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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 실험과 한국의 대응 방향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S) '현안 진단'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연속 실험하자 전 세계가 어의 없어하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북핵 불용’을 강조해온 미국과 중국도 서로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마치 하나의 유리 건물에 두 가구가 살고 있는데 불만에 찬 한 쪽이 소란을 피우자 다른 쪽에서 차단막을 만들어 압박하고 상대는 더 큰 난동을 부리는 형국이다. 바깥 동네 사람들은 편을 갈라서서 유리 집이 깨지면 서로 상대 책임이라고 미리 떠넘기면서도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태는 없도록 하자고 서로 눈짓한다. 그러나 건물 안의 두 가구는 “유리 집에 살면서 돌팔매질 하지 말라”는 격언을 무시하려 든다. 난동을 피우는 쪽에서는 잃을 게 없다고 치지만, 상대적으로 크게 성공한 다른 쪽도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누구보다 한국이 냉정해야 한다. 북한의 무모함에 분개하고 흥분하면 문제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현실적 대책도 찾기 어렵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제기되고 있는 가설들부터 살펴보자.

첫째, 대북 압박을 계속 가중시키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제재 하에서 먼저 행동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전쟁 이래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북한을 적성국으로 지정하여 제재해 왔다. 2005년에는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사실상 포괄적 금융제재효과를 가져왔다. 이어서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 실험을 감행하자 유엔은 헌장 7장에 따라 회원국 모두가 대북제재를 가하도록 했다. 그후 세 차례의 핵 실험시마다 유엔은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이 달린 추가 제재로 압박했지만 북한은 버텨왔다.

유엔의 대북 제재는 미국과 중국의 타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숨 쉴 공간을 남겨둔다. 게다가 생존 문제가 걸리면 개인이나 체제나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강해지는 속성이 생긴다. ‘제재는 게으른 사람들의 외교수단’이라는 말이 있다. 제재목록을 정해주고 일선 집행기관에서 집행을 독려하면 된다는 정책 결정자들의 심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북한에 관해서는 이 비판이 맞았다.

둘째, 북한 체제가 종식되어야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좌절에서 나오는 희망적 사고이다. 북한이 극도로 불합리한 국가 자원 배분을 계속하는 한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압박과 고립을 먹고 사는 데 익숙해진 체제여서 언제일지 알 수 없다. 더욱이 중국은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한반도의 미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북한이 지금 같은 체제로 실전배치 가능한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붕괴보다는 낫다고 판단한다. 미국의 대중 봉쇄전략이 강화되는 추세에서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협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한국의 독자 핵 무장이나 전술 핵무기 반입으로 한반도에 ‘인도-파키스탄’형 공포의 핵 균형을 만들자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비핵 정책을 한·미 동맹의 불가결한 요소로 본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고,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밀리그램(mg) 단위 무기 급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분리 실험이 드러났을 때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나선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한국, 일본, 대만으로 이어질 핵 도미노 가능성을 용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약 동맹국(treaty allies) 중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핵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이 핵 무장하려면 물론 주한미군 철수도 각오해야 한다. 전술 핵 무기 재배치도 ‘확장억지’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의 전 세계 핵전략을 기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으로서 미국의 선택지가 아니다.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 핵 무기 배치 주장은 중국에 대한 압박에 의미를 두고자 할 것이나 미국의 정책을 알면 공허하게 들린다.

넷째, 핵 무장이 아니더라도 재래군비 강화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실질 군사비(징병제에 의한 인력예산 반영)는 이미 세계 8위에 해당한다. 30여년간 매년 북한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군사비를 투입하고 있다. 군비 경쟁은 힘의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상대 사이에 결말이 난다. 1차,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종식이 그랬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하단에 있는 남과 북의 경쟁은 결말 없이 출혈만 계속될 뿐이다. 다만, 최종적으로 군사적 수단이 불가피한 경우를 대비해서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이 능력도 독자적 사용권이 없는 무기도입보다 군사 작전권 전환이 우선해야 가능할 것이다.

