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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가로챈 사랑의 편지들...‘끗트로 악쓰 키수’주인찾지 못한 1950년대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편지 엮어 책으로 출판

 
“편지 뭉치 속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사연이 달랐다. 편지의 주인공들이 자기들끼리도 서로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어느 엄마는 처음 보는 젊은이의 손을 잡고 자기 아들인 것처럼 못다 한 정담을 나눴고, 어느 남편은 처음 보는 아낙과 자기 아내인양 두런거렸다. 이렇게 편지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 이흥환 엮음, 삼인 펴냄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는 62년 전, 그러니까 한국전쟁시기에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미 국립문서보관서의 창고 안에 잠들어 있는 편지들을 모아 엮었다. 대부분 1950년에 쓰인 것들로 한국전쟁 발발 진전, 또는 직후에 [조신인민군 우편함 4640호]로 도착한 가슴 찡한 사연들이다.

인민군대 나간 남편에게 아내가 쓴 편지, 인민군 여전사가 고향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 어머니와 헤어져 평양 빈 집에 홀로 남은 아들이 고향 형한테 쓴 편지, 모스크바의 아내가 평양의 남편에게 쓴 편지, 그리고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편지에는 당시 한반도를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재증 동무
동무에게 꼭 부탁하는 것은 어머님이 자식을 서이식(셋씩) 전선으로 내보내게 되어 서운하실 것인데, 동무들이 만히(많이) 위려하여(위로하여) 주십시오. … 옆서가 없어 이렇게 보내여 미안하오. - 1950년 10월 8일


짧은 편지이긴 하지만 왜 동네 친구들에게 어머니를 찾아가봐 달라고 어려운 부탁을 했을까? 자식 셋을 한꺼번에 군대에 내보내고 홀로 남은 어머니 때문이다. 입대한 아들로서,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저자는 이 편지를 해석하며 “그렇다고 이미 숯검댕이 됐을 어머니의 속이 하얘졌을 리야 없겠지만”이라고 사족을 붙이고 있다. 전쟁이 가져온 가족의 비극이 오롯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를 애써 숨기고 가족을 안심시키려는 편지들도 몇몇 발견된다. 다음은 북에 가 인민군 된 동생이 충북 청원군 오창면 기암리의 형에게 보낸 편지다.

형님 전 상서
기간에 양친 부모을 모시압고 가내 저택이 귱녕들 하시옵나이까. 집을 떠나온 만고 불효 석준은 아버님도 베압지 못하고 북방의 먼 길을 떠나와 인민군에 입대하여 부모와 가치(같이) 사랑해주는 군관들의 따뜻한 구염 속에서(귀여움 속에서) 사무 보기에 여염이(여념이) 업습니다. 그리고 석윤이와 함께 있사오며, 봉규는 도중에 갈리엿으메(갈리었기에) 안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격거(겪어)보지 못한 뜿박긔(뜻밖의) 꿈과 가튼(같은) 고귀한 생활에서 노픈 비게에(높은 베개에) 대평한 침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의 염녀난(염려는) 추호라도 마시앞고 양당 부모와 형님네들 만수무강하시압고 답장하야주시앞소서.
저는 매일 고기가 멀미 나고 쌀밥이 실어(싫어) 진실노(진실로) 집에서 먹든 죽과 보리가 다시 먹고 싶습니다.


저자는 편지를 쓴 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본다. ‘고기가 멀미 나고 쌀밥이 싫어’할 정도의 인민군 생활은 흔치 않았다는 분석이다. 사무실에 있는 군관들에 의해 꾸며진 편지가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는 고향에 있는 형과 부모를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 미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 편지를 대량 노획한 것으로 1950년 9월~10월 사이의 편지들이 가장 많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글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오간 편지를 읽을 때는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

봉석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 당신 편지를 받아 보고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한끝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며 편지 보았습니다. 그리 알으시오. 나는 당신의 몸 조심하기를 특히 부탁합니다. 칠월이 닥쳐오면 면회를 가겠으니 봉석이 아버지는 요구되는 것을 부탁하시오.
… 그리고 망나(막내) 아주버님이 일하시고 집에 들어와 말도 안 할 적에는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은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 하나밖에 없습니다. 해답 빨리 해주시오. -1950년 6월 8일

칠월이 오면 면회를 가겠다고 하였으니 사랑하는 사람(봉석이 아버지)을 만났을까? 그러나 편지를 쓴 6월 8일과 다가올 7월 사이에는 ‘6월 25일’이 끼어있다. 자기 생각해줄 사람이라곤 ‘당신 하나’밖에 없다하였는데, 그녀는 전쟁을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확실한 것은 이 편지가 봉석이 아버지께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아내가 조선의 남편 ‘김 동무’에게 쓴 편지는 더 사랑스럽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요. 시시로 보고 싶은 그 얼굴, 사랑하는 마음과 애정에 불타오르는 이 내 마음을 이대로 둘 수 없습니다. … 여기 아침저녁 때마다 군관 동무들 식사하시러 오실 때에는 당신도 오시는 것 같지요. 당신이 학교 가던 길에 뚜렷이 나타나 쳐다보면 당신 학교 다니든 발자국도 그림자도 아무 흔척이 없어, 눈시울이 까물거리며, 학교에 갓다 집에 오면 당신과 같이 웃고 즐기고 다투던 그날도 다시금 그리워서 머릿속에 버리지지게(벌어지게, 그려지게) 됩니다. - 1950년 6월 27일


   
▲ 끝인사로 '끗트로 악쓰 키수. 끝.'이라 쓴 것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프다. 편지를 쓸 당시 이미 조선에는 전쟁이 났지만, 편지를 쓴 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편지의 마지막에는 ‘끗트로 악쓰 키수. 끝.’이라고 썼다. ‘끝으로 악수 키스. 끝’이라는 뜻으로, 애교가 넘친다. 아마도 헤어질 때는 항상 악수와 키스를 하였나 보다. 헤어져 지낸지 1년이 지난 이 부부는 다시 옛날처럼 만나 악수하고 키스할 수 있었을까? 편지는 6월 27일에 쓰였다. 조선에서는 이틀 전 전쟁이 터졌는데 아직 그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것이다. 평상시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마저도 ‘김 동무’에게는 전달되지 못하였다.

엮은이 이흥환은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에 있던 편지 1068통을 전부 다 읽었다. 그는 이 편지들에 사랑, 원망, 분노, 번뇌, 탐욕, 이기심, 고뇌가 한꺼번에 여과 없이 노출된다며 “전쟁기 1차 사료(史料)로 평가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게 편지 뭉치와 함께 우르르 쏟아져 내린 사람들이 가르쳐 준 거라 한다. 
"남과 북은 이제 ‘괴뢰’ ‘반동’ ‘빨갱이’ ‘원수’ 같은 단어에 자극받고 흥분할 나이가 지나지 않았을까. 광기나 광분은, 역사가 이미 입증했듯이, 때가 되면 제풀에 스스로 수그러들고 마는 것이다. 체제, 이념, 사상도 사람 앞에서 때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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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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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달래 2012-05-08 14:34:47

    지난세월 이겨내야 만 했던 아픈 민족의 비극이 고스란히 녹아져내립니다.
    이제는 더이상 분단의 아픔을 감수할수만은 없지요. 조금씩,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것 같아요.   삭제

    • 임정은 2012-05-01 10:55:24

      이 책 보고싶어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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