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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협상·합의의 어려운 길, 평화·통일·번영의 유일한 길

협상할 것인가? 전쟁할 것인가?
20년 전, 하버드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공부할 때 가장 흥미롭고 열심히 들었던 과목은 협상론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협상론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마치 석기와 철기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버드대학은 협상론에 대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곳인데, 1980년대 이후 로저 피셔(Roger Fisher)와 윌리엄 유리(William Ury) 등은 협상론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 『NO를 극복하는 협상법』 등을 잇달아 출판했다. 이들 협상의 대가들은 ‘테러범과 협상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YES’라고 답한다. 그리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이른바 광신도와도 협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YES’라고 답한다. 나아가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과도 협상을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장한다면 협상을 해야 한다고 답한다.

이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10년 하버드대학의 협상프로그램 책임자인 로버트 누킨(Robert Mnookin) 교수는 『악마와 흥정하기: 협상할 때와 싸울 때』라는 책을 출판했다. 누킨은 다섯 가지 조건, 즉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는지, 협상을 통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어떤 것인지, 협상의 결과가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합의가 지켜질 수 있는지, 협상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보고,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악마와도 협상을 해야 하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넬슨 만델라를 ‘협상할 때를 안 사람’으로, 윈스턴 처칠을 ‘싸울 때를 안 사람’으로 분류하면서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에 분단선이 그어진 이후로 지금까지 70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협상을 해야 할 때와 싸워야 할 때를 제대로 구분했는가? 그리고 남과 북은 서로를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전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궁극적으로 북한은 우리 남한에게 무엇인가? 악마인가, 적인가, 인질범인가, 파트너인가?

38선이 그어진 이후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초의 협상은 1945년 12월, 전승국인 미국, 영국, 소련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협상의 결과 12월 27일 〈코리아 문제에 관한 4개항의 결의서〉라는 이름의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그 핵심내용은 ‘① 코리아를 독립국가로 재건하기 위해 임시적인 코리아민주정부를 수립한다. ② 코리아의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③ 미, 영, 소, 중의 4개국이 공동 관리하는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국은 일제로부터 코리아를 해방시키고, 나아가 협상을 통해 코리아를 독립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협상을 존중할 것인가, 존중하지 않을 것인가? 다시 말해 이 합의를 지킬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코리아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진다. 협상을 존중하고 합의를 지키면 자유진영인 미, 영, 중 3개국과 공산진영인 소련 1개국의 후원 아래 코리아의 제 정치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평화통일을 이룰 것이다. 협상을 부정하고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반분한 미·소 양대 점령군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결국 전쟁이 일어나 분단이 고착될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때 협상을 부정했고, 합의가 이행되지 못하도록 했다. 결국 전쟁을 택했고, 70년에 걸쳐 분단이 고착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긴장이 연속적으로 고조되고, 갈등이 악순환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10월 4일의 남북정상회담을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북한의 수뇌와 벌인 협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남북 정상의 합의를 부정하고 파기했기 때문이다. 2015년 8월 한반도는 다시 전면전의 위기에 휩싸였다. 북한의 지뢰폭발과 남한의 대북확성기 재개, 북한의 총기대응과 우리 측의 군사적 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협상할 것인가? 전쟁할 것인가? 이 위기 속에서 남의 안보실장과 통일부장관, 북의 총정치국장과 통전부장이 3일간의 협상을 통해 겨우 전쟁의 불꽃을 제어했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간에는 대결의 불꽃이 튄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협상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나아가 합의를 통한 평화·통일·번영을 이룰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의 결국은 파멸이다.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결심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자기 힘으로 치러서 이길 수 없다면, 나아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공멸에 불과하다면, 협상을 통해 합의를 하고, 합의를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협상도 하지 않고 전쟁도 하지 않겠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 분단을 영구화하고 결국 민족을 파멸의 길로 이끌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평화의 방법론: 7.4공동성명의 ‘평화’와 기본합의서의 ‘상호 인정과 존중’
앞에서 언급한 <YES>와 <NO>의 두 책은 협상의 상대는 ‘친구’도, ‘적’도 아니라 ‘공동의 문제 해결자’라고 본다. 그리고 협상의 목표는 ‘합의’도, ‘승리’도 아니고 효율적이고 우호적으로 ‘현명한 결과’를 얻는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한 방법은 양보하고 제안하고 굴복하는 것이 아니고, 고집하고 대결하고 위협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상호 이익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객관적 기준과 원칙에 따라 합의를 하는 것이다. 특히 아주 까다로운 대상과 협상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대편에 서 주는 것’이라고 한다. 적극적인 자세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상대방에게 동의하고,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 즉 그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며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킨(Mnookin)도 『악마와 흥정하기 Bargaining with the Devil』에서 상대방을 악마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일곱 가지 함정을 예로 들면서 위와 비슷하게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언급하고 있다. 즉 협상가는 ① 상대방을 악마로 보는 것, ② 내 편 네 편으로 나누는 행위, ③ 상대방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 ④ 우리 편에 모든 도덕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믿는 행위, ⓹ 내가 이기면 너는 져야 한다는 제로섬 접근법, ⑥ ‘싸우거나 도망치거나’라는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는 행동, ⑦ ‘모두 진격 앞으로’를 외치는 전쟁적인 태도 등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악마와 흥정하기>(왼쪽), <시간끌기> 책 표지

