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문화
밥상 공동체 <밥심>을 읽고"너무 편해서 구겨신었던 신발" 같은 가족들에게
   
▲ 누군가의 발을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씻겨주고 있는 <밥심>의 저자 최일도 목사  -"밥심" 중에서 발췌-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몰려와도

변함이 없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망이 없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라고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우는 자와 함께 웁니다.

언제나 따뜻한 손길로 위로하며

그 눈에서 눈물을 씻겨줍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참아 냅니다.

사랑하기에 온갖 수모 다 겪으며

어려움을 반드시 함께 이겨냅니다.                    -다일 공동체 최일도 목사의 <밥심> 중에서-

 

이 책 중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옮겼다. 읽을수록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같은 책이다. 묵상하면 할수록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이 생각나는 책이다. 그대로 살아보려 하면 살아계신 '예수님'이 느껴지는 책이다.

위의 시 한편도 "예수께서...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요한복음 13장 1절 속의 그분이다.

언제나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품어야 하는 사이에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싫어하는가? 왜 서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세워주어야 할 관계속에서 상처를 입고 입히며 고통스러워 하는가?

이유는 한 가지.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밥상공동체, 가족인 까닭이다. 무관심이 아닌 희노애락의 깊은 관계속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가까운 나머지 "지킬 만한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어 버린 까닭인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최초로 가족을 창조하셨다. 성경도 깊이 들여다 보면 가족사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음에도 금기된 그 한 가지를 얻으려다 에덴을 잃어버리고 만 아담의 가족 이야기, 인정받지 못한 분노로 동생을 쳐 죽여버린 가인의 가족 이야기, 모두의 죽음 가운데 생존한 소수자로 술취하여 잠들 수밖에 없었던 노아의 가족 이야기, 비겁하게 살아남으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아내를 욕보일 뻔 했던 아브라함의 가족 이야기, 서로 복을 받겠다고 속고 속이는 야곱의 가족 이야기,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바람에 형제들로부터 따돌림 받다가 급기야 노예로 팔려가는 운명에 처한 요셉의 가족이야기, 이유없이 고통 당하는 남편을 향하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소리치는 아내를 둔 욥의 가족 이야기, 먹고 살겠다고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떠났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무일푼의 처량한 신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의 가족 이야기, 바른 소리하며 권위에 도전하려다 문둥병에 걸려 역사에서 사라져가는 누나를 둔 모세의 가족 이야기, 타락한 오늘날의 일부교회 같은 자녀를 둔 엘리 제사장의 가족 이야기, 충성스러운 가신의 아내를 가로채어 욕망을 불태운 까닭에 여러 아들로부터 왕위를 위협받으며 쫓겨다니는 신세가 된 다윗의 가족 이야기. 아버지 다윗이 물려준 광대한 유다왕국을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수많은 정략결혼으로 말년에 원치않는 가족사를 만들고야만 솔로몬의 이야기, 피로 얼룩진 가족간의 왕위 쟁찰전 등 애증으로 점철된 성경의 가족 이야기를  열거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이것이 성스러운 책 성경인가 싶다.

소설중에서도 삼류소설에서나 등장할 만한 막장 드라마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는 곳이 바로 이곳,성경인 것이다. 이와 같은 가족 이야기가 구약의 큰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지류에 해당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류가 모이고 시내를 형성하고 시내는 강을 이루어 도도히 바다로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 또한 한 마디로 말해서 죄인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가족 이야기다. 신약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사람인 베드로는 가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3년간이나 가족의 생계를 팽개쳐두고 예수를 따라다닌 사람이다. 마르다 언니 또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 듣기를 즐겨하는 동생 마리아를 기특하게 여기기는커녕  일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성토하는 가족 구성원이다. 물론 이외에도 자녀에게 들려주고픈,  제대로 된 제사장을 세우길 갈망했던 기도의 여인 한나를 어머니로 둔 사무엘의 가족이야기, 아름다운 고부관계의 대명사 나오미와 룻의 가족이야기  등 거룩한 열정을  아름답게 엮어낸 가족의 이야기도 무수하다.

이렇듯 가족에 관한 이야기. 이것이 성경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자녀관계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한다. 가족만큼 사랑을 기초로하는 관계가 그 이상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갈망할 때  음란, 간음 등 잘못된 부부관계로 묘사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밥상 공동체 <밥심> 또한  바로 이러한 죄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품고 함께 고통하는 가운데 승화시켜 놓았기에 더욱 아름답다. 읽을수록 눈물겹다. 저자가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듣는 이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하는 그 지극한 삶이 글 속에서도 느껴진다. 그의 외침이 곧 시가 되고 사랑이 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여기는 서울 청량리 밥퍼나눔운동본부입니다. 당신을 위해, 사랑을 위해, 저의 사명을 다해 정성껏 밥을 짓겠습니다.  <오늘은 5천만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굶주린 북녘땅 2천만 우리 동포들을 살리고>, 내일은 통일 조국의 7천만 겨례의 밥심을 모아 기근과 질병으로 처절하게 고통당하는 10억 이상의 지구촌 빈민들을 살리기 위해 세계로 미래로 함께 나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밥심으로..."

밥상공동체 <밥심>은 이제 시인 목사 최일도를 떠나 우리의 가슴속에서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잔인한 달이라 불리는 5월 가정의 달에 꼭 옆에 두고 오래 오래 씹으며 한가지씩 만이라도 실행해 보시라.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만 주의해서 살펴보면 바로 우리옆에 탈북민 가정이 우리의 <밥심>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너무 편해서 구겨신었던 신발 같은 가족들, '끝까지 사랑해야 할' 가족들에게도 실천해보자. 바로 지금부터, 여기부터, 나무터. 그래서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의 가족사가 아름다운 밥상공동체 <밥심>을 얻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이현희  ymcajane@daum.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