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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가문의 김일성은 왜 '이단국가'를 만들었을까?평화통일십 아카데미 열띤 토론 현장..유관지 목사 '김일성의 가계와 기독교의 관계' 강연

남북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여기에 답하기 전에 먼저 통일(統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누어진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조직ㆍ체계 아래로 모이게 함.’(네이버 국어사전) ‘여럿을 몰아서 하나의 조직·체계 아래로 모이게 하는 것’(금성출판사 그랜드국어사전) 대상은 ‘여럿’이고 그 여럿을 합치거나 한데 모이게 하는 게 바로 통일이라는 것이다.

남북 통일의 대상은 둘이다. 물론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궁극적 통일의 대상은 남북한, 두 나라다. 나눠진 것을 합치는 방법은 힘센 한 쪽이 흡수하는 것도 있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싫든 좋든 상대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상대방과 만나고 대화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통일의 대상인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깊이만큼 통일은 그만큼 부작용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설이 길었지만 정답은 ‘북한에 대한 이해’이다. 남북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북한 이해라는 말이다.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도 북한에 대한 이해가 밑바닥이거나 곡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 정도만큼 통일한국의 부작용도 심각할 수밖에 없다.

   
▲ 19일 할렐루야교회에서 열린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에서 북한교회연구원장 유관지 목사가 김일성 가계와 기독교의 영향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19일 저녁, 분당 할렐루야교회(김승욱 목사)에서 열린 평화한국 주최 ‘제1기 할렐루야 평화통일십 아카데미’는 그런 면에서 효과적인 통일 준비의 시간이었다. 이날 강의는 오랫동안 북한교회사 연구에 헌신해온 유관지(북한교회연구원장) 목사가 맡았다. 강의 제목은 ‘김일성 가계는 기독교와 어떤 관계인가?’다. 결론적으로 김일성 가계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참고로 유 목사가 밝힌 김일성의 가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의 아버지는 김형직, 어머니는 강반석, 할아버지는 김보현, 할머니는 이보익이었다. 김일성의 외할아버지는 강돈욱 장로다. 강돈욱 장로의 육촌동생(김일성에게는 외종조부)이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중앙위원장과 국가부주석을 지낸 강량욱이다. 지난 1월 사망한 강영섭 조그련 위원장이 강량욱의 아들이다. 김일성 외가의 인물 가운데는 목사, 장로 등 교회 중직이 여럿이었다. 김일성 외가가 속했던 ‘칠골 강씨’는 원래 기독교가 강한 집안이었다는 게 유 목사의 설명이다.

유 목사에 따르면 김형직은 무척 가난했다. 따라서 강돈욱 장로가 김형직의 신앙을 보고 딸 강반석을 시집 보냈을 거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유 목사는 김형직과 숭실중학 동창이면서 한국 농촌선교운동의 선구자인 배민수 목사의 자서전 ‘배민수 자서전: 누가 그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증거로 들었다. 자서전에는 김형직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형직은 만주에서 왔는데 조국 재건을 위한 일념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는 만주의 지하운동과 의병 활동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말할 때마다 뜨겁게 불타는 눈빛과 신념에 가득찬 음성으로 우리 모두를 매료시켰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해서 우리 중 누구도 앞으로 그에게서 그렇게 무서운 기독의 적,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태어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이었으므로 모임이 끝날 때는 늘 기도를 했다. (중략) 우리의 기도는 항상 뜨거운 눈물과 함께 바쳐지는 기도였다.”

이 같은 김형직의 신앙은 부인 강반석보다 좋았을 거란 게 유 목사의 설명이다. 남한에서는 강반석을 보통 ‘집사’로 칭하지만 강반석을 집사로 기록한 문헌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유 목사의 말이다. 강반석의 믿음이 좋았을 거라는 근거로 보통 그의 이름(반석=베드로)에서 찾지만 근거가 희박하다는 게 유 목사의 견해다. 근거를 들었다.

강반석은 1882년 4월 21일에 태어났다. 장로교의 사무엘 마펫, 그라함 리, 스왈론 선교사, 감리교의 홀 선교사가 평양선교를 시작한 것이 1893년이고, 신약성서가 번역되어 반포되기 시작한 것이 1900년의 일이다. 그 전에 일부 성경이 보급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범위는 제한적이었을 거란 게 유 목사의 견해다. 더군다나 성경적 이름을 붙이려면 여자 이름을 붙였어야 하는데 왜 남자 이름을 붙였겠느냐는 것. 강반석 집안의 돌림자도 근거로 제시했다. 강반석의 오빠가 진석, 동생이 용석이었다. 따라서 ‘석’자 돌림으로 짓다보니 반석이 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기독교 가계가 김일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유 목사는 “김일성이 기독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봤다. 유 목사는 한때 평양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강량욱(김일성의 초등학교 담임선생을 지내기도 했음)과 가까이 지내기도 했던 박대선 전 연세대 총장의 증언을 인용하며 “김일성은 빨치산 활동 때 군가를 부른 다음엔 꼭 ‘피난처 있으니’ 등의 찬양을 부르곤 했다”며 “김일성은 신앙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 기록된 어머니 강반석의 신앙이나 교회 관련 언급에 대해 “김일성이 기독교를 심하게 비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유 목사의 강의자료에 기록된 기독교 관련 김일성의 언급을 보면 “나는 예수의 복음이 우리 인민이 겪고 있는 비극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의 교리 가운데 인도주의적인 것도 많았으나 민족의 운명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져 있던 나에게는 구국에로 부르는 력사의 웨침(외침) 소리가 그보다 더 절박하게 들리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장 과정에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는가고 묻는데 나는 종교적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 신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도움은 많이 받았다” “어머니는 례배당에 다녔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다” 등 대체로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목사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신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떻겠나”라며 “체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유 목사는 “김일성이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자꾸 알려야 북한 주민들도 기독교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될 것”이라며 “이것은 통일 이후 북한 교회 재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 유관지 목사의 강의 후 청년들이 '기독교 배경의 김일성은 왜 독재국가를 건설했을까?'란 질문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날 강의의 대상은 할렐루야교회 20~30대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유 목사의 강의 이후 ‘기독교 가계의 배경을 가진 김일성은 왜 독재국가를 건설했을까?’란 질문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 청년은 “김일성이 처음엔 분명 신앙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기독교의 영향력을 알았기에 북한을 기독교의 형식을 빌어 공산독재국가로 만들어갔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청년은 “처음부터 독재체제를 만들려고 했다기보다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 분단이 되면서 점점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갔던 것 같다”며 “그리고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점점 독재적으로, 이단적으로 바뀌어가지 않았을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신앙교육의 실패를 지적하는 청년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 강반석이 김일성을 바른 신앙으로 키웠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며 “김일성이 올바른 신앙으로 자라갔다면 오늘날 북한 체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4월 26일(목)엔 ‘북한과 통일, 어떻게 보고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허문영(평화한국 대표) 박사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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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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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7-06-21 22:29:26

    우리나라의 보수언론들에서는 김일성의 장남 김정일의 부인들과 첩들이 우리기준으로 연예인급 미인들이라느니 어쩌니하고 보도질을 해대는데 실제로 김정일의 여인들의 모습을 자세히보면 걍 동네에서 흔하게 보는 평범한 아줌마같은 인상의 소유자더구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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