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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의 연해주 평화통일 역사탐방 소감

(사)뉴코리아(이사장 이만열)가 지난 7월 25일부터 30일까지 연해주 평화통일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대학생, 목회자, 변호사 등 20여 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크라스키노, 우수리스크 등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본 이번 탐방을 통해 참석자들은 어떤 경험과 소감을 갖게 됐을까? (사)뉴코리아로부터 참석자들의 소감문을 받아서 게재한다. 3시간도 채 안되어서 도착하는 러시아 땅, 그곳에서 남북의 현실, 그리고 미래를 훨씬 객관적으로, 훨씬 넓게 바라보고 꿈꿔본다면 꽤 괜찮은 여름여행 아닐까. -편집자 주

   
▲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앞에서 ⓒ(사)뉴코리아


과거와 현재의 아픔에 탄식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신영욱/ 예사랑선교회 대표

지난 7월 25일부터 30일까지 5박 6일의 일정으로 (사)뉴코리아(이사장 이만열)에서 진행한 연해주 평화통일 역사탐방을 다녀올 기회를 가졌다. 2010년 속초항에서 배를 타고 자루비노항을 거쳐 중국 훈춘으로 들어가는 길에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지나치면서, 언젠가 다시 와서 제대로 그 땅을 밟아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6년 만에 꿈을 이루었다.

연해주 지역은 과거 삼국시대에서 남북조시대로 넘어가면서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과 거란족을 규합하여 발해왕국을 건설했던 곳이고, 가까이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농민들이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조중러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결코 잊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땅이기에 남다른 감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주요 일정은 안중근 의사의 단지(斷指)동맹비와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및 최재형 선생의 유택과 신한촌(新韓村) 기념비 등을 둘러보며 이만열 교수님의 식견 높은 역사특강을 현장에서 듣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아울러 연해주 최남단 핫산을 방문하여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두만강 철교 건너편 북녘의 산하와,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 지척으로 느껴지는 중국 방천의 전망대를 바라보고, 조중러 3국 경계비를 쓰다듬으며 분단의 아픔을 실감할 수 있었다.

   
▲ 크라스키노 들판에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참석자들 ⓒ(사)뉴코리아

이러한 아픔은 단지 피상적인 과거의 역사가 아니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가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60년 만에야 고향인 연해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고려인 할머니들의 피맺힌 체험을 들으며, 지금도 남의 나라에 와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벌어 상부에 상납하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된 삶을 이어가는 북한 근로자들의 남루한 행색을 보면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때 민초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과거와 현재의 아픔에 탄식을 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고려인 문화센터를 방문하여 고려인 4-5세대들의 민속공연을 보며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끈질기게 지켜온 겨레의 넋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광활한 연해주 대평원에 농장을 일구어 그 땅을 식량 농업 생산기지로 변모시키고 있는 대기업과, 규모는 비록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나 북한지원의 교두보요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촌을 준비하는 민간단체들의 숨은 활동들을 봄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미래의 희망과 사명을 다지게 되었다.

통일로 가는 길 환히 비추리라

방민정/ 삼일교회 청년

이번 연해주 역사탐방은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안개에 눈이 가리워진 것처럼 항상 분주하고, 내가 주인 되어서 무언가를 ‘잘’ 해보려는 생각이 저와 하나님 사이에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멈추어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 민족을 긍휼히 여기심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픔을 싸매시고 축복의 통로로 준비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저는 통일에 대해 생각할 때 북한과 남한의 상황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착하고 있는 수많은 탈북민들을 보면 희망이 생기다가도, 그들을 돕기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우리를 보면 답답했습니다. 저는 외가와 친가 모두 해방전후에 북에서 오셔서, 할아버지가 늘 통일을 바라셨던 걸 기억합니다. 한민족임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제 세대 때 통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너무 멀어질 것 같은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해주에서 함께 찬양하는 고려인 할머니들, 민족 문화를 지키려는 고려인 5, 6세들을 보고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그 움직임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흐르고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슬픔을 변화시키고 계신 주님께서 디아스포라들을 모으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데 얼마나 풍성한 기쁨을 가지고 계실까요?

   
▲ 크라스키노 벌판에 방복한 젖소들 ⓒ(사)뉴코리아

‘평화’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게 평화는 서로를 인정하며 다투지 않는 정도의 막연한 이미지였습니다. 드넓은 연해주를 차로 오가면서 ‘나라를 뺏긴 막막한 상황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굳은 믿음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물음이 생겼습니다. 우리 민족이 발해와 고구려 땅을 누볐던 것도 긍지가 되었겠지만,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신,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만세를 외쳤을 그들을 떠올렸습니다. 평화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생명을 돌보려는 싸움, 승리를 믿는 믿음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역사를 희미하게 아는 만큼이나 우리가 누리는 삶에 대한 감사도 옅었던 것에 반성합니다. 이제는 참 공부를 시작하고 변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중국, 러시아, 북녘 곳곳에서 기도하고 애쓰시는 믿음의 선배님들, 이만열 교수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현장에 있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들을 때 놀랍고 기뻤습니다. 우리에겐 사랑도 없고, 앞을 보는 눈도 없지만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앞서 행하시고 우리의 가진 작은 것을 한데 모으셔서 역사하심을 보니 너무나 설레입니다. 선교사님들이 겸손함으로 주님을 바라는 모습이 제게는 큰 감동이었고, 꼭 닮고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롤 농장, 농군학교, 우수리스크 센터, 크라스키노 센터... 모두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통일로 가는 길을 밝히는 데 쓰임 받으리라 믿습니다. 그 땅을 섬기고, 먹이고, 함께 일하고, 축복하는 공동체가 일구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별들을 이어보면 밤하늘에 그림이 그려지듯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려내는 작품이 되길 소망합니다.

