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남북관계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가 한국에 경고하는 미래: 고립과 대립의 동거동아시아재단 정책 논쟁 제55호

흔들리는 세계: 고립주의와 대결주의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표현이 많이 나왔다. 과연 브렉시트의 투표 상자가 판도라의 상자였을까?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브렉시트와 트럼프현상은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유권자들의 좌절감, 반이민정서와 외국인혐오, 그리고 국제제도에 대한 반감과 고립주의 등이 분출하는 신호탄일까?

세계는 시장의 확대를 통해 번영을 이루었지만 공짜는 없었다. 번영의 과실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고 희생과 불평등을 낳았다. 구미 선진국들은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그 과실을 가장 많이 획득한 승자였지만, 내부에서는 패자가 양산되었다. 세계화에 특화된 기업과 자본은 기회와 이익의 엄청난 확장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중하층 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자산하락으로 고통 받았다. 경제뿐 아니라 국제정치질서의 변동까지 배태한다. 브렉시트는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와 독일과 프랑스에 밀려난 자존심 훼손이, 트럼프 현상은 재정위기 이후 미국의 위상 하락과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브렉시트의 ‘영국 우선주의(Britain First)’가 표방하듯이 내부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린다. 패권의 추억은 강경한 대외정책을, 국제협력에 대한 피로감은 고립주의를, 개방과 이민에 대한 반감은 인종주의를 부추긴다. 이로써 고립주의와 대결주의가 공생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안보위협을 과장하고, 군비경쟁을 부르짖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향해 가고 있다.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연구소의 이반 크라스테브(Ivan Krastev)는 브렉시트를 가리켜 독일의 통일을 가져온 흐름을 역전시키고, 멀리는 1945년 전후 유럽체제가 지향했던 협력과 통합이 해체되는 출발점으로 본다. 정작 마그마가 끓고 있는 곳은 동북아다. 분단과 냉전체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다시 분열과 대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신민족주의의 발흥과 경쟁적 군비강화는 타 지역보다 훨씬 더 심하다. 오바마, 시진핑, 아베, 푸틴, 김정은, 박근혜 정부는 하나같이 국내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안보 포퓰리즘에 의지하고 있다.

국내 반응과 쟁점들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과 해석은 다양한 동시에,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트럼프 현상은 개인의 일탈 또는 고도의 선거 전략일 뿐이라는 분석에서부터 기성 정치경제질서에 대한 본격적인 반발이자 글로벌한 함의와 확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제시된다. 브렉시트 역시 정부를 향한 영국 노동자들의 일회성 ‘발차기’라는 분석부터 신자유주의의 균열이라는 해석까지 제시된다.

한국에서 트럼프 현상은 안보적 영향에 대한 쟁점이 주로 부각된다. 트럼프는 고립주의 대외정책을 주창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군대를 강력하게 재건해서 대적상대가 없게 하겠다고 호언한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방위분담금을 늘리든지, 그게 싫다면 미군은 철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국의 보수층은 불안감 속에서 미국은 법치와 시스템의 나라이므로 대통령 교체만으로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미동맹 역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방위비 분담 증가나 보호무역 압력에 관해서는 한국의 설득에 따라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는 식의 희망적 사고가 지배한다. 진보 측은 트럼프의 극우적 성향에 대한 혐오에는 한 목소리를 내지만, 민주당의 연속집권으로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나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차라리 미군 철수나 김정은과의 직접 협상을 거론하는 트럼프에게서 변화를 기대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을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다.

브렉시트는 경제적 파장이 주로 부각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서 당연히 악재이며, 당장에는 외환과 주식시장 등 금융이 흔들리고, 길게는 수출에 차질이 발생하고, 이는 침체일로인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현상적 측면에는 큰 이견이 없지만 해석과 대책은 이념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라진다. 진보 측에서는 브렉시트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내부 기득권에 대한 반란으로 해석하면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소득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보수지배세력에서는 경제위기론의 맥락에서 접근하며, 정부중심의 단결을 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경제가 악화될 때 내부분열을 추동하는 자들로 인해 국가가 패망한 사례가 있다’고 발언한 것은 매우 전형적이다.