협상의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FBI 위기협상팀장으로서 30년간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인 게리 노에스너(Gary Noesner)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2010년에 쓴 『시간끌기 Stalling For Time-FBI 인질협상가의 삶』에서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인질극의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협상가는 무조건 인질범에게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인질범에게 관심과 공감의 반응을 보여줘 교감을 나눠야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 즉 ‘태도 변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 협상의 고전(古典)과 대가(大家)들은 악마처럼 아주 까다로운 존재를 대상으로 협상할 때조차도 협상의 대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협상을 통한 방식이 전쟁을 통한 방식보다 낫고, 협상의 상대자는 공동의 문제해결자이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상론의 법칙을 남북의 분단현실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북한은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의 대상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1948년 출범한 이승만 정부로부터 박정희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공식적인 대북통일정책은 북진통일 또는 멸공통일이었다. 이러한 대북정책의 자연스런 귀결로 남북간의 협상은 적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불온시 되었다. 그러나 1972년 남북간의 협상에 의해 7.4공동성명이 발표됨으로써 분단 이후 처음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원칙이 합의되었다. 이로부터 협상에 의한 평화와 평화에 의한 통일이 규범화되기 시작하고, 결국 대한민국 헌법에 이것이 명문화되었다. 1987년에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언급하고, 4조에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기본적으로 전쟁해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협상해서 변화시켜야 할 대상, 즉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협상의 대상이자 평화통일의 대상인 남과 북은 서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1991년 12월 남북간에 합의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즉 남북기본합의서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합의서> 제1조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제9조는 무력금지를, 제10조는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규정했다. 여기서 서로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체제를 이념적으로 좋아하거나 그것을 따르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국가체제를 민족적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평화통일의 파트너로서 존중한다는 뜻이다.

평화통일을 규정한 헌법 제4조는 남북관계에서 <남북기본합의서> 1조와 9조, 10조로 구체화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남북의 협상방법론, 또는 협상을 통한 평화방법론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협상의 기본법칙을 따라야 한다. 우선 상대방을 악마(적)나 친구로 보지 않고, 8천 만 민족의 평화와 행복과 번영을 위한 공동의 문제해결자로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전투적 태세를 취하지 않고 상대방의 편에 서주며, 공감과 교감을 통해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태도변화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통일의 방법론: 6.15 공동선언 1항의 ‘서로 힘을 합쳐’와 2항의 ‘공통성’
통일의 방법론은 판단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어진다. 무력행사의 여부에 따라서는 무력통일과 비무력통일로 나뉠 수 있고, 합의여부에 따라서는 합의통일과 강제통일로 나뉠 수 있으며, 체제의 수렴정도에 따라서는 혼합통일과 흡수통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상대의 실체를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다시 말해 남한에 있는 5천 만 주민의 운명공동체로서의 남한체제라는 실체와 북한에 사는 2천5백 만 주민의 운명공동체로서의 북한체제라는 실체를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통일의 방법론은 아래 표와 같이 다시 분류될 수 있다.

사실 분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은 각종 법체제와 수사를 통해 서로의 실체를 부정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괴뢰’라는 용어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남한과는 달리 수령독재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북한에서 현재의 북한체제가 북한주민의 의지적 결집체라고 할 수 없기에 그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대표성을 떠나서 현재의 북한체제가 북한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2천5백 만 주민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 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상대의 실체 인정 여부를 기준으로 할 때 이전에 남북한이 추구했던 통일론은 새롭게 구분될 수 있다. 북한의 6.25남침과 남조선혁명론은 명백히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이승만 정부의 북진론도 마찬가지이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 이후 북한붕괴론에 매달렸던 김영삼 정부, 2008년 이후 교조적 이념으로 북한봉쇄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이후 새롭게 등장한 남한의 북한붕괴론과 미국의 전략적 인내론도 모두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통일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천5백 만 북한주민을 통치하는 실체로서의 북한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은 북한체제와 어떤 유의미한 실질적인 협상을 진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전에 이룩했던 유의미한 합의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마찬가지로 5천 만 남한주민의 운명공동체로서의 남한이라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은 남한과 본질적인 협상은 진행하지 않고 도발을 일삼으며,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남과 북을 포함한 8천 만 민족 구성원들의 삶을 개선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주체로서의 현존하는 남한체제와 북한체제를 상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협상 그리고 합의와 그 이행이다. 이 점에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이전의 <7.4 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내용을 총괄하면서 더욱 발전시킨 의미가 있다.

