 여러 사람 소개도 해줬지만 결국 접고 말았다. 자녀들 때문이다. 이씨에 따르면 지난해에 뒤늦게 입국한 큰딸은 학교 적응을 잘하는 편이지만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 이씨는 “빤히 아는 걸 자꾸 거짓말하는 걸 보고 처음엔 충격을 받았지만 북한의 폐쇄사회에서 부모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고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몸에 밴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둘째 아이는 도벽이 있다. 유독 지갑만 탐을 낸다. 이씨는 “둘째아이는 남의 지갑이 자기 손에 들어와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 한다”며 “만약 자녀들 없이 혼자 있었다면 결혼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떤 남자가 이런 아이들을 받아주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자녀의 도벽은 보통 부모의 사랑 결핍 때문에 생긴다는 게 상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씨 역시 탈북직후 북에 남겨두고 온 큰딸을 데려오기 위한  돈을 벌려고 새벽부터 밤잠도 자지 못한 채 일에 집중했다. 어린 딸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둘째딸 역시 탈북 가정이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인 셈이다.

흔히 이상적인 남녀의 결합으로 남남북녀(南男北女)를 꼽는다. 하지만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게 이씨의 귀띔. 재혼이든 초혼이든 길어야 3~4년밖에 같이 못산다는 것이다. 이유에 대해 이씨는 “남한 남자들이 대부분 북한 여자가 고분고분할 것으로 여기고  결혼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북한 여자들은 남한 여자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문화 차이,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대부분 결혼 1~2년 만에 파혼을 맞고 만다는 것.

탈북자들에게서 가정 해체 사례를 찾는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탈북자는 탈북 가정 열 곳 중 아홉 곳은 해체된 가정이라고 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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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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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4-11-23 16:38:08

    대한민국의 미녀들과 북한의 미녀들과 비교를 해보자면 생활방식과 문화방식이 달라서 혼란을 겪는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서울여자들은 도도하고 시크한데반해 평양여자들도 북한기준으로 시크하고 도도한여자지만 이여성들도 탈북해서 대한민국이나 선진국으로 오면 억척여성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날라리로 변하는건 순식간이더라구요?   삭제

    • 3353 2013-09-09 17:27:03

      경제적으로 궁핍한 북한의 사정 탓도 있고
      춥고 척박한 북한의 자연 환경 탓도 있고,
      혈통적으로 북방계 유목민의 후예 비율이 높은 탓도 있고.
      조선시대 소외지역이었기 때문에 유교적 교양이 부족한 탓도 있고

      남한 사람이 보기에 북한 분들은 성격이 강하고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기 보다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여성은 성격이 너무 강해서 남한남자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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