단층선(fault line) 위의 한국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하고 있을 때 미국의 CNN은 영국이 트럼프의 시간을 겪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어디에서 어떤 시간을 겪고 있으며, 또 앞으로 겪어야 할 것인가? 한국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기층민중의 분노가 극우 포퓰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트럼프 현상이나 브렉시트 같은 극우 포퓰리즘이 급부상하지 않는 것은 이미 그들이 수십 년간 지배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좌절과 면역을 함께 안고 살아왔다. 어찌 보면 한국의 기득권 지배연합이 한 수 높은 것이,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다양한 전술을 써왔다. 마치 압력밥솥이 폭발을 막기 위해 조금씩 증기를 배출하듯이 안보 포퓰리즘, 복지와 성장은 반대라는 궤변, 증세 없는 복지론 등을 통해 김 빼기를 해왔다. 헬조선과 흙수저론은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취급한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이런 방법이 통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한국도 더 늦기 전에 다문화정책 폐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인터넷을 달궜다. 이들은 트럼프가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적 막말이 뉴스가 될 때에 같은 반응을 했던 사람들이다. 양극화에 대한 대책으로 고립주의와 인종차별이라는 오답으로 국민을 현혹할 잠재성이 우리에게도 넘쳐난다. 외국인 혐오, 세대갈등, 남녀갈등으로 우리 사회는 이미 초갈등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입지는 더 어렵다. 미중의 갈등과 동북아 역내의 안보딜레마 증가는 풀기 어려운 과제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중국은 이에 저항하고 있다. 고조되는 미중 갈등에도 양자의 높은 상호의존도를 감안하면 군사충돌에 이르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상호불신이 여전한 가운데 상대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협력과 공존을 달성한다는 것 역시 어렵다. 중국의 역내 리더십에 대한 확장 욕심과 미국의 기존 리더십에 대한 공세적 방어가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충돌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양국 세력권의 경계 설정이 관건이다. 한반도, 중국-대만의 양안, 동중국해,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런 지점들이다. 이들 중에서 한반도는 미중의 가장 치열한 충돌의 지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단층선 위에 서서 이를 강화할지, 아니면 경계의 자리에서 대결을 완충시킬지 선택해야 한다. 후자가 한국의 국익과 지역의 평화에 바람직하지만, 안타깝게도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적대관계 해소가 필수적이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한국의 대북강경책은 미중 갈등의 빌미가 되고 있다. 최근 한미의 사드배치 결정은 동북아 단층선을 강화하는 결정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북한의 핵개발을 미사일방어망 구축의 빌미로 활용하는 미국과,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한국과 대척점에 설 수 있다. 이 선택으로 한반도는 미-중-러의 군사력 배치 강화의 이른바 크로스파이어로 진입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과 대응
내부의 불평등은 적극적인 복지와 개방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국가는 수단을 잃어버렸고, 악화일로의 세계적 불평등은 협력과 통합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국제 거버넌스는 위기에 봉착했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불완전하나마 시장의 무분별한 사익축적을 국가의 공적 권위로 통제하고, 사적 자본이 결코 하지 않는 공공재를 제공하며, 세금과 복지를 통한 재분배를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개입축소를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공공성 축소로 이어졌고, 국가는 시장의 패자를 돌볼 의지와 수단을 상실해왔다. 불평등이 구조화된 지금 자본이나 시장은 스스로 개선에 나설 리가 없고, 국가는 통제하기보다 오히려 이들을 위해 작동한다. 하버드 대학의 로드릭 교수가 말하는 세계화, 국가, 민주주의의 ‘3자 딜레마(trilemma)’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극우의 대안은 사악하지만, 진보의 진단과 대책은 오독과 재활용이다. 소득 불균형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결은 이미 여러 차례 신자유주의에 완패했음에도 치열한 자기수정이 없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인 것은 맞지만 진보가 아니듯이, 불만을 터뜨린 계층도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오답을 제시한 극우세력에게 취약하며, 현실에 대한 불만을 해소해준다는 진보의 약속을 믿고 오늘의 고통을 견뎌줄 여유는 없다. 신자유주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신자유주의와 기득권세력은 적응해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전망은 비관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과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횡포에는 저항해야지만, 자유는 여전히 미래에도 사수해야 할 가치다.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함으로써 불평등문제를 완화하고,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는 대외정책을 견지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동북아 단층선의 고착을 막아야 한다. 평화 결손의 한반도가 오히려 그 결손을 메움으로써 세계에 희망을 던질 수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희망은 더 민주적이고, 더 통합적이며, 더 평화적인 대안에 있다. 이런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진 리더십의 등장이 어느 곳보다 어느 때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하다.

김준형(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김준형은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George Washington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과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또한 미래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2008~2009)을 역임했고, 미국 Fulbright 교환교수로 미국 George Mason 대학에서 강의했다(2005~2006). 그의 관심 및 연구 분야는 동북아국제정치, 미중관계, 한미관계이며, 주요 저서로는 『국제정치: 역사와 관점을 넘어 쟁점까지』(2003),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2008), 주요 논문으로 「아베정부의 안보정책전환과 미국의 재균형전략」(2015), 「한국의 대미외교에 나타난 동맹의 자주성-실용성 넥서스」(2015), 「G2 관계 변화와 미국의 대중정책의 딜레마」(2012) 등이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김준형  joon6895@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