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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순이' 동명숙씨의 억센 남한 정착기경북 안동 식당일, 세무회계학원 원생, 안동사과 판매, 동국대 대학생...?

동명숙(36)씨는 ‘억척 탈북 아줌마 대학생’이다. 많은 수식어는 그만큼 악착같이 살아온 삶을 대신 말해준다. 동씨를 만나 인터뷰한 건 지난달 말, 동국대 서울캠퍼스에서다. 기사가 늦어진 건 전적으로 필자의 게으름 탓이지만 한 마디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만큼 기구했던 동씨의 삶의 궤적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동씨는 2000년대 초 탈북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먼저 탈북해 남한에 와 있던 부모의 도움을 입은, 전형적인 가족 연계형 탈북이다. 동씨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의사로 일했었다. 하지만 극심한 식량난 앞에 ‘엘리트 직업’은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친척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탈북해 2001년 남한에 정착했던 것.

탈북자들은 흔히 서울이나 경기도, 부산 같은 대도시에 배치를 받지만 동씨의 아버지는 경북 안동에 거주하고 있다. 사연이 있다.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의 6개월 교육과정은 마지막에 ‘거주지 뽑기’로 마무리된다. 그때 동씨의 아버지가 뽑은 거주지는 부산이었다. 하지만 같은 방을 쓰던 20대 청년은 안동을 뽑았다. 그 청년은 절망적이었다. “내가 농촌에 가서 뭘 해먹고 살겠습니까?” 탄식했다. 아버지는 선뜻 자신이 뽑은 부산표를 내밀었다. “나는 늙었으니까 아무 데나 가서 살 수 있으니 괜찮아”라는 말과 함께.

   
▲ 동명숙씨와 동국대 커피숍에서 2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얼굴 대신 등을 보인 것은 북한에 두고온 친지들 때문이다. ⓒ유코리아뉴스 구윤성

동씨의 아버지는 안동에서 아파트 경비, 막노동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북한에서부터 달고온 위장병 때문에 몇 번 수술을 하느라 쉬는 날이 많았다. 결국 함께 온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나중에 입국한 동씨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안동에 배치됐다. 20대 중반의 탈북 여성이 지방 소도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동씨가 선택한 일은 식당 홀 서빙. 말이 홀 서빙이지 주인 눈치에 손님 눈치 보랴,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설거지까지 감당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꽃같은 탈북 처녀가 퉁퉁 부은 손으로 어깨, 허리에 파스를 붙인 채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럽다. 편하게 돈버는 방법도 많은데 뭣 하러 그 고생을 하느냐”며 유혹하는 이들도 있었다. 식당 화장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 없이 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동씨는 “무한 생존경쟁의 자본주의체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며 “적응하여 살아남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포성 없는 전쟁과 같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유혹의 손길들이 뻗쳐올 때도, 마음이 약해질 때도 동씨는 단호히 뿌리치고 마음을 다잡았다. 안동 사람들이 자신이 탈북자인 것을 다 아는데, 자신을 보며 탈북자 전체를 평가할 것을 생각하니 아무렇게나 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북녘 동포들도 생각했다. 죽지 못해 사는 불쌍한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니 쓰러질지언정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3년만 버티자.’ 식당일을 시작하며 동씨가 이를 악물고 다짐한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을 버텼을 때 동씨에겐 80만원이란 월급 봉투가 주어졌다. 그걸 손에 쥐고 밤새 고민했다. 그리고 이튿날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월급 봉투째 내밀며 3년 만기 적금에 들었다. 결심이 약해질까봐 아예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혹독한 대가도 치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차비를 아끼겠다며 식당까지 40분 거리를 걸어서 다녔을 정도다.

식당일을 끝내자마자 2006년, 결혼이라는 게 그녀에게 찾아왔다. 선을 본 상대는 안동이 고향인 시골 총각이었다. 조그만 회사에 다녔다. 시부모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안좋았지만 그래도 남한 정착만으로도 감사한 데 남한 사람을 만났다는 게 너무나 뿌듯했다.