6.15 공동선언 1항은 통일의 주체가 우리 민족이고, 그 방법은 서로 힘을 합치는 것임을 밝혔다. 2항에서는 구체적으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시킬 것을 합의했다. 21세기 들어 동아시아에서 첨예하게 전개되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립국도, 즉 미·일 동맹과 중·러 동반자의 대결을 염두에 둘 때 이들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또한 더욱 골이 깊어지며 격차가 심화되는 남북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일방적인 통일 또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7.4 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하고 6.15 공동선언에서 다시 천명한 대로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민족대단결)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통일 방법론은 남측과 북측이 화해협력하면서 서로의 통일방안에서 공통성을 찾아내고 이를 강화·발전시키는 것이다.

번영의 방법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10.4 선언>
2007년 10월 남북정상이 협상하고 합의하고 서명한 <10.4 선언>은 이전에 합의한 6.15 공동선언을 계승하면서도 평화를 더욱 구체화하고 번영의 길을 더욱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선언 1항은 2000년의 6.15 공동선언의 이행에 관한 것이고, 2항과 3항은 1991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재확인하며 현실에 맞게 적용시킨 것이며, 4항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해 정전협정과 9.19 공동성명을 남북간의 의제로 내면화한 것이다. 그리고 5항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사업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백두산, 금강산 관광까지 포함하면 크게 7개의 항목이다.

   
▲ 2007년 10.4 정상선언 당시 남북간 합의했던 남북 물류 개발 지도

①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이 합의가 이행되었다면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즉 철, 석탄, 중금속, 희토류 등의 개발이 남측에 의해 주도되고, 이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남북경제협력이 추진되었을 것이다.

②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합의가 이행되었다면 서해 NLL에서의 충돌방지는 물론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또한 서해에서 남북어민의 공동어로가 이루어져 중국어선의 출현을 방지하고 나아가 해주지역에 개성공단과 같은 대규모의 남북협력공단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③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 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합의가 이행되었다면 개성공단 2단계 개발이 완료되어 약 30만의 남북한 노동자가 함께 일하며 도로뿐만 아니라 철도를 통해 각종 물자 수송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④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이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남한의 남아도는 대규모 건설장비들이 북한지역에 투입되어 개성-평양-신의주의 철도와 도로가 개보수되고 이를 통해 중국의 동북삼성으로 남측의 여객과 화물이 이송되었을 것이다.

⓹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합의가 이행되었다면 원산 아래의 안변과 평양 앞의 남포에 우리나라 거대 조선기업이 진출해 북한과 공동으로 선박을 건조하고 수리했을 것이며, 중국에 대한 조선경쟁력을 더욱 강화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농업과 임업을 비롯한 각종 협력이 더욱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⑥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이 합의가 이행되었다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은 한반도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며, 이를 총괄하는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가 한반도 차원에서 새롭게 국토개발 5개년계획 또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구가 되었을 것이다.

⑦ <10.4 선언>의 6항과 7항이 이행되었다면 그 규정대로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고,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였을 것이며, ‘금강산면회소를 통해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하게 되었을 것이다.

협상과 합의를 통하지 않고는 평화도, 통일도, 번영도 불가능하다
동독에서 자유선거가 치러지기 전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한스 모르도프(Hans Mordow)는 2010년 10월 독일통일 2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독일은 분단 상황에서도 일반 시민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80년대 상황으로 보면 동독에서 서독으로 방문한 사람이 150만 명에 달했고, 서독에서 동독을 방문한 사람도 10만~15만 명에 달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상호 방문은 물론, 편지 교환, 전화, 경제적 교류 등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완전한 분단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인적 교류가 통일의 중요한 기반이 됐습니다.……지속적인 교류가 없으면 남북간에는 서로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남북 주민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습니까? 제가 알기에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인적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북은 모든 면에서 대립은 최대한 자제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한국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정책이 바뀌는데, 대북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현재의 대립관계에서 빠져 나와 협상을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협상을 계속해야 합니다.”(연합뉴스, 2010.10.11.)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은 친북도 종북도 아니다. 그것은 북한체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8천 만 우리 민족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파트너를 세우는 것이다. 북한과 협상하고 합의하고 이를 준수하는 것, 그것은 북한에 굴복하는 것도, 대한민국을 팔아먹는 것도 아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대한민국 헌법 4조를 이행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남과 북 서로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직접 협상하지 않고 강대국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며, 역대 정부의 합의를 존중하지 않고 이를 폐기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것이자 반통일적인 것이다. 이는 결국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것이며, 역사를 거스르는 반역사적인 것이다.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이 글은 계간 <통일코리아> 2015년 제4권 특집 ‘역대 남북합의를 보면 통일의 길이 보인다’에 게재된 글입니다. -편집자 주

배기찬  baekic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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