연해주 역사탐방에서 느낀 점

이장한/ 삼일교회 청년


이번 7월 연해주 비전트립을 통해 느낀 점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겠다.

첫째,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은 통일운동으로 계승되어야만 한다.
현재는 과거의 역사적 전통을 통해 형성되고 규정되어진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시대정신은 과거의 역사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가 없다. 과거의 진보는 현재의 보수가 되고 현재의 진보는 미래의 보수가 되며 역사는 발전되어 간다. 과거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은 당시 진보주의자들이었으나 현재는 김구, 안중근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은 어느덧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끄는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역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의미에 있어 진보는 분단의 고착화와 분단세력과 싸우는 통일운동이 바로 진보의 길인 것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의 선지자들이 분단국가를 예상하며 통일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해주의 시계는 서울 도심에 비해 무척이나 더디게 가는듯하다. 그러나 그 움직임 속에는 큰 수레바퀴를 돌리는 듯 정중동하며 조금씩 일구어 갈 통일을 만들어가는 듯하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 크라스키노 센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참석자들 ⓒ(사)뉴코리아

둘째, 공산주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당시 한반도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자가 80% 이상이었다.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 연안파 독립운동 세력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독립운동의 최전선이자 전초기지인 만주지역 또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역시 사회주의자였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제 치하 주민들은 사회주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게 높은 신뢰도를 보이곤 했다. 해방 이후에도 80%가 넘는 지지율은 이를 뒷받침한다.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이데올로기가 바로 사회주의이거나 공산주의였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사조는 미군정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한반도 이남의 주민들은 극심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게 되고, 이후 반공을 국시로 삼는 냉전적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명시한대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미군정 이후 수립된 1948년 정부가 아닌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상해임시정부에서 그 정통성을 찾는다면 당대 활동했던 대다수의 사회, 공산주의 항일 무장투쟁사와 독립운동사들을 대거 재평가 할 필요가 있겠다. 남북 역사학자들간의 학술교류를 통해 보다 입체적이고 균형감 독립운동사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재외 한인 동포들에 대한 지원과 혜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연해주 고려인들에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후 러시아 내 많은 부분에서 고려인들의 차별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부분은 이는 재일동포나 재중동포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재외동포와 한국은 바로 역사적 운명을 같이하는 민족공동체인 것이다. 민족의 개념은 국가의 개념보다도 보다 포괄적이며 보다 주관적인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디아스포라 한인들에게 한반도는 단순 노스탈지아를 넘어선 스스로의 존립 근거이자 정체성의 모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그간 우리 정부의 재외동포 사업은 관변단체 위주의 물적 지원에만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재외동포를 철저히 타자화하고 우리 국민과 정부적 시각에서만 바라본 극히 일방적이고 편협한 시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지금도 많은 한인동포들이 실망하며 고국을 떠나고 있다. 재외동포는 남한과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통일전도사이다. 또한 이들은 한인의 자부심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외교사절단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뿌리내린 디아스포라 한인동포들은 비록 멀리 있지만 우리나라의 국운과 함께하는 역사적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이들에게 베푸는 특혜와 지원은 국권을 잃었던 과거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연해주에서 남한을 돌아보다

이소정

우연한 기회에 잘 알고 지내는 분의 제안으로 탐방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관심 갖고 있던 두 가지 주제인 평화와 통일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바로 여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작스레 동참하게 된 이번 여행은 한반도의 통일문제가 러시아와 연해주 지역, 고려인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게 해주었고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해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첫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블라디보스토크는 초록빛의 밀림, 아마존처럼 보였습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땅. 미개척지,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 크라스키노의 선교관은 생각보다는 훌륭했지만 그곳에서 겨울을 견딘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한국에서의 안일했던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세 나라-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바라보는 두만강 철교와 두만강. 북한을 지나다닌다는 철도를 눈앞에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첫날엔, 둘째 날 기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 북러 접경지역 핫산에서 두만강 철교를 뒤로하고. ⓒ(사)뉴코리아

계속해서 ‘왜 내가 여기에 왔을까? 이곳에 보내셨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선교지에 대한 기도보다 내가 살고 있는 남한땅을 위한 기도가 먼저 나왔습니다. 풍요와 안일함과 살인, 거짓, 자살, 분노, 성적 사욕과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남한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오는 회개기도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통일이 된다면 한국 사회의 이런 모습들이 통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그동안 선교나 선교지에 대해 일부러 무관심했던 나. ‘누군가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나.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하는 선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의 역할에 다소 무력감을 느끼면서 교회 안에서의 삶보다는 교회 밖에서의 삶에 더 관심을 갖고 지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한국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교회 밖에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회 안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 함께 고민하고 얘기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탐방 내내 독립운동의 씨앗을 품고 여기 저기 산화하신 독립운동가들을 만나고, 이제 새로운 역사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씨앗을 품고 뿌리시는 선교사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제 안에 씨앗을 심으시고, 더 나아가 뿌리시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라는 마음을 주십니다. 저보다 한걸음 앞서 행하고 계셨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뉴코리아  dwarrior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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