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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브렉시트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S) 현안진단

북한은 전형적인 고립주의 국가로 분류될 수 있다. 북한 스스로도 고립주의를 선호했다.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이 주도했던 코메콘(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 북한식 약칭 쎄브)과 같은 사회주의 국제분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회주의국가와 달리 북한이 붕괴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냉전시대 북한이 참여한 다자기구는 초국가적 구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남남협력체인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이었다. 그러나 지구적 수준에서 냉전 이후 북한은 핵문제와 경제위기를 동시에 겪으며 강제된 또는 선택한 양자·다자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북한이 참여한 탈냉전시대의 다자대화였다.

북한의 경제위기는, 북한이 자본주의열강 또는 제국주의국가로 부르는 유럽연합 및 유럽연합 회원국가에 접근하게 한 계기였다. 1970년대 초반 북한은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소국과 수교를 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major states)과 관계개선을 하지 못했다. 또한 유럽공동체는 공동외교안보정책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접근대상이 아니었다. 북한은 1995년 홍수피해를 맞아 대표단을 서유럽국가들에 파견했다. 유럽연합은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를 포함한 인도적 지원과 경수로를 제공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회 참여 등으로 반응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9월 북한은 유럽연합 및 유럽연합 회원 국가들에게 수교를 제의하는 이례적 서한을 보냈다. 2001년 5월 유럽연합 고위급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고, 북한과 유럽연합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수교합의를 했다. 북한과 미수교국이었던 영국,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등은 2000년 말부터 북한과 수교했다. 유럽연합 대표단과 김정일의 만남은 북한매체에서 “역사적 사변”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제국주의론으로 국제정치를 읽는 북한은 유럽연합도 제국주의세력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면서도,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를 공동외교안보정책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유럽연합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가진 지역통합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북한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정치경제적 대립에 주목했다. 북한이 인권대화까지 감수하면서 유럽연합에 접근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유럽연합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미국과 한국처럼 북한에 대한 독자제재도 실행하고 있다. 2016년 4월 영국은 유럽연합의 제재결의에 기초하여 영국은행에 설치되어 있는 북한계좌의 폐쇄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를 논의한 2016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영국대표는 결의 2270호가 부정적인 인도적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되며 국제구호(international relief) 노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유럽연합 지원단위’(European Union Support Units)로 불리는 유럽연합의 비정부기구들은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수행해 왔다.

따라서 유럽의 지역질서는 물론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재편을 촉발한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를 찬성하는 국민투표의 결과는, 북한의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최초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영국이 유럽동맹으로부터의 탈퇴를 결정”이었다. 브렉시트란 신조어이자 외래어를 풀어 번역하는 방식이었다. 북한은 이 간략 보도에서 유럽의회 의원의 말을 인용하여 “정치적 동맹으로서의 유럽동맹은 실패하였다”는 것에 주목했다. 유럽연합이 북한식 표현으로 미국에 맞서 “강력한 하나의 극”으로의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담긴 보도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북한의 <로동신문>은 기명기사의 형태로 상대적으로 긴 브렉시트 분석을 게재했다. 기사의 핵심 논조는 브렉시트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우려였다. 유럽연합의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절차의 복잡성을 언급한 후, 브렉시트의 원인으로 “유럽의 경제위기, 급격히 늘어나 유럽으로 흘러들어오는 피난민대렬”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브렉시트가 영국의 국내총생산을 감소시키고 일자리 감소 및 실업률 제고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을 인용하고 있다. 즉 브렉시트가 영국경제에 미칠 부정적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기사는, 유럽통합이 “다양성에 기초한 통일된 유럽을 건설하는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브렉시트가 유럽연합 회원국가들의 탈퇴 도미노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유럽연합의 “재정경제정책은 혼잡성을 이루게 될 것”이고 “유럽동맹성원국들의 금융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보다 엄중한 것은 “영국의 유럽동맹탈퇴가 유럽동맹이 발기하고 이끌어온 《동맹일체화》의 전진에 난관을 조성할 것”이라 진단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가 기사의 끝이다.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북한이 초국가적 성격이 가장 높은 다자기구인 유럽연합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고 브렉시트가 영국경제 및 유럽통합에 부합하지 않는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의 대상이다. 인종주의와 고립주의란 점에서 브렉시트와 비슷한 미국의 트럼프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후보인 트럼프는, 브렉시트를 “환상적 결정”이라 평가한 바 있다. 물론 트럼프를 언급할 때, 북한은 트럼프 후보가 한미동맹의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한다. 한국이 ‘안보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한미동맹에 대한 견해가 <로동신문>에 인용될 정도다. 북한 당국자들은 CNN과 AP같은 외신과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누가되든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트럼프가 김정은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후보인 트럼프와 클린턴 가운데 트럼프를 선호하는 것 같은 인상도 보이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인 양형섭의 인터뷰가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브렉시트에 대한 <로동신문> 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금융업에 대한 언급이다. 프랑스 은행들이 런던에서 업무를 정상적으로 전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프랑스 장관의 말을 인용하기까지 한다. 북한은 브렉시트의 국제경제적 파장에 정책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고립국가처럼 보이지만, 의도하지 않게 국제경제 질서의 변화에 민감성(sensitivity)이 높은 개방국가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9년 북한정부가 단행한 강제적 화폐수탈조치인 화폐교환 이후 북한 원화의 신인도가 추락하면서 북한에서는 외화가 시장거래에서 사용되는 달러화(dollarization), 위안화(yuanization) 경향이 증대하고 있다. 2013년 이후 북한 장마당에서 위안화 거래비율이 북한 원화 거래비율을 추월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양문수,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

북·중무역에서는 위안화가 결제통화로도 사용되고 있다. 북·중무역은 위안화 국제화의 한 사례다. 따라서 북한은 브렉시트가 위안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브렉시트 직후 위안화는 약세를 보였다. 중국은 런던의 금융시장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 등으로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만들고자 했다. 만약 브렉시트로 금융 중심으로서 런던의 역할이 감소된다면,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다. 위안화가 진행되고 있는 북한에서, 북·중무역이 북한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건에서, 브렉시트는 북한에게 새로운 경제적 고민을 하게끔 한 정치적 사건일 것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구갑우  kwkoo@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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