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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냥 공생!통일맘의 <통일문답-어떤 통일?>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누구나 다 아는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입니다.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으로 발표되었죠. 남과 북이 38선을 두고 소련과 미국 군정 하에서 대결하는 가운데 남쪽에서 처음 불렀던 노래랍니다. 북에서는 1989년 문익환과 임수경 방북을 계기로 대중화됐고 그후 남북이 만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눈물 흘리며 함께 불렀었지요. 노래가사 처럼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열렬하게 통일을 바라고 있지만 분단 70년이 넘도록 통일은 왜 실현되지 않고 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남과 북은 통일에 대한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남과 북, ‘따로 통일론’의 배경] 
남북의 통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북분단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분단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외인론’과 ‘내인론’을 놓고 논쟁해 왔습니다. 즉 남북 바깥 외세나 제국에 의한 분단이었는지, 아니면 남북 내부에서부터 분단의 씨앗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인 것이죠. 지금 와서 보면 분단은 외부와 내부의 힘이 뒤섞여 작용한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북에서는 1946년 2월 임시인민위원회가 구성되고 3월 토지개혁이 전격 단행되었는데 공산주의가 어느 때보다 인기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따라 직접 농사 짓는 조건으로 가구당 1.2정보(약 3,600평)가 분배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약 100정보(30만평)의 땅이 분배되었다고 합니다. 일제 치하에서 서럽게 살던 농민들이 해방과 함께 무상으로 땅을 받게 되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또한 눈에 가시 같던 친일파들을 대거 숙청하니 얼마나 통쾌했겠습니까? 이후 공산당에 대한 지지는 당연히 높아졌고 당원도 급속히 늘었습니다.

그럼 땅을 몰수당한 지주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자연스럽게 남쪽으로 이주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친일파들도 역시 공산주의자들의 배척이 심해지니 남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렇게 북의 토지개혁과 공산당을 겪어 본 인사들은 남으로 내려와 뿌리 깊은 반공주의집단이 되었습니다. 남에서는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박헌영, 여운형 등 공산주의자들과  김구, 김규식 등 중도파들이 좌우합작논의를 펼치며 어지러운 정세가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신탁통치문제는 국론을 더욱 분열시켰습니다. 또한 소련과 미국이 분할 점령한 한반도는 미소 냉전구도가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대륙과 해양의 거대한 힘의 충돌 속에 분단되고 만 우리 민족의 현실은 너무나 기구(崎嶇)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외인론이 아니더라도 민족 내부의 갈등 또한 첨예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김일성과 조만식의 대결이 그랬고 이승만과 김구의 경쟁도 그랬습니다. 외세를 이용한 헤게모니 쟁탈전은 구한말 개화파와 쇄국파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각 정파가 일본과 러시아,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어떻게 경쟁했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역사적 교훈으로 되새겨야 합니다. 해방정국에서 배태된 남북의 적대적 대립 구도는 6.25전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내며 더욱 강고해졌습니다. 북에서 성취한 사회주의 개혁을 한반도 전역에서 실행하겠다는 북과, 빼앗긴 농토를 회복하며 자유민주주의를 북으로까지 확장시키겠다는 남의 신념은 마침내 전쟁이라는 물리적 충돌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다시금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은 분단극복과 화합이라는 위중한 시대적 소명에도 불구하고 동과 서, 남과 북 갈등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남북갈등 외에 북을 놓고 남에서는 다시 동서진영을 기반으로 ‘남남’갈등이 등장하여 한반도는 온통 적대감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반목(反目)과 분열(分裂)은 예나 지금이나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우린 왜 역사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을까요? 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찾지 못할까요? 내부의 모순을 외부의 적에게로 치환시키는 통치술 때문아닐까요? 통치자들이 내세운 통일담론과 안보담론은 사실상 동전의 앞뒷면처럼 그때그때 그럴듯한 논리로 정권의 정당성을 치장하는 데 쓰였습니다. 남북관계에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였습니다.

 

[누가 통일의 주역인가?] 
민족 화합과 통일의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남북 주민들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복무할 의무가 있고 국가권력은 국가의 의무를 수행할 때에라야 정당합니다. 통일 역시 남북주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 까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체제 대결을 강화시키는 통일론은 분단의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38조 7995억 원입니다(2016년 기준). 하루에 1036억 원을 국방비로 쓰면서 통일비용을 걱정하다니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방위산업체의 군납 관련 비리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사고나 자살로 죽는 사망자수는 일 년에 평균 126명 이상입니다. 그런데도 군대 내 폭력 문제는 사람들에게 쉽게 잊혀져 버립니다. 총기 난사, 탈영, 군대 폭력, 성범죄라는 대형사고가 터져야 반짝 시선을 끌 뿐입니다. 이런 악순환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한 일본군은 욱일승천기를 걸고 우리 영해를 드나드는 상황인데 말이지요. 미국은 일본에 힘을 실어 주는 반면 우리에게는 중국과 거리를 두라고 다그칩니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한・미군사동맹은 언제까지 안보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요?

북은 북대로 ‘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공화국을 수호하고 남조선을 해방해야 한다’는 통치담론을 여전히 유통시키는 가운데 주민들은 ‘70일 전투’나 ‘200일 전투’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목표생산량을 달성하기까지 휴일도 없이 전력투구를 강요당하는 노력동원운동입니다. 70년대 천리마운동때에도 90년대 고난의 행군때에도 북한 주민들은 조국해방과 사회주의혁명 완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언제까지 국가동원령에 목숨을 바쳐야 할까요?