결혼과 함께 동씨는 식당일 대신 배움을 시작했다. 여기엔 힘든 식당일을 3년 동안이나 해냈다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배어 있었다. 세무회계학원, 컴퓨터 학원을 연거푸 다녔다. 자격증이 있어야 취업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세무회계자격증도 당당히 땄다. 합격생은 전체 수강생의 3분의 1밖에 안되었다. 그 속에 탈북자인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컴퓨터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자신이 자격증을 따면서 배운 회계 프로그램과 안동의 회사 프로그램이 호환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안동이 외진 곳이란 걸 깨달았다. 결국 회계사무소 취업을 포기하고 안동사과 판매업체에 입사했다. 판매는 물론, 고객관리, 배송 처리 일까지 했다.

   
▲ 동씨와 동씨의 탈북 친구이자 북한학과 후배인 이경희(가명)씨가 캠퍼스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08년 1월, 출산을 앞두고는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다. 조산기가 있어서 병원에 가서 아기를 낳았는데 낳고보니 난소가 무척 부어 있었던 것이다. 악착같이 일한 게 화근이었다. 애기 낳기 전날에도 새벽 2시까지 일했을 정도니까. 조금만 늦었어도 난소가 터져 생명이 위험했을 거라는 게 병원측의 설명이었다. 아울러 난소암일 수도 있다며 조직검사를 위해 대구의 병원으로 일부 조직을 보냈다. 동씨는 그 기간 부정, 좌절, 체념, 수긍 등 암환자가 겪는 심리적 상태를 모두 경험했다.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죽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남한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을 줄은 몰랐어요.”

차분히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동안 가입했던 보험사에 알아본 결과 난소암일 경우 50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었다. 그걸 가지고 마지막으로 세계 일주를 하고, 남은 돈으로는 대학을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난소암이 걸려 사망하기까지는 평균 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난소암은 아니었다. 난소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난소기형종이었다. 그때 동씨가 깨달은 게 있다. ‘아둥바둥 오래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대학 진학을 결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가족들도 설득 끝에 동의해주었다. 문제는 등록금이었다. 탈북자들에겐 대학 특례입학뿐만 아니라 장학금 혜택도 있었다. 장학금 수혜 자격이 문제였다. 2009년 당시 장학금 수혜 대상은 한국에 입국한 지 5년 미만에 나이도 35세 미만이어야 했다. 동씨에게 걸리는 건 입국 5년 미만이라는 조건이었다. 동씨는 이미 5년을 넘긴 때였던 것이다. 동씨에게 장학금 없이 한 학기 450만원을 부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망설였다. 자신의 꿈이 아무리 중요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탈북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은 북한이탈주민후원회(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신) 법률이 바뀌어서 나이만 맞으면 입국 연한에 상관없이 장학금 혜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후원회의 답변도 ‘장학금 지원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대학을 고르는 일만 남았다. 만약 동씨가 취업만을 고려했다면 유아교육과나 사회복지학 전공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씨에게 이제 취업이나 돈벌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남북 통일을 위해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동국대 북한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탈북자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인데다가 졸업 후엔 통일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기를 읽은 교수들이 그녀를 무난히 합격시켜줬다.