다섯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처럼 담장을 높이 쌓을 것은 주장한다. 동북아에서 미‧중 대립의 구체적 상징이 되고 있는 사드는 검증되지 않은 실제 효과보다는 국가 안보의 부작용이 훨씬 크다. 대량살상무기가 동원되는 초단기 전쟁을 상정하면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은 북한의 공격에 노출시켜둔 채 몇 주일 후에야 부산으로 들어올 미군 증원군 보호를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가당치 않다.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국내 여론과 군부의 반발 때문에도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가 어렵게 된다. 잠시 심리적 효과는 볼지 몰라도 장기적이고 깊은 상처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고자 한다면 먼저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맞다. 지금 우리 국내에서 마치 사드의 찬반 여부를 아군과 적을 식별하는 징표(shibboleth)가 되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이 한반도의 주인 노릇을 하며 파멸적인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역겨운 것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대북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폭넓은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명분을 축적해야 한다. 그 명분은 외교적 수단을 소진했다는 데 동의할 때 나온다.

1989년 8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설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 동기를 분석하고 평가를 공유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정치적으로 정권의 권위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군사적으로 재래군비의 열세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원자력 에너지 확보를 위해 핵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4반세기에 걸쳐 이 동기의 충족과 핵 포기를 주고받는 방안을 협상해왔다. 실패를 거듭한 후 얻은 교훈이 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를 짚어내고자 한다.

중국의 협조 없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길을 열기 어렵다. 반대로 중국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불안정이 중국의 국가 발전 환경을 저해한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결합시키는 데서 해결을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병행하자고 제안 중이다. 11년 전 베이징의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 성명의 요체이다. 남·북·미·중의 공통인식을 반영한 것이었고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북한만이 이 합의를 이탈하고자 하지만 북한에게 결정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이탈에 반대하고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전 세계 핵 비확산 체제를 강화해야 하는 미국,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이 긴요한 중국,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던 하겠다는 북한 – 이 세 행위자의 요구를 담아내는 한국의 전략이 필요하다.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면 미‧북 관계와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미국은 금과옥조로 삼는 NPT 체제를 북한이 정면 위협하는 상태에서는 관계 정상화는커녕 심각한 대화조차 어렵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진지하게 비핵화의지를 밝히거나 중국이 북한 설득을 합작하자고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한, 북한과 협상하기 어렵다.

중국도 앞마당 관리를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은 과거 6자회담이 비틀거릴 때마다 “미국이 달나라까지 가면서 왜 평양은 못 가느냐?”고 불평했다. 미국이 다가서 주기를 바란다. 결국 미‧북‧중이 필요로 하는 요소들의 접목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비록 개성공단 폐쇄를 포함한 대북 제재의 최선봉에 서왔기에 행동반경이 좁아졌지만 아무리 늦어도 더 늦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협상해봐야 북한에게 핵 개발 시간만 준다며 우려한다. 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의 핵 실험은 양자든 다자든 협상이 좌초되었을 때 나왔다. 2006년 10월 1차 실험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6자회담이 1년여 좌초된 상태에서, 2009년 5월 2차 실험은 북한이 신고한 핵 시설과 물질에 대한 검증의정서 문제로 2008년 말 6자회담이 다시 중단된 후에, 2013년 2월 3차 실험은 미‧북간 소위 2.29 합의가 군사미사일과 위성발사로켓의 정의 문제로 파기된 상황에서 각각 나왔다. 이어 2016년 두 차례의 실험 기간에는 아예 협상이 단절되고 있었다. 북한은 무엇보다 중국이 동북아 정세안정의 핵심장치로 간주하는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핵 실험을 감행하지 못했다. 대놓고 중국의 뺨을 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여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수립을 골자로 하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과정에 들어가더라도 북한의 벼랑 끝 행동과 지지부진한 협상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달리는 북핵 기차를 뒤로 돌리려면 우선 정지시켜야 한다. 일단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지시키는 과제를 중국이 짊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과 한국도 중국에 최소한의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 결국 한국이 한‧미 동맹을 동북아에서 대결보다 협상 지향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한국이 이끌어야 할 최대의 과제이다.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전 외교통상부 장관

송민순  ifes@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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