사회주의국가들이 계획경제의 모순에 의해 체제를 변혁하기 시작한 지 20~30년이 넘었는데 북은 여전히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고립일로에 있습니다. 북의 핵무장은 체제유지를 위한 생사를 건 모험입니다. 소련의 해체와 독일통일, 루마니아 챠우세스쿠(Ceausescu)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며 북의 통치자는 내부단결을 더욱 채찍질했습니다.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피포위의식’에 사로잡힌 북에게 핵카드는 일종의 마지막 생존카드였던 것입니다.

체제안정을 약속한 남측 정부가 교류협력을 추진하며 함께 살자고 손 내밀었을 때 북은 의심하면서도 그 손을 맞잡았습니다. 천재지변이 발생했고 최고통치자도 사망하여 망연자실한 때에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자세를 달리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정권변화(regime change)로 엇박자가 나기도 했지만 ‘남북간 화해와 교류를 통한 평화적 통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가 굳건한 이상 미국도 동맹국 입장을 헤아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얄궂게도 북은 우리 정부의 고뇌에 찬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분풀이였는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끼리’는 어디로 가고 ‘마이 웨이'를 선택한 것입니다. 남남갈등은 더욱 커지고 거칠어졌습니다. ‘퍼주었더니 핵으로 돌아왔다’는 단순한 표어 덕에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담론은 끈 떨어진 연처럼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북핵은 체제생존을 위한 몸부림임에도 국제사회로부터 동정표를 사고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권문제와 맞물려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으며 국제적 오명을 떨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북한은 미국이 무시전략을 택하자 핵개발에 박차를 가해 4차 핵실험까지 마쳤습니다. 이제 북한 핵무기는 소형화, 고도화, 경량화의 길만 남았습니다. 최근 실험에 성공한 화성-10 등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미국을 조준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실패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최근 평화협정을 주문하고 있고 미국도 2009년 당시 힐러리 국무부장관이 북핵과 한반도 평화협정, 북미수교를 팩키지 딜(package deal)카드로 고려한 바 있습니다. 2005년 9.19성명과 2006년 2.13합의의 연속선상에 있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만 ‘효과 없음’이 증명된 대북제재를 유일한 방책으로 내놓고 최근까지도 북한에 대한 고사작전에 희망을 거는 모습입니다. ‘북진통일론’과 ‘남조선혁명론’으로 마찰을 일으키던 6.25전야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마저 생겨납니다.

 

[남과 북, 체제통합 아닌 공생부터]
1970년대 장준하 선생은 “모든 통일은 옳다”고 외쳤습니다. 분단 극복에 대한 강력한 희망에서였겠지만 과연 모든 통일이 옳은 걸까요? 남과 북이 그리는 통일지도가 그렇게 다른데 통일이라면 덮어 놓고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북진통일론은 ‘붕괴 후 흡수통일’로, 남조선혁명론은 ‘우리민족끼리-자주통일론’으로 바뀐 듯하지만 한 쪽이 죽어야 끝나는 제로섬(Zero-Sum)게임 같은 통일론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우린 이미 6.15 공동성명 제2항에서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이 유사한 통일방안임을 확인하고 그 바탕 위에 발전적으로 그림을 그려가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몰지각한 일부 국민과 언론, 정치권이 문제였습니다. ‘6.15’ 제2항은 더 이상 합의할 수 없을 정도로 남북이 고심 끝에 마련한 절충안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금강산관광과 내륙경협사업, 개성공단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6.15'합의를 불가역적(不可逆)적 합의라고 여기며 기뻐했습니다. 더욱 확장시키는 길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6일 제4차 북한 핵실험 이후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을 간단히 폐쇄시켜 버렸습니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leverage)를 스스로 반납하는 결정이었습니다. 북핵 문제는 우리의 결정과는 역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북미 평화협정 등으로 출구전략이 모색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중국의 논의구도 속에 우리 외교는 실종되었다는 전문가들의 탄식이 쏟아져 나옵니다.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없으니 외부 눈치만 보는 상황은 누가 봐도 패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더 이상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의 안보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핵탄두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함에도 전시작전권 환수를 먼 훗날로 미뤄놓고 있으니 우리 정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더욱 좁아졌습니다. 국가권력을 위임받을 자격이 있는 정부를 세워야 함을 뼈저리게 알려줍니다.

통일은 더 이상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영역으로 흘러가고 있음이 명백합니다. 통일이 곧 안보이고 국력임을 남북한 주민들이 깨우쳐 알아야 합니다. 국가간에는 체제경쟁이 우선이지만 국민은 행복이 우선입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남한 시민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민권력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과거 국가가 주도했던 통일논의는 시민사회의 평화담론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4대 남북합의서(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10.4)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9.19공동성명, 2.13합의를 복원시킨다면 통일의 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북에서도 주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축적되었을 때 북한식 민주주의도 새로운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자신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국내 모순을 외부로 돌려 끊임없이 국민들을 옥죄고자 한다면 통일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퇴색하고 말 것입니다. 남과 북이 형제(자매)국가로서 손을 다시 맞잡을 때 우리가 소원하던 통일은 다가올 것입니다. 적대적 대결을 추동하는 통일론을 내려놓고,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미래를 이야기할 때 민족화합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세계 최대 화약고 중 하나인 한반도에 참된 평화를 선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불렀던 통일노래가 과연 어떤 통일을 그리고 있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놓쳐버린 길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시 찾아야 합니다. 서로 탓하며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됩니다. 용서와 화해, 평화의 새 길을 닦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남한 시민사회로부터 실마리가 풀리길 기대합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북풍공작과 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지금부터 촘촘하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선거철만 되면 매스컴에서 보도를 쏟아내는 걸까요?

윤은주 전문기자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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