그렇게 해서 2010년, 10학번으로 동국대 북한학과에 입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탈북자나 탈북 대학생으로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강의를 몇 번 다니거나 교회만 몇 군데 다녀도 어렵게 일해서 버는 아르바이트보다 나았다. 하지만 동씨는 학교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공부에 지장이 없으면서도 성실하게 일한 대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동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공부도 악착같이 했다. 한 학기가 끝나고 성적이 나왔다. 과 수석!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알고 있었느냐”면서 정부의 장학금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는 통보였다. 청천 벽력이었다. 당장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따졌다. 처음엔 담당자가 오리발을 내밀더니 당시 담당자의 답변 내용을 증거로보여주니까 ‘죄송하다’고 했다. 특유의 억척스러움으로 통일부, 법률구조공단, 교수들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결과는 지원재단의 과실도 커지만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거였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 언론에 알릴까도 생각했지만 근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될 거라는 판단이 앞섰다. 어렵사리 학비는 해결했지만 지금도 그녀는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탈북자 지원 법률이 계속 바뀌어온 데다가 탈북자 지원금 관리가 허술하다보니 정부의 탈북자지원금 책정은 늘어나도 정작 탈북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는 것”이라며 "이것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질 통일부의 제대로 된 역할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꿈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원래는 안동이 속한 경상북도의 탈북 공무원으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무원들을 몇 번 상대하다보니 상명하복식의 직업형태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시민단체 쪽이나 국회의원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실제적인 탈북자 정착, 평화통일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 남한의 대학생으로 당당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동명숙씨(왼쪽).

남한 내 탈북자 단체에 대해서도 동씨는 “기존 탈북자 사회의 목소리는 대부분 보수, 우파쪽이 많은데 내가 생각하기엔 신념보다는 생계형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탈북자나 탈북 단체들이 외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 천편일률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젊은 탈북자들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동씨는 이것을 일종의 ‘탈북자 사회의 세대교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탈북 청년들은 이념에 구애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자유를 방종과 타락으로 오인하는 일부 그릇된 탈북자들도 분명 있습니다. 비록 일부지만 이들에 대한 편견을 산산히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 젊은 세대 탈북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 남쪽까지 목숨을 내걸고 오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당당히 캠퍼스를 누비고 있는 ‘아줌마 대학생’ 동씨의 모습에서 당당한 남한의 시민으로서, 통일 시대를 열어갈 주역으로서 내일의 탈북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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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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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ㅡ,ㅡ;; 2016-10-02 21:41:25

    지방소도시가 그렇게 살기 싫은가? 대도시가 아닌 안동에 임대주택을 받아서 왜? 불만이지?
    인서울 대학교에 탈북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것도 장학금 지원도 임대주택도 솔직히 엄청난 혜택들 아닌가?사실상 엄청난 혜택들을 받고 있는 자신인데 탈북자 지원을 더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해괴한데 더 뜸금없는 건 남한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직업인 공무원 직원도 상하관계 때문에 하기 불만이니까 시민단체나,국회의원하겠다니;;   삭제

    • 박혜연 2016-01-10 18:45:31

      2016년 병신년에도 동명숙씨 힘내십시오~!!! 화이팅~!!!! *^^******   삭제

      • 박혜연 2014-11-04 23:49:20

        동명숙씨같은 진보탈북자들이 많아야 대한민국과 북한이 통일되는거다!   삭제

        • 단군자손 2012-08-01 18:11:46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통일을 이루는 길에 빛과 소금으로 자리매김하여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힘찬 격려와 지지를 보냅니다.   삭제

          • 배달민족 2012-06-07 18:19:58

            화이팅!! 지금 품은 뜻을 변치 말고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더이상 분단의 고통을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됩니다. 진심으로 거듭 박수 드립니다.   삭제

            • 김호성 2012-05-29 15:23:09

              공짜는 없고 더구나 쉽게 돈버는 방법도 없다. 꿈이 있으면 뜻이 있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할수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그렇게 해서 통일로 가는길에 튼튼한 디딤돌이 되어주실걸
              기대해 봅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마음으로나마 지원합니다.   삭제

              • 안동예안 2012-05-22 14:53:22

                그대를 응원합니다...   삭제

                • 파도 2012-05-08 12:18:05

                  멋진분이시네요. 님의 미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삭제

                  • 푸른 하늘 2012-05-07 01:08:18

                    동명숙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꼭 학업을 마치셔서 통일을 위한 귀한 도구로 사용되길 소망합니다ㅏ^^   삭제

                    • 평화통일 2012-05-04 10:46:45

                      큰 쓰임 받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랑스러운 통일역군이십니다.   삭제

                      1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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