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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설리 같은 기장이 없다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리뷰, 보통사람들이 일군 기적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유난히 덥고 지난했던 여름이 가고, 9월 가을하늘은 거짓말처럼 푸르고 창창하다. 청명한 가을 날씨를 즐겨야 할 우리의 마음은, 그러나 어느 때보다 무겁고 엄혹하다. 근래 이렇게 시끄러운 9월이 있었는가 싶다.

북한의 핵실험, 남북정상간 막말파행, 함경북도의 대홍수, 경주 지진과 원전 위험성, 백남기 씨 사망과 부검을 둘러싼 대치, 국정감사 파행, 최순실 게이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과 대규모 파업, 사드 부지 확정, 세월호 특조위 해산 등이 9월 한 달간 벌어진 일들이다. 

   
▲ 9월 29일 개봉한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2009년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이 고장나자 허드슨강에 비상착수한 실화를 그린 영화이다.

다사다난한 9월이 거의 다 간 시점에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원제 : SULLY,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2009년 새떼와의 충돌로 두 개의 엔진을 잃은 여객기가 허드슨강에 비상착수한 실화를 그린 영화이다.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의 수는 155명, 구조된 사람의 수도 155명이다. 기장 설리의 냉정한 판단과 오랜 경험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한 사람은 당혹스럽다. 전조와 재난발생, 그리고 재난을 극복하는 인물들을 그리는 게 재난영화의 일반적인 문법이다. 그런데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은 재난영화의 기존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여객기 사고가 마무리된 시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의 일을 그리고 있다.

   
▲ 허드슨강에 착수하겠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 설리 기장. 그러나 그의 진짜 재난을 그 다음부터 벌어진다.

설리 기장의 진짜 ‘재난’은 재난 그 이후부터이다. 그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기에 공황장애와 트라우마를 겪는다. 매스컴의 과도한 관심은 그의 심리적 상처를 더욱 부채질한다. 그 와중에 국가운수안전위원회는 허드슨강에 착수한 설리의 판단과 대처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그가 승객들을 위험에 빠트린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설리는 155명의 인명을 구한 영웅이 아닌 155명을 위험에 빠트린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는지를 해명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결국 설리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주인공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감독이 말하고 싶은 주제는 설리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영화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영웅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 설리 기장은 국가운수안전위원회로부터 155명의 승객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책임추궁을 받지만, 결국 그의 선택이 옳았음이 밝혔진다.

구조에 참여한 사람 1200명. 허드슨강에 비상착수하는 여객기의 모습을 보고 달려온 여객선의 선원들, 뉴욕경찰들, 구조경비대원들, 그리고 위기상황에서 침착하게 자기역할을 수행한 승무원들과 승객들. 이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전원 구출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위기의 순간 기장으로서 담대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 설리는 그 1200명의 영웅 중 하나였을 뿐이다.

설리는 침수하는 비행기에 남은 승객이 없는지를 몇 번이나 살펴본 뒤 최후에 탈출한다. 탈출 후에도 155명 승객이 모두 무사한지 일일이 확인하는 책임감을 보인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세월호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55명을 구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4분, 세월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에 비해 얼마나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가, 누구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 설리 기장은 모든 승객을 탈출시킨 뒤 가장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이란 비행기는 지금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가. 그리고 수장이라는 사람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걸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 영화를 보고는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건 당시 미국인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자축했다고 한다. 9·11 테러와 금융위기 등 연속된 악재로 침체된 미국사회였다. 2009년 허드슨강의 기적은 국가가 아닌 보통사람들의 힘으로 155명의 생명과 함께 침체된 미국인들의 긍지까지 살려낸, 그야말로 기적이었던 것이다.

시끄러웠던 9월의 마지막 날, 세월호 특조위가 강제 종료되고 사드 부지로 성주롯데골프장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비상착수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이제 우리도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설리 같은 기장이 없다.  

이민